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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주는 벗 하나 얻는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입력 2016. 08. 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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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참다운 벗을 그리다


사절단 필수 관광코스 유리창 연 이틀 방문

누각 위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며 넋두리

“공자는 변장했어도 안회가 알아봐…

나도 이렇게 천하에 둘도 없는 벗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리창의 야경.  필자 제공

 

 

 


중국인의 접대 방식

조선사절단이 연경에 도착한 다음 날인 1780년 8월 31일. 연암 박지원은 여독이 풀리지 않은 데다 새벽 찬바람에 감기가 들어 하루를 푹 쉬었다. 연경에서 한 달 동안 체류하리라는 생각에 서둘러 구경을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날 외빈을 접대하는 청나라 관리들이 숙소로 찾아왔다.

쌀과 콩을 실은 수레가 대여섯이나 됐으며, 돼지·양·닭·거위·생선·채소가 바깥 뜰에 가득 찼다. 우유·두부·밀가루·김치·오이지·소금·간장·식초·참기름·산초·마늘·생강·마른 대추·포도·사과·배·감·장작·등유·초·찻잎·황주·소주 등 다양하다.

물품은 날마다 일정 분량씩 신분에 따라서 지급하는 형식이었다. 수령 대상자는 총 281명이었는데, 가장 많이 받는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사절단 대표 2)부대표와 서장관 3)수석통역관 3명과 예물 호송 및 통역 담당 24명 4)우수한 하인 30명 5)일반 하인 221명.



유리창 구경

9월 1일, 해가 돋자 연암은 태평거 하나를 임차했다. 나귀 한 마리가 끄는 수레였다. 하루 동안 사용할 물품을 은(銀) 두 냥에 팔고, 엽전으로 바꾸니 2200전이나 된다. 제1차 목적지는 사절단의 필수 관광코스 유리창(琉璃廠)이었다. 홍대용의 ‘연기’를 보기로 하자.

“유리창은 본래 유리 기와와 벽돌을 만드는 공장이다. 그런데 근처의 길 좌우에 시장이 조성되고, 동서쪽에 각기 큰 문을 세운 다음에 ‘유리창’이란 현판을 붙인 이후부터 시장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전체 길이는 2km쯤 되는데, 서적·글씨를 새긴 비석·고대 중국의 제사 용기·도자기 등 온갖 골동품으로 즐비하다.

장사꾼 중에는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중국의 남쪽에서 온 수재들이 많으며, 가끔 유명 인사들도 끼어 있다. 서점은 일곱 군데나 되며, 각기 수만 권의 책을 갖고 있다. 거울을 파는 상점에 가면, 마치 몸이 천 개로 나뉜 것처럼 보여 황홀하고 어리둥절하다.

수천 개의 점포를 채울 그 많은 상품 제작비는 과연 얼마나 될까? 물건이 많아 좋지만, 거의 사치스럽고 음탕하므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해치는 것들뿐이다. 이러한 물품이 날로 늘어나고, 선비들의 기품은 점점 흐려지니 중국이 발전을 못 하는 것이 아닐까? 슬픈 일이다.”

연암은 수레를 직접 몰고 유리창으로 들어섰다. 2년 전에 그곳을 방문했던 제자 이덕무로부터, 책을 많이 샀고 당낙우라는 청나라 중견관리도 사귀었다는 자랑을 들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당낙우의 집으로 찾아가던 도중에 우연히 유세기 등 중국 선비들과 만났으나, 갈 길이 바빠 며칠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잔뜩 기대하고 당씨 댁에 들렀으나, 본인은 없고 여든 살이 넘은 노모와 자식들만 있다. 아이들은 예의 바르게 자랐는데, 노모는 청심환을 요구하고 연암을 수행한 두 하인의 옷을 벗기려는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한다. 실망하고 돌아오는 길에 회자관(回子館, 이슬람 사원)을 구경했다.



유리창을 구경하는 조선사절단(1780년대, 조선화원 그림). 
 숭실대학교 소장

 

 

 

 

참다운 벗을 찾는 독백

초가을인데도 찌는 듯이 더웠던 9월 2일. 연암은 다시 유리창으로 향했다. 정양문에서부터 선무문까지 다섯 거리를 수레를 몰고 두루 구경하다가, 그는 문득 어느 누각 위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 세상에서 진실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를 얻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애달프다. 인간은 항상 이런 사람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얻지 못하면, 과대망상증 환자가 되거나 미쳐서 발광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관조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즐기며, 자유롭고 여유롭게 행동한다.

성인(聖人)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도 답답한 것이 없고, 외롭게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었다. 공자는 일찍이 ‘참인격자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움을 품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노자(老子) 또한 ‘내가 참으로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남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혹은 변장을 하고, 혹은 얼굴 모양을 변형시키며, 혹은 이름을 바꿔버린다. 이는 성인·부처·현인·호걸들이 세상을 커다란 노리개로 여기고, 비록 천하의 임금 자리라고 하더라도 그 즐거움과 바꾸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천하에는 반드시 그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는 있었다.

이제 나는 유리창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내 옷과 갓은 천하가 알지 못하는 것이요, 수염과 눈썹도 천하가 처음 보는 것이고, 반남 박씨라는 성(姓) 또한 천하가 듣지 못하던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성인·부처·현인·호걸처럼 미친 듯이 자유롭고 여유 있게 즐기는 나를 과연 누가 알아보고, 서로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을 논할 수 있을까?

일찍이 공자는 송나라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자 변장을 했는데 아무도 그를 못 알아봤다. 알아챈 사람은 안회(顔回)뿐이었다. 이때 공자는 안회에게 ‘내가 먼저 도망쳐서 네가 뒤따라오지 못하고 죽은 줄만 알았다’며 반기자, 안회는 ‘선생님이 살아 계시는데 제가 감히 어떻게 죽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아하! 나도 이렇게 천하에 둘도 없는 참다운 벗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연경 거리의 책장수(18세기 말 영국 화가 그림).  필자 제공

 

 

 

연경에서 열하로!

9월 2일, 연암은 유리창에서 실컷 노닐다가 저녁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사절단 대표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 아닌가? 대표에게 이유를 물으니 열하로 가는 너무도 생생한 꿈을 꿔서 깼다는 것이다. 연암은 공연한 생각이니 편히 주무시라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와서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잠결에 집을 무너뜨릴 것 같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옷을 입는다. 곧 하인이 허둥지둥 달려와서 열하로 출발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전한다. 사절단은 건륭제가 열하에 있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열하로 가지 않고, 연경에서 열리는 그의 70세 축하행사 참석 후 귀국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큰 착오였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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