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병대1사단 73대대 윤재휘 병장 / 부추마늘 깐풍기
불과 칼이 만들어내는 ‘종합 예술’. 통칭 ‘중식’(中食)이라고 부르는 중국 요리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말이다. 수 천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중국 요리는 그만큼 어렵고 깊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중식 요리사를 희망하는 유망주들의 수도 적기 마련. 하지만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해병대 1사단에는 ‘최고의 중식 요리사’를 꿈꾸는 한 조리병이 매일 웍(Wok·중화냄비)을 들고 실력을 연마하고 있었다. 73대대 윤재휘 병장이 그 주인공이다.
● 작은 작업 하나에도 ‘대가’의 기운…요리의 끝은 ‘데커레이션’
윤 병장을 만나기 위해 부대를 찾은 14일 아침에도 그는 곧 있을 점심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어느덧 대대 조리병 가운데서도 최선임이 된 그는 500여 명의 전우들을 위해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후임들을 독려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시간을 내 취재를 위한 요리를 하기 앞서 그는 재료들을 늘어놓으며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은 깐풍기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상하게 탕수육과 달리 깐풍기는 일반인들에게 덜 친한 요리입니다. 또 막연히 ‘만들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깐풍기는 의외로 만들기도 쉽고 조금만 신경쓰면 중국 요리 특유의 풍미를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리를 도와줄 김지훈 상병과 함께 요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칼을 들고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대파와 고추를 잘게 다지고 마늘을 으깨는 모습은 TV에서 보던 중식 대가(大家)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닭고기를 튀기는 김 상병에게 정확한 기름 온도와 튀김 시간 등을 지시하는 모습에도 ‘셰프’ 못지않은 풍모가 느껴졌다.
"사실 생각보다 요리는 단순합니다. 닭고기를 튀기고 간단한 양념을 만든 뒤 불에 졸이듯 버무리면 끝납니다. 여기에 작은 장치들 몇 가지만 추가하면 더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늘과 부추를 이용해보겠습니다."
깐풍기를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닭이 튀겨지는 동안 윤 병장은 하얀 그릇과 데코레이션용 소스를 들고 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숟가락 끝에 소스를 살짝 묻혀 나무에 핀 꽃을 형상화하고 있는 그에게 "데코레이션은 왜 하고 있느냐?"고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왕이면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서입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는 법 아닙니까?"
● "해병대 조리병은 ‘전투형 조리병’… 요리 훈련 모두 소화하니 자부심은 더 커졌죠
윤 병장이 데코레이션을 마칠 무렵 튀김을 맡았던 김 상병의 작업도 마무리 됐다. 다진 양념과 소스를 넣고 강한 화력으로 ‘불맛’을 낸 뒤 튀김과 부추를 버무리자 금세 먹음직한 마늘부추 깐풍기가 완성됐다. 이제 즐거운 시식시간. 화려하게 장식된 접시에 담긴 깐풍기를 입에 넣자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고급 호텔 중식당에서 먹어본 깐풍기의 맛과 다를 바 없었다. 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고급스러운 맛으로 승화시킨 윤 병장의 솜씨가 놀라웠다.
"사실 중식하면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조금만 연습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맛과 그 속에 담긴 진수를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겨우 기본적이 흉내를 내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매일 연습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의 칭찬이 쑥스러운 듯 윤 병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 병장이 많은 요리 가운데 중국 요리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학구열’이었다. 그는 "중국의 다채로운 향신료가 궁금해 공부를 하면서 중국 요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 부모님 역시 응원과 격려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던 중 궁금한 점이 생겼다. 조리병을 하려면 굳이 해병대를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왜 그는 강한 훈련과 군기로 무장된 해병대 조리병을 선택했을까? 윤 병장은 이렇게 답했다.
"일단 무조건 해병대를 오고 싶었습니다. 해병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조리병이 아닌 보병을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요리를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고쳤습니다."
해병대 조리병은 단순히 조리만 하는 특기가 아니었다. 부대가 실시하는 각종 훈련에도 함께 참가하는 ‘전투형 조리병’이었다. 윤 병장은 "우리 대대는 공정대대이기 때문에 공수훈련도 받았다"고 강조했다. "조리병 역시 ‘강한 해병’의 일원"이라고 힘줘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해병대 특유의 긍지가 느껴졌다.
옆에 있던 김 상병도 거들었다. 그는 "요리와 훈련을 모두 소화하려니 힘든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래서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지원이 곧 전우들의 전투력이 상승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면 요리와 훈련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후임 조리병들 사이에서 ‘진지하고 실력 있는 선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김 상병은 "동갑인데도 실력이 대단하다"며 "배울 점이 참 많은 선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후임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친화력과 은근히 유머러스한 면이 참 좋다"며 웃어 보였다.
이제 전역을 2달 여 앞두고 있는 윤 병장은 "앞으로도 멋진 중식 요리사가 되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잊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물론 전역 준비도 해야겠지만 저는 여전히 해병대의 일원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전우들에게 더욱 더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열심히 요리를 만들겠습니다. 또 제가 이 곳에서 배운 것들을 후임들에게 전수해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리병으로서 해병대 전투력 상승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군 생활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부심을 갖고 남은 기간 임무에 충실하겠습니다." 말을 마치는 윤 병장에게서 선배 해병들로부터 내려온 ‘해병대 DNA’가 느껴졌다.
● 부추마늘 깐풍기
- 재료 (1인분 기준) : 닭 순살 200g, 마늘 6쪽, 대파 흰부분 5㎝, 홍고추·청양고추 각 2개, 부추 30g, 달걀 흰자 1개, 간장, 식초, 설탕, 후추, 고추기름, 생강즙, 물, 전분
- 레시피
① 닭 순살에 간장, 후추, 생강즙을 약간 넣고 잡내를 제거한다.
② ①에 전분과 달걀 흰자를 묻혀 튀긴다. 한 번 튀긴 뒤 살짝 식혀 다시 한 번 튀기면 더 바삭해진다.
③ 고추, 대파, 마늘을 잘게 다지고, 장식용 대파는 채 썰어 찬물에 담가둔다.
④ 마늘 2개를 편으로 썰어서 살짝 튀긴다.
⑤ 팬에 고추기름을 두르고 다진 고추를 넣고 볶다가 다진 마늘, 다진 대파를 넣고 함께 볶는다.
⑥ ⑤에 물, 간장, 설탕, 식초를 넣고 끓인 뒤 튀긴 닭을 넣고 버무린다. 마지막에 부추를 넣는다.
⑦ 그릇에 ⑥을 담고 채 썬 대파와 튀긴 마늘을 올려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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