강원도 강릉·고성
1만5000km의 해안선 안보대장정. 길었던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강릉·고성이다. 지난 16~18일, 최동북단 해안선을 따라 마지막 취재를 떠났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이 해안선에 감도는 긴장감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엄숙했다. 그만큼 이곳을 지키는 장병들의 의지가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성지라 부를 만큼 깊은 역사를 간직한 강릉·고성 일대의 해안선과 살아 숨 쉬는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소개한다.
공군18전비 빨간마후라의 고향, 강릉기지
최전방 공군기지…전쟁 동안 7851회 출격
16일 새벽, 강릉기지의 수평선에 동이 트고 있었다. 태양 빛으로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이 점차 원래 색을 찾을 때쯤, 해상초계임무를 맡은 F-5 전투기가 굉음을 흩뿌리며 푸른 동해 위로 비상해 올랐다.
활주로에는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다음 출격을 준비하는 조종사, 정비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비행단의 아침은 늘 그렇듯 한발 빠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해안선 안보대장정의 여정 속에 공군 비행단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군18전투비행단이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해안선 비행단’이기 때문이다. 이곳 강릉기지에는 동해를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는 활주로와 바다 위로 펼쳐진 유도등이 있다. 바다가 기지에 인접한 비행단은 몇 군데 있지만, 직접 해안선과 맞닿아 있는 공군 비행단은 오직 18전투비행단 뿐이다.
강릉기지는 공군 조종사를 뜻하는 빨간마후라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다. 1951년 9월 28일 공군1전투비행단 예하 10전투비행전대가 이곳 강릉기지로 전방 전개했고, F-51D 무스탕 전투기를 주기종으로 한 6·25전쟁 최초의 공군 단독출격작전이 수행됐다.
강릉기지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최전방 공군 기지로서 6·25전쟁 때부터 항공작전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 공군이 전쟁 동안 기록한 8459회의 출격 가운데 93%에 해당하는 7851회가 이곳 강릉기지에서 달성됐다. 공군 역사에 길이 남은 1952년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평양 대폭격 작전, 351고지 근접지원작전 등 빛나는 전공과 주요 작전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강릉기지가 배출한 100회 이상 출격 조종사는 39명이다.
강릉기지의 푸른 바다가 주는 시련도 있다. 바로 눈이다. 겨울이면 북쪽에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남하하면서 동해의 습기와 만나 잦고 많은 눈을 내리게 한다. 지난 2014년에는 무려 253.5cm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강릉기지가 항공작전 지속을 위해 매년 겨울 활주로에 쌓인 눈과의 사투를 벌이는 이유다.
비행단은 이미 올겨울 폭설과의 전투준비를 마쳤다. 제설본부를 구성해 24시간 근무 체제를 편성했고, SE-88 및 페이로더 등 제설작전 중장비도 점검 완료했다. 어떤 악기상에도 항공작전을 지속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지원요원들의 겨울맞이 각오다.
빨간마후라의 후예로서 강릉기지에서 근무하는 조종사들의 결의도 남다르다. 비상대기실에서 출격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조종사 김수한 대위는 “이곳의 출격 임무는 푸른 동해 바다에서 시작된다”며 “그 멋진 풍경에 매번 감탄하면서, 이 아름다운 국토를 빨간마후라의 후예인 우리의 손으로 지켜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육군22사단 내 이름 걸고 GOP·NLL·해안선 수호
“연습 아닌 실제 작전으로 두려움은 없다”
“하나 포, 쏴!, 둘 포, 쏴!”
17일 밤, 육군22사단 북진연대의 ‘해안침투대비 통합상황조치 훈련’이 시작됐다. 최동북단 해안선에서 열린 실사격 훈련이었다. 소초장의 지시에 맞춰 박격포 포수가 사람 팔뚝만 한 조명탄을 발사했다. “펑!” 소리와 함께 조명탄이 어둠을 뚫고 바다 위로 날아갔다. 바다 위 일정 구간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조명탄이 연이어 터지며 30분 이상 어둠이 걷힌 상태가 유지됐다. 그때 “탕! 탕! 탕! 탕!”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바다를 울렸다. 공용화기 기관총이 불을 뿜은 것이다. 400번의 총성은 바다 위 정확히 같은 곳에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만약 적이 실제로 침투하고 있었다면 모조리 수장됐을 것임이 분명했다.
