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리더의 식탁

버릴 것 없는 코코넛처럼…최악의 위기 탈출 성공으로 탈바꿈

입력 2016. 11. 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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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케네디 대통령과 코코넛


日 구축함과 충돌해 침몰 당한 케네디의 PT-109 어뢰정

섬에서 8일간 코코넛으로 버티며 생존 승무원 무사 귀환

 

 

 

 

 

2차 대전 때 어뢰정 정장으로 근무한 케네디 중위(맨 오른쪽).


야자 열매인 코코넛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안에 들어 있는 코코넛 워터는 시원한 음료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열매 안쪽의 젤리처럼 생긴 과육을 짜면 나오는 코코넛 밀크 역시 신선한 음료가 된다. 과육은 그대로 먹을 수도 있고 분말로 만든 다음 커피나 차, 과자, 빵 등에 넣어 맛을 내는 용도로도 쓰인다. 열매를 감싸는 섬유층은 카펫이나 산업용 밧줄을 만들 때 쓰고, 껍데기는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태우면 강력한 화력을 내는 숯이 된다.

전시에는 또 다른 용도가 추가될 수 있다. 전쟁터에서 혈액이 떨어졌을 때, 그래서 부상병에게 수혈할 수 없을 때 긴급하게 혈장(血漿) 대신 수혈할 수 있는 자연 상태의 액체가 코코넛 워터(coconut water)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일본군이 코코넛 워터를 혈장 대신 써서 부상병을 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비상상황에서만 쓰는 방법이다. 코코넛 밀크는 해당이 안 되고 코코넛 워터만 사용할 수 있다.

케네디가 구조 메시지를 적은 코코넛 껍데기.

2차 대전에서 코코넛은 부상병만 구한 것이 아니라 역사상 중요한 인물도 살렸다. 바로 훗날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 해군 중위다. 케네디는 2차 대전 때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서 PT-109 어뢰정 정장으로 근무했다. PT(Patrol Torpedo)는 초계 어뢰정의 약자로 길이 24m의 소형 함정이다. 장교 한 명과 병사 14명 정도가 탑승했다.

케네디 중위는 자신의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과 부딪쳐 침몰했을 때 지휘관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해 승무원 대부분을 살려 돌아왔고, 그 공로로 해군 해병 메달과 미군이 부상자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 메달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의 생환에는 코코넛 열매가 한몫을 했다.



일본군 보급품 수송 저지 작전에 참여

1943년 8월 1일, 케네디 중위가 지휘하는 함정을 포함한 미군 어뢰정 15척이 일본군의 ‘도쿄 급행’을 저지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도쿄 급행’은 일본 해군이 남태평양 섬에 고립된 일본 육군에 보급품을 수송하는 작전이다.

어뢰정들은 어뢰 30발을 발사했지만 적함을 격침하지 못했고, 어뢰가 바닥나 탄약 보충을 위해 기지로 돌아갔다. PT-109를 포함해 세 척만 남아 초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별빛 하나 비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그런 어둠 속을 항해하던 중 갑자기 어뢰정 옆으로 커다란 물체가 나타났다. 일본 구축함이었다. 이 배는 나중에 아마기리(天霧) 함으로 밝혀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이 건조한 24척의 구축함 중 하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PT-109는 구축함과 충돌해 선체가 두 동강 났다. 13명의 대원 중 2명이 전사했고 나머지 11명은 바다로 날아가 떨어졌다. 하버드대 수영 선수 출신인 케네디 중위와 동료는 다쳤거나 지쳐 수영을 못하는 전우를 이끌고 근처의 섬으로 헤엄쳐 갔다.

 케네디의 PT-109 어뢰정과 충돌한 일본 구축함 아마기리.

섬에 표류…코코넛 열매로 갈증 해소

일본 함정이 수시로 섬 주변을 지나다녔기에 발각될까봐 구조신호를 보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마실 물도 없었다. 케네디 중위는 할 수 없이 근처의 또 다른 섬으로 헤엄쳐 건너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마실 물은 없었다. 다만 코코넛 열매는 풍부했기에 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대원이 코코넛 워터를 마시고 구토 증상까지 보여 신선한 물을 구해야 했고,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었기에 식량도 찾아야 했다.

케네디 중위는 지친 대원들을 섬에 남겨둔 채 부하 한 명과 함께 다른 섬으로 물과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혹시 일본군에게 발각될까 조심스럽게 해안을 순찰하던 중 일본군이 남기고 간 상자에 들어있는 사탕을 발견했다. 이 사탕을 가지고 전우들이 기다리고 있는 섬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섬 주민에게 코코넛 껍데기 편지 전해

근처의 섬 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케네디 일행이 표류한 섬으로 온 것이다. 이들은 연합군 척후 요원으로 활동하는 원주민들이었다. 케네디 중위는 코코넛 껍데기를 긁어 메시지를 써서 이들에게 건네주었다. “11명이 생존해 있음, 작은 보트가 필요함. 케네디.”

코코넛 껍데기가 미군 기지에 전달됐다. 그리고 마침내 구조대가 와서 케네디 중위와 PT-109 어뢰정 대원들을 모두 구출했다.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과 부딪쳐 침몰한 지 8일 만이었다. 코코넛을 먹으며 버텨낸 결과였다. 위기에 처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리더의 자세다.

여담으로 이때 케네디 중위와 대원을 구한 코코넛 껍데기는 나중에 케네디에게 전해져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백악관 집무실에 놓였다. 그리고 PT-109 어뢰정을 두 동강 낸 구축함 아마기리의 함장이었던 고헤이 하나미는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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