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지성과 오만
의젓하고 총명한 여덟 살 아이에게
고급부채 아낌없이 선물하며 칭찬
안하무인 청나라 수행통역에겐
인사도 안 받아주며 무언의 경고
어린이 참교육의 실상을 보다
1780년 8월 15일 새벽, 연암 박지원은 신광녕을 출발해 십삼산으로 향했다. 16㎞를 이동해서 점심때 여양(閭陽)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장날이었다.
“가지각색의 물품이 즐비하고, 수레와 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밀려들었다. 새 장수가 무늬가 조각된 나무 조롱 속에 새를 한 마리씩 넣고 매화나무 새, 작은 봉황새, 오동나무 새, 흰 눈썹 새 등 갖가지 이름을 붙여 팔고 있다. 새 장수 수레가 여섯 대, 벌레 장수 수레가 두 대나 되어 새와 벌레 울음소리가 장터에 두루 퍼져서 마치 깊은 산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장터에서 국화차와 떡을 사 먹고, 술집에서 소주와 돼지고기·달걀 볶음으로 배를 채운 후 연암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곧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엄습하므로 일단 말에서 내려 걷기로 한다. 얼마 가지 않아 마주 보며 걸어오는 범상치 않은 어린아이를 보고 무겁던 그의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빨간 실로 짠 여름 모자를 쓰고, 짙은 갈색의 구름무늬 비단 두루마기를 걸쳤으며, 검은 비단 신발을 신은 아이였다. 백설처럼 하얀 얼굴, 그림처럼 아름다운 눈매의 소년이 예쁘고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오자, 연암은 길을 막아섰다. 그래도 아이는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공손히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연암은 얼른 손을 내밀어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부둥켜안았다. 그러자 멀리서 뒤따라오던 노인 하나가 가까이 와서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건넨다. 손자 녀석을 귀여워해 주니 복에 겹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나이를 묻자, 여덟 살이란다. 다시 이름을 물으니, 성은 ‘사(謝)’ 씨라고 말하고 잠시 멈춘다. 곧 신발에서 조그만 쇳조각을 하나 꺼내더니 땅바닥에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고, 오래 사는 것은 다섯 가지 복 중에서 으뜸”이라고 한문으로 쓴다.
孝者百行之源(효자백행지원)
壽者五福之首(수자오복지수)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부연해서 설명한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짐승이 아닌 사람의 자식으로서 효도를 잘하고, 오래 살기를 축원하셨기 때문에 효도 ‘효(孝)’ 자와 목숨 ‘수(壽)’ 자를 합해서 ‘효수’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학업에 관한 질문에 사효수는 대학과 중용을 벌써 다 외웠으며, 지금은 논어를 읽으면서 강의를 받는 중이라고 말한다. 소년의 공손함과 총명함, 또한 어른스러움에 홀딱 반한 연암은 들고 있던 고급 부채를 아낌없이 선물한다. 그러자 57세의 노인은 쇠사슬 고리에 매달아 허리춤에 차고 있던 비단 수건과 부싯돌을 고마움의 표시로 건넨다.
갈 길이 바빠서 작별을 고하자, 아이가 자기 두 손을 맞잡고 아주 공손히 인사하며 말한다.
“어르신, 먼 여행길에 몸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날 숙박할 십삼산까지 다시 16㎞를 이동하는 내내 연암에게는 절묘한 아이의 눈과 눈썹, 의젓한 행동이 눈에 삼삼했다. 왕삼포에 산다는 소년의 집에 가서 노인과 제대로 통성명을 하고, 어쩜 그렇게 손자 교육을 잘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었던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오만한 청나라 수행통역
8월 16일 아침, 십삼산을 떠난 연암은 12㎞를 이동해 숙박할 고을인 대릉하점에 도착했다. 이날 ‘열하일기’에는 오쌍림(烏雙林)이라는 몰상식하고 오만한 청나라 수행통역이 등장한다. 교양 있는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교육받은 소년과 극명하게 대비해 놓은 것이다!
쌍림은 연암보다 세 살 많은 46세인데 그의 아버지 오림포(烏林哺·69세)도 청나라 수석통역관이다. 중국의 조선어 통역은 대개 조선인의 후예이며, 대를 잇는다. 오씨 부자(父子)는 봉황성에서 아주 부유하게 살고 있으며 연암보다 14년 전에 홍대용이 중국에 갔을 때도 통역을 맡았었다. 조상은 본래 조선에서 성이 ‘고(高)’ 씨였다고 한다.
태평차를 타며 하인을 넷이나 둔 쌍림은 조선 사절단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말과 행동이 경박스럽고 거드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사절단이 중국에 가면 호위책임자와 수행통역에게 수레 임차와 숙식비 명목으로 상당한 돈을 은으로 제공한다. 그런데 이들은 받은 돈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므로, 사절단이 그들 몫까지 내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더구나 쌍림은 안하무인이어서 사절단 대표에게까지 결례를 서슴지 않는다. 참다못해 지난밤에 사절단 일행 중 하나가 싫은 소리를 퍼부었더니, 쌍림은 되레 언성을 높이며 대들었다. 한바탕 핏대를 올린 쌍림은 사절단 대표의 8촌 동생이자 학식이 높기로 소문난 연암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연암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 다른 일행보다 늦게 출발 채비를 하고 있던 연암은 마침 쌍림이 객사로 들어오자 시침을 뚝 떼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가 반갑게 다가와 옆에 앉으며 평안도에서 생산되는 명품 담배를 달라고 한다. 이어서 자기 집 기둥에 붙여둘 서예작품을 써 달라더니, 연암이 먹는 진짜 청심환과 단옷날 임금이 하사하는 고급 부채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연암은 알겠다는 표시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 타고 먼 길 오느라 피곤하니 수레를 함께 탔으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쌍림은 쾌히 승낙하더니, 연암의 하인인 장복까지 태우고 말채찍을 직접 잡았다. 수레가 달리는 동안 쌍림과 장복이 서로 상대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근엄한 자세로 얘기를 듣는 연암의 귀에는 쌍림이 평생 익힌 우리말보다도 중국에 갓 온 장복의 중국어가 더 낫게 들린다. 더구나 장복에게 다음에 올 때는 의주 기생을 데려오라는 등 유치한 농담을 내뱉는 쌍림의 지적 수준에 연암은 고소를 금치 못한다.
가는 도중에 사절단 대표가 말을 갈아타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쌍림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수레에서 뛰어내려 점포에 몸을 숨겼다가 대표가 떠난 뒤에 수레에 다시 올라타는 것 아닌가! 전날 사절단 일행의 나무람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의 버릇없는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이헌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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