사격을 마친 공용화기 사수 최성윤 병장은 “적이 내 앞에 오면, 오늘 훈련한 대로 격멸할 뿐”이라며 “실제 침투 예상지역에서 정기적인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어 긴장,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22사단의 작전책임지역은 광활하며, 또한 복잡하다. GOP 30km, 해안 70km로 총 100km에 달한다. 남북의 해안선이 맞닿는 접점까지 동북단의 모든 요충지가 사단의 책임 지역이다. 22사단 해안선 철책 일부 구간에는 GOP와 동일한 수준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그만큼 적 침투 가능성이 커 긴장을 늦출 수 없음을 의미한다.
육지, 바다, 해안선 등 복잡한 작전환경은 필연적으로 육·해군의 높은 합동성을 요구한다. 22사단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북한 선박이나 함정을 해군과 합동으로 격침하는 임무까지 맡고 있다. 육군 부대가 바다 위 NLL을 지킨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만약 선박이 NLL을 넘어오면, 경고방송, 경고사격에 이어 격침사격으로 적을 격멸한다.
이곳의 장병들에게 실제 상황을 가정한 교육훈련은 일상생활과 같다. 22사단의 모든 소초장은 주 1회 1개 임의 초소를 불시에 방문해 근무자에게 실탄을 건네고 적이 침투한 상황을 부여한다. 근무자는 상황에 맞춰 실제 작전지역에서 실사격을 한다. 바로 ‘초소현장사격’이다. 개인화기 사격장에서 안정된 가운데 실시하는 사격 훈련과는 질적으로 다른 실전형 교육훈련이다.
다음 날 아침, 22사단 금강산연대 예하의 최전방 해안선 소초를 찾았다. 부대에 들어서니 24시간 전투복과 장비를 갖춘 채 생활하는 기동타격대원들이 보였다. 눈이 빠질 듯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상황실 대원들도 있었다. 일부 병력은 전반야 해안선 철책점검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이 모든 임무는 훈련·연습이 아닌 실제 작전이다.
“여기 이 해안선 철책은 바로 최승리의 철책입니다.” 현장을 안내하던 소초장, 최승리 대위가 말했다. 각 소초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구간을 지킨다. 그것이 연결돼 100km의 철책에 대한 완벽한 경계를 이룬다. 이것이 22사단 모든 소초장들의 각오다. 최 대위는 “내 이름이 걸린 우리 부대의 책임 지역이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과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며 “긴장은 유지하되 피로는 쌓이지 않도록 부대원의 화합·단결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어민 생업 현장·생명 위해 ‘천혜의 황금어장’ 24시간 경계
18일 새벽, 동해 어로한계선 인근에 수십 대의 어선이 줄을 지어 섰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어선들이 해경의 점호를 받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그 모습을 22사단 예하 해안선 소초의 공용화기 사수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에~엥!”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어선들이 일제히 북방 해역으로 달려나갔다.
어로한계선 너머의 북방 해역에는 일정 기간에만 개방되는 어장들이 존재한다. 어민들 사이에서 4시간 조업이면 1억 원이 넘는 수산물이 잡힌다는 말이 나오는 천혜의 황금어장들이다.
4월부터 12월까지만 개방하는 저도어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4억 원의 조업실적을 거뒀다. 저도어장 북방의 삼선녀어장에는 해삼, 문어, 전복, 성게 등 고가의 정착성 수산물이 대량 분포해 있다. 홍게, 대게, 도루묵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북방어장은 3월부터 10월까지 열린다. 지난해에는 995척의 어선이 북방어장에서 총 99톤의 수산물을 획득했다.
어장 개방 기간, 22사단의 경계·감시태세는 더욱 격상된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선들에 섞여 적이 침투하거나 우리 어민을 피랍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유사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해군, 해경, 지자체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고 24시간 경계를 유지한 가운데 우리 어민들의 생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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