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유라시아 전사적지를 찾아서

역사 ‘빼곡’ 군사박물관엔 자부심도 ‘가득’

입력 2016. 05. 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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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리스 ③ 항쟁


제2차 세계대전·민간 레지스탕스 등

현대전쟁사 관련 전시물이 대부분

 

전 국민이 단결해 무솔리니군 격퇴

위풍당당 해군 활약상 상세히 소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군 전투복장. 왼쪽 군악병의 출정 나팔 소리에 맞춰 전투병이 완전군장으로 출동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맨 오른쪽 마네킹은 그리스군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필자 제공

 

 

 

테살로니키 군사박물관. 육군부대 영내에 있으며 그리스군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필자 제공

 


테살로니키 군사박물관은 그리스 현대전쟁사 관련 전시물로 꽉 채워져 있다. 즉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민간 레지스탕스 운동, 1974년 키프로스 전쟁, PKO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피땀으로 나라를 지켜온 그 역사만큼은 국가적 자부심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스 창업청년의 이동식 식당차량

테살로니키 해변 근처에는 수목이 우거진 넓은 도심 공원이 있다. 잘 조성된 숲 속 길을 지나가다 공원 끝자락에서 간이식당을 운영하는 그리스 청년을 만났다. 주방으로 개조한 작은 트럭과 야외의자 3개가 식당시설 전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기간 취업을 시도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단다. 현재 그리스 청년 실업률은 50% 수준. 결국,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던 그는 이곳에서 식당을 차렸다. 혼자서 주문받으랴 음식 만들랴 무척 바쁘다. 그러나 젊음을 무기로 힘든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는 그 청년이 정말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 여성 레지스탕스 대원의 추모 흉상.  필자 제공



군사박물관의 그리스군 승전역사

테살로니키 주둔 육군부대 영내의 군사박물관! 박물관 입구에 덩치 좋은 관리병이 앉아 있다가 방문객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이곳 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 시의 그리스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었다.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세 좋게 알바니아를 거쳐 그리스를 공격했다. 이 당시 히틀러는 소련 침공을 준비하면서 남쪽 발칸반도를 가급적 조용한 상태로 두려 했다. 그리스보다 압도적 국력을 가진 이탈리아는 쉽게 발칸반도를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스 전 국민은 단결했고 여자들은 산속 야전병원으로, 농민들은 전선의 보급물자 수송을 전담했다. 그리스군은 역습으로 국경을 넘어 알바니아 영토의 4분의 1을 차지했고 이탈리아군은 와해됐다. 1941년 4월 6일 급기야 정예 독일 제12군이 또다시 밀려왔고, 4월 27일 새벽 침공군은 수도 아테네에 입성했다. 이날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는 청백의 그리스 국기를 내리고 철십자형 독일 국기를 올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적군에 의해 강제로 국기를 내린 그리스군 병사가 ‘그 국기를 몸에 감고 30m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이 순국사(殉國死) 이야기는 그리스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대독 저항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이 됐다.”

그 후 독일군은 대규모 공수부대를 크레타섬에 투입하고서야 겨우 그리스 전 국토를 점령할 수 있었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의 생가. 집 안에는 터키 본국에서 파견된 경찰관이 상주하며 방문자들을 꼼꼼하게 검색한다.  필자 제공



해양강국 그리스 해군의 찬란한 전통

발칸반도에서 아프리카로 철수한 그리스군 잔존 병력은 연합군과 함께 끝까지 싸웠다. 특히 온전한 전력을 유지한 그리스 해군의 눈부신 활약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올림포스산은 해발 2917m다. 이런 준령들이 국토 대부분을 차지해 육로이동은 한없이 불편했다. 그러나 내륙 깊숙이 파고드는 해안선은 많은 천연 항구를 만들어 주어 그리스는 해상교통로가 더 발달했다. 이와 같은 지형적 여건으로 바다로 내몰린 그리스인들은 해상활동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고 선복량(화물적재량)도 세계 최정상에 도달했다. 20세기 초부터 그리스는 최신함정을 가진 강한 해군력을 보유했다. 특히 발칸반도 부근 바다의 해저지형을 손바닥처럼 아는 그리스 잠수함들은 전쟁 중 독일·이탈리아 군함을 수시로 격침했다.”

박물관 해군 전시코너에는 전쟁 당시 갑판 위에서 최종 출항점검을 하는 잠수함 승조원들과 위풍당당한 전함 사진들이 곳곳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 해군 군함.  필자 제공

 


테살로니키의 무스타파 케말 생가

테살로니키 중심부에 버티고 있는 터키 영웅 무스타파 케말 생가! 그리스인들은 시내 안에 터키인의 성지가 있다는 것이 기분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케말 생가와 인접한 터키영사관은 24시간 그리스 무장경찰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 2층 생가에는 케말 가족사, 소년 시절 사진들이 전시돼 있으며 그의 생애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케말은 1881년 오스만제국이 지배했던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군인의 꿈을 키워온 그는 마나스티르(Manastir) 군사고등학교를 거쳐 이스탄불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으로 조국이 해체 위기에 놓이자 케말은 1923년 초대 터키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는 종교와 정치 분리, 사회개혁을 통해 터키를 새로운 국가로 부활시켰다.”

생가 내부관리 여직원까지 케말에 대해 진심 어린 존경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 직원은 터키 앙카라에 있는 ‘아타튀르크(조국의 아버지) 케말 기념관’에도 꼭 들러볼 것을 신신당부했다.


[팁]

독일공수부대와의 크레타혈전

연합군 전세 만회에 밑거름돼

 


1941년 5월 20일, 독일 공수부대원 2만2000명이 그리스 크레타섬에 기습적으로 강하했다. 이 섬은 영국과 그리스군 5만7000명이 방어했으나 결국 독일군이 6월 1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너무 많은 정예 공수부대원을 잃게 된 히틀러는 더 이상의 공수작전을 금지했다. 반면 연합군은 이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마켓가든 작전에서 대규모 공수작전으로 전세를 만회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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