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터키 ①
조국 구하고 민주주의 정착 ‘국부’ 추앙
영묘와 기념관엔 연중 참배객 줄이어
6·25전쟁 참전기념 한국공원엔
태극기와 터키 국기 함께 휘날려
터키는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이며 한국인들과는 언어 구조, 국민 정서, 몽고반점까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또한 6·25전쟁 때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파병해 3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혈맹’이기도 하다.
터키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케말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제국이 해체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을 구한 터키의 영웅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흑해 연안의 한 줌 땅만 터키에 넘겨주고 국토를 찢어 나누자고 했다. 만일 당시 케말이 이를 막지 않았다면 오늘날 터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23년 10월 29일,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케말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서구식 법치와 민주정치를 정착시켰다. 그는 터키 문자 개조로 80%에 달하는 문맹을 해소하고, 여성 인권 개선, 경제 재건 등 대대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현재 케말은 터키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이름 앞에는 ‘아타튀르크(Ataturk·국부)’라는 경칭이 붙는다.
터키인의 성지 아타튀르크 영묘
앙카라 중심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아타튀르크 영묘와 기념관! 이곳에는 터키 독립을 위해 희생한 애국시민 추모탑이 있다. 기념관은 독립전쟁역사 자료, 케말의 개인 소장품 등으로 가득하며 연중 내내 참배객이 넘쳐난다.
또한 매 시간 행하는 기념관 위병 교대식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늠름한 육·해·공군 장병들의 근무교대와 행진은 군중의 환호 속에 진행된다. 행사가 끝나면 누구든지 병사들과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 위병과 팔짱을 끼거나 심지어 꼭 껴안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군인에 대한 터키인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터키군 전우애
100여 년 전 독립전쟁에서 전 국민의 피땀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은 터키군의 전통이 됐다. ‘상관의 명령은 강철을 뚫는다’ ‘전쟁터의 전우는 형제보다 가깝다’라는 말은 터키에서 일반화돼 있다. 이런 터키군의 전통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게 북한 포로수용소에서의 일화다.
“6·25전쟁 중 234명의 터키군이 북한군에게 포로가 됐다. 공산군은 제일 먼저 계급장 없는 군복을 포로들에게 입혔다. 이어서 모두가 평등함을 선언하고 장교와 병사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100명의 포로에게 20명분의 음식만 주어졌고, 굶주린 유엔군 포로들 간에 주먹다짐이 일상화됐다. 계급은 의미가 없었고 힘센 포로가 실권자가 됐다. 수용소 경비병들은 흐뭇하게 콩가루 집안이 된 포로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터키군의 위계질서는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최선임자 대위를 철창에 가두자 곧바로 중위가 포로들을 통솔했다. 장교들을 다 감금하자 이번에는 터키군 상사가 나타났다. 그는 환자 보호팀을 만들었고 병사들도 기꺼이 약한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식사를 양보했다. 그리고 쥐·뱀·달팽이와 산나물을 채취해 영양을 보충했다. 또한 터키인의 명예를 저버리고 공산군에게 비굴한 행동을 하는 포로는 동료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 유엔군 포로 50%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고, 휴전 후 조국을 배신한 일부 포로들은 적국에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터키군 포로 234명은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전원 본국으로 귀환했다.”(출처: 터키인이 본 6·25전쟁)
참전용사와 후손의 한국 사랑
앙카라역 근처의 6·25전쟁 참전기념 한국공원! 기념탑 하단에는 전사자 740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고 태극기와 터키 국기가 24시간 휘날린다. 가까운 기차역에서 이스탄불행 표를 예매하다가 우연히 아흐메트(Ahmet) 씨 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흐메트 씨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했고 아들은 보안회사 직원이며 딸은 교사였다. 한국공원 이야기를 하다 타계한 그의 부친이 한국전 참전용사임을 알게 됐다. 영어에 능숙한 딸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아버지 대신 이렇게 전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열렬한 한국 팬이었다. 학생들과 항공박물관(한국공원과 붙어 있음)에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한국공원에 들르도록 했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집안의 가전제품·자동차까지 전부 한국산으로 샀다. 그분 일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은 젊은 시절 오늘날의 한국이 있도록 도와준 일이었다”라고.
1100년 역사를 가진 앙카라성
앙카라 시 높은 산 꼭대기에는 AD 900년경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견고한 성곽이 있다. 우뚝 솟은 성탑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군데군데 로마 유적들이 보인다. 이곳은 도시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돼 있다. 그러나 성곽 위의 주택들과 어지럽게 연결된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 유적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늘의 터키는? 인구 7940만 명·병력 51만 명
터키는 인구 7940만 명, 국토 넓이 78만㎢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연 9300달러다. 군사력은 51만 명의 병력과 전차 2500대, 장갑차 4600대, 함정 210척, 항공기 680대(헬리콥터 포함)를 보유하고 있다.
출처: The Military Balance 2015
<신중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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