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육군73사단 사자연대 감성치유교육
최신가요 부르며 스트레스 ‘싹’
간부 참관 없이 ‘진정한 소통’
부모님 모시고 뜻깊은 공연도
지난 10일 오후 2시 육군73사단 충일다산관.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50여 명의 장병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단 예하 사자연대가 장병 가족들을 위해 부대 개방행사를 열었던 것. 가족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전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행사 순서는 여느 부대의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심지어 약간은 어설프고 어색한 장병들의 노랫소리 역시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장병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보다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행사였다.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 이날 오전으로 돌아가보자.
3월부터 시작된 감성치유교육
“자~ 페이드 아웃(Fade Out)되면 1·2(생활관)가 들어가는 거야. 5·6은 어딨어?”
4시간 전인 오전 10시 충일다산관. 군에서 흔히 듣기 어려운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음악치료사 심재연 씨. 심씨는 이날 장병들이 부모님 앞에서 펼칠 ‘감사 나눔 공연’의 총기획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공연에 참가하는 장병 20여 명은 모두 올해 심씨가 연대에서 실시한 감성치유교육을 수강한 이들이었다. 지난 3월 시작된 감성치유교육은 자신의 사연을 담은 음악을 발표하고 전우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특별한 수업이었다. 흔히 음악을 통한 ‘힐링’이라고 하면 클래식처럼 잔잔한 음악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심씨가 진행한 교육은 달랐다. 단순히 음악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닌 음악과 장병 개개인을 결합시키고 또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여러 동료들에게 풀어내며 자기 치유와 소통의 효과를 동시에 얻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육에 등장하는 노래들도 장병들의 평소 취향에 맞춘 최신 가요가 더 많았다.
음악치료사 심재연 씨 ‘재능기부’
교육은 보다 장기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찾던 김금수(대령) 연대장이 인사장교 정재원 대위를 통해 심씨를 소개받으면서 시작됐다. 정 대위 역시 지인을 통해 심씨를 소개받은 터라 서로를 잘 알지는 못했던 상황. 하지만 심씨는 “병영문화 혁신에 힘을 보태달라”는 연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이런 전문가를 초빙하려면 많은 강사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심 선생님은 재능기부 형태로 지원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김 연대장의 말이다.
교육에 앞서 심씨가 부대에 부탁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간부들이 참관하지 않는다’였다. 장병들이 간부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장병들의 마음의 문도 금세 열렸다고 한다.
“느닷없이 제 경험을 노래에 담으라고 하니 당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진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진웅 상병의 말이다.
평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노래와 함께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지게 됐다. 백효빈 상병은 “서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계기였다”며 “선·후임 간의 이해와 소통의 시간이 만들어진 것이 교육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장병들과 두터운 친밀감 ‘차곡’
당초 수업은 총 10번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앞서 가진 리허설까지 심씨는 장병들을 훨씬 많이 만나게 됐다고 한다. “원래 계획된 수업 시간에 장병들이 사정상 못 나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럴 때면 속이 많이 상했죠. 그런데 ‘일과 후 생활관으로 오셔서 수업을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는 아이(장병)들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죠. 그렇게 저녁에 생활관으로 찾아가 수업을 진행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심씨의 설명이다.
장병들을 향한 심씨의 정성은 대단했다. 이날 오전 리허설 중간 중간에도 그는 장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마치 남동생에게 하듯 친근하게 대했다. 장병들을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애정의 발현인 셈이다. “어떨 때는 선생님이 간부님보다 더 보고 싶기도 하다”는 말을 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장병들의 신뢰 역시 두터웠다. 마음의 문을 연 지 10개월여 만에 생긴 눈에 띄는 변화다. 이날 공연 역시 “그동안 배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장병들의 요청에 따라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아들의 노래, 가슴 뭉클하네요”
오전 내 진행된 리허설이 끝나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G.O.D의 히트곡 ‘촛불 하나’로 시작된 공연은 장병들의 사연과 마음이 담긴 곡들로 이어졌다.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담긴 ‘진정성’만큼은 프로나 다름없었다.
“부모님과 멀어졌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이제 과거의 방황을 접고 미래를 향해 나가고 싶습니다. 항상 곁을 지켜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습니다.” 한 장병의 눈물 어린 고백과 함께 이어진 합창은 공연을 지켜본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감동적인 공연은 인순이의 ‘아버지’를 열창한 김 연대장의 깜짝 이벤트로 마무리됐다. “뜻깊은 행사인 만큼 연대장님도 한 곡 불러줬으면 한다”는 심씨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자리라고 한다. 사자연대의 특별한 공연은 끝까지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가슴이 뭉클하죠. 우리 아들들이 군에 와서 이렇게 많이 자랐다는 것이…. 우리 아들에게는 엄마지만 저도 오늘만큼은 제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음악과는 거리가 먼 아들이 저를 위해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불러줬다는 사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신철 병장의 어머니 장명원 씨가 기자에게 한 이 말은 이날 공연과 감성치유교육의 의미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듯했다.
“마음이 예뻤던 장병들 오히려 제가 힘 얻었죠”
[인터뷰] 음악치료사 심재연 씨
“선곡, 자리, 역할 모두 아이들 각자의 특성을 살려서 배치했어요. 다들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육군73사단 사자연대의 감성치유교육을 담당한 음악치료사 심재연 씨는 지난 10일 장병들의 공연 리허설이 끝난 뒤 이렇게 말하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장병들을 바라봤다.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집단 교육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죠.”
음악치료의 개념과 장병들에게 미친 효과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업이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부대 사정으로 수업을 받는 장병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 때마다 힘들었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오히려 힘을 준 것은 장병들이었다고 한다. “제가 힘들어할 때 오히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더군요. 마음이 참 예쁘죠?” 심씨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병들이 수업을 통해 음악을 통해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부대가 불러만 준다면 내년에도 수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제 음악치료가 군 생활에 활력소가 됐으면 해요. 무엇보다 마지막 공연까지 함께해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고요.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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