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최삼규 병영칼럼] 조화와 공존을 위하여

입력 2016. 04. 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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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세렝게티 초원에 촬영하러 갈 때는 그곳에 가기만 하면 육식동물들의 멋진 포식(捕食)장면을 멋있게 잘 촬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한 후 초원으로 촬영차 나가면서부터 온갖 걱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초식동물들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그 드넓은 초원을 뒤덮고 있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육식동물들은 통 볼 수가 없었다.

한 일주일을 찾아 헤맨 끝에 어렵사리 사자를 발견했지만, 녀석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사자는 한번 사냥해서 배가 부르면 시원한 그늘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4~5일 이상씩이나. 그러니 촬영팀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입에선 원망 어린 욕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런데 한 6개월쯤 지나면서부터 나는 하늘이 내려준 오묘한 진리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을 사냥해서 살아가는 육식동물이 이렇게 자지 않고 마구 돌아다닌다면 초식동물은 얼마나 불안할까. 그러니까 배고픔을 해소했으면 모두 자라는 하늘의 지엄한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육식동물을 보면서 점점 신통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냥을 썩 잘하는 맹수류가 아니다. 사자는 초식동물에 비해 주행속도가 느리고 지구력도 없는 편이다. 게다가 사냥할 때 펄쩍 뛰어올라 초식동물의 숨통을 죄어야만 하는데 이런 순발력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초식동물은 날카로운 오감을 갖고 있어서 사자가 사냥하려는 낌새만 보이면 재빠르게 알아채고 사냥 거리 밖으로 피신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빨라서 사자가 쉽사리 사냥할 수 없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치타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은 순간 최고속도 시속 112㎞를 달릴 수 있지만 600m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그 이상 이렇게 전력질주 했다간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번 전력질주 한 후에는 1시간 이상 쉬어야 하고 전력질주는 하루에 고작 세 번 정도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치타는 주 사냥 대상인 가젤 떼에 들키지 않고 가까이 사냥 거리 안으로 은밀하게 접근해야 하므로 낮은 자세로 포복한다든지 몰래 뒤로 돌아 접근하는데 이런 모습은 병사들이 각개전투할 때와 흡사하다. 간신히 사냥 거리 안으로 접근했다가도 민감한 가젤이 눈치를 채고 재빠르게 사냥 거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기 일쑤라 그야말로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물학자들은 야생 생태를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라는 세 단어로 살벌하게 표현하는데 겉으로 보면 맞는 얘기 같다. 그런데 세렝게티 초원을 누비면서 이곳이야말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서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장점과 강점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장병들도 평소 상호 배려와 양보 속에 조화롭게 공존하면 그야말로 평화롭고 즐거운 병영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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