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담배와 종교로 추락하는 청나라
서양서 배편으로 전래
명나라 말기 전국으로 급속 전파
서양인들 “입안 습기 없애” 꼬드겨
좋은 땅에서 소중한 곡식처럼 재배
“라마교 사찰서 성승 만나보라…”
건륭제, 유교인 조선 사절에 명령
“오랑캐니까 이따위로” 불만도
淸 멸망 예견 ‘누런 꽃’ 동요 유행
몽골 왕을 보다
1780년 9월 8일 아침,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의 볼품없는 제6 황자를 보고 청나라의 암울한 앞날을 예견하며 깊은 탄식을 내뱉을 때였다. 누군가 멀리서 소리치며 손짓을 하는 것 아닌가? 바로 사절단 수석통역사의 마부 득룡이었다. 그는 천민이지만 14세부터 40년 동안 서른 번이나 중국을 드나들어 중국어에 능통하고, 일 처리에 빈틈없는 인물이었다.
바삐 사람들을 밀치고 가보니, 득룡이 웬 노인과 손을 맞잡고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상대는 81세의 몽골 왕이었는데, 붉은 보석과 공작의 깃으로 장식된 모자를 썼으며, 키가 무척 크고 얼굴은 길쭉했다.
“몽골 왕은 허리가 굽었으며 몸을 떨고 머리를 흔드는 꼴이 마치 썩은 나무가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수십 명이나 되는 수행원의 부축을 받지 않았고, 어디서 기운이 나는지 계속 지껄인다. 또 다른 젊고 건장한 몽골 왕이 옆에 있기에 내가 득룡과 함께 말을 붙였다. 그러나 그는 나의 갓을 가리키며 무엇인지 묻고는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마를 타고 가버렸다.”
이후 연암이 머쓱해 있는 동안, 득룡은 계속해서 외국의 고위인사들에게 다가가서 인사하고 다정하게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연암에게 자기처럼 해보라고 권유하지만, 어색하고 중국어도 서툰 연암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모자람을 반성할 줄 알고, 천민이라도 역량이 뛰어나면 높이 평가할 줄 아는 솔직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인물이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까?
한편, 이날 연암은 몽골에 왕이 둘이라는 것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열하일기의 ‘황교문답(黃敎問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에 관한 문답)’ 편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보인다.
“청나라는 몽골의 48개 부족장을 각각 왕으로 임명해서 분할·관리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을 막고 나라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담배의 폐해
9월 8일 꼭두새벽 연암은 피서산장에 갔다가 몇 시간 동안 많은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 후 벌써 다정한 친구가 된 왕민호를 만나러 갔다가, 산둥성의 군사령관인 학성(학成)도 사귀게 되었다. 붉은 수염이 인상적인 학성은 키가 크고 당당한 골격을 가진 군인이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는 견문과 학문을 넓히려는 의지가 번뜩이고 있었다.
과거시험·혼례제도 등에 관해 세 사람이 의견을 교환한 후, 조선의 자랑거리에 관한 연암의 소개가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바다 한 귀퉁이에 치우쳐 있으나, 네 가지 자랑거리가 있답니다. 첫째는 유교를 숭상하는 것, 둘째는 홍수가 없는 것, 셋째는 고기와 소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는 것, 넷째는 여자가 지아비를 하나만 섬기는 것입니다. 특히 법령은 아니지만, 반듯한 가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평생 절개를 지키는데, 이런 미풍양속은 4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왕민호는 중국의 세 가지 재앙에 대해 언급한다. 1) 여자의 발을 묶어 성장을 못 하게 만드는 전족(纏足) 2) 남자가 이마에 망건을 쓰는 것 3) 담배가 그것이다. 특히 그는 담배가 서양인이 전파한 해로운 풀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담배는 명나라 말 중국에 널리 퍼졌는데, 인간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취해서 넘어지게 하는 천하의 해로운 풀입니다. 맛나고 배를 불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소중한 곡식처럼 좋은 땅에서 재배합니다. 더구나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고기·차·밥보다 담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운수인지, 더할 나위 없는 재앙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담배는 본래 서양에서 배편으로 동양에 전래한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임금이 여러 가지 풀을 시험해보던 중에 이 풀이 입안의 질병을 낫게 하는 약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담배 연기가 입안의 습기를 없애는 영험한 효력이 있다고 해서 영초(靈草)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허풍과 거짓으로 잇속을 챙기는 재주가 뛰어난 서양인들의 말을 어찌 다 곧이듣겠습니까?”
건륭제의 라마교 편애
연암이 숙소로 돌아와 보니 사절단 대표가 난처한 처지에 빠져 있었다. 건륭제로부터 즉시 라마교 사찰로 가서 성승(聖僧: 성인으로 존경받는 승려)을 만나보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유교를 신봉하는 외국 사절에게 불교 지도자를 만나라고 하다니! 이는 청천벽력 같은 지시였다. 일행 중에는 극단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황제의 일 처리가 정말 괴상망측하네. 반드시 망할 거야, 망하고말고! 명나라 때는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야. 오랑캐니까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그러나 연암은 사절단 일행의 침통한 분위기와 달리 엉뚱한 생각을 했다.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대표는 귀양살이할 것이고, 나도 의리상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야겠지? 그렇게 되면 중국의 남쪽 지방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거야! 이보다 더 호사스러운 놀음판이 어디 있을까?”
쾌재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연암은 하인에게 돈을 듬뿍 주고 술을 사 오도록 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대표에게 가보니, 실망스럽게도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는 수 없이 대표를 따라 출발하여 절반쯤 갔을 때, 황제의 또 다른 명령이 전달됐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즉시 돌아가도록 하라. 다른 날을 정해서 통보해줄 때까지 기다려라!”
열하일기에는 건륭제가 열하에 궁전을 짓고 1780년 6월 22일 나이가 43세인 판첸라마를 티베트에서 모셔왔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수천 명의 티베트인이 그를 따라왔는데, 이들이 청나라에 위협적인 존재인데 건륭제가 이를 모른다는 항간의 소문도 소개됐다. 나아가 연암은 당시 청나라의 멸망을 예견하는 ‘누런 꽃’[黃花]이라는 동요가 유행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남겼다.
“이 동요에는 ‘붉은 꽃이 떨어지면 누런 꽃이 핀다’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붉은 꽃은 청나라의 붉은 모자를, 누런 꽃은 몽골이나 티베트 사람들이 입는 누런 옷과 누런 모자를 상징한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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