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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빛난 5000만 년의 진화처럼 새 무기·전술… ‘불가능은 없다’ 창조

입력 2015. 11. 0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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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박쥐와 나폴레옹 전쟁


키 콤플렉스 있던 나폴레옹 

열등감 극복하려 바이콘 모자 

두개의 뿔 실루엣에 ‘박쥐’ 별명

 

 


 

  단풍 색깔이 짙어져 가는 요즈음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 간혹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박쥐에 놀라기도 한다. 유럽 대륙은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의 7년전쟁(1756∼1763) 후 잠시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나 어둠 속 박쥐처럼 홀연히 나타난 나폴레옹의 정복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나폴레옹, 어둠 속에서 빛나다

 바실 헨리 리델하트의 전략론 제1부 8장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빛과 그늘 20년을 말한다. 전반부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한 1796년부터 프로이센군을 대파한 1806년 예나전투까지 빛났던 10년을 망라한다. 리델하트는 나폴레옹 군대의 연전연승 요인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보병을 경량화해 행군속도를 분당 70보에서 120보로 빠르게 했고, 사단 편제로 편성해 적시적절한 분산과 기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보급품의 현지 조달을 통해 공격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1793년 툴롱전투에서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의 군사적 재능을 뒷받침한 것은 부르세의 분진합격(分進合擊)과 기베르의 기동성 있는 포병의 집중운용 및 적 균형을 깨뜨리기 위한 후방공격 이론이었다. 그는 전략과 전술의 혁신적 변화를 시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군에 가담한 열렬한 자원자들을 위해 멋진 군복을 마련해줌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리고 자신도 강한 이미지로 가꿨는데 그 수단이 박쥐 모자였다.

 이른바 나폴레옹 모자는 1800년 7월 오스트리아 마렝고 전투 후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모자는 당시 대중에게 유행했는데 앞에서 보면 박쥐가 날개를 편 것처럼 특이해서 멀리서도 위력적인 실루엣이 드러났다.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나폴레옹의 유럽정복 전략은 몸집이 매우 작은 박쥐가 5000만 년을 살아 온 지혜를 닮았다.

 

■박쥐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

 박쥐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친숙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에 적합한 생존전략을 취해온 포유동물이다. 박쥐는 낮 동안 거꾸로 매달려 쉴 때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다. 날기 위해 다리 무게를 줄이고 발가락 아래 구부러진 갈고리발톱으로 천장 등에 쉽게 매달린다. 강하고 빠른 새들과 경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밤에 먹이 사냥에 나선다. 꼬리 주머니를 이용해 곤충을 잡거나 날개 표면에 붙은 곤충을 찍어서 먹는다.

 박쥐는 농사꾼이기도 하다. 열대림에서 꽃가루 매개자 구실을 한다. 벌처럼 꿀과 꽃가루를 먹으면서 식물의 가루받이를 돕는다. 열매를 먹고 이곳저곳에 씨앗 섞인 배설물을 뿌려 과일 나무를 퍼뜨리는 것은 여느 새들과 같다. 태국에 사는 벌처럼 조그마한 박쥐는 꽃을 옮겨 다니며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혀 망고나 아보카도가 열매를 맺게 해 주기도 한다. 열매를 먹고 사는 균이나 해충을 잡아먹고 배설물은 비료가 돼 생산량을 증대시킨다.

 박쥐가 깜깜한 어둠 속을 빨리 날 수 있는 것은 반향정위(反響定位) 때문이다.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음파가 부딪쳐 되돌아오는 소리로 물체 위치를 파악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레이더는 박쥐의 음향반사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박쥐는 머리 부분에서 초당 190번 이상의 고주파를 발사하고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음향을 귀로 수신한다. 그 반사파를 분석해 물체 종류와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군사적 식견도 박쥐처럼 정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배가됐다. 그리고 박쥐같이 새로운 무기와 전술을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박쥐모자는 ‘불가능은 없다’를 상징

 “나의 사전엔 불가능은 없다!”라며 전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도 작은 키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별명도 꼬마 하사관이었다. 나폴레옹은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어로 ‘두 개의 뿔’이라는 뜻을 지닌, 양쪽으로 챙이 접힌 바이콘 모자를 썼다. 그는 모자의 두 개 뿔이 좌우로 가도록 했고 한쪽을 어깨까지 기울여 썼다. 전장에서 적군은 나폴레옹이 쓴 모자의 실루엣 때문에 ‘박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프랑스 화가 다비드는 1800년 5월 나폴레옹이 알프스 생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모습을 담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다. 그런데 백마 마렝고를 탄 나폴레옹 말발굽 아래에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와 서유럽을 제패한 두 영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과 9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샤를마뉴다. 나폴레옹은 실제로는 현지인이 이끄는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으나 다비드에 의해 영웅화됐다. 이 한 폭의 그림은 비록 사실과는 다르지만 영웅을 꿈꾸는 자에게는 필요했다. 상징적 언어나 사진 한 장 또는 그림 하나에 영감을 받아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지난해 나폴레옹 1세가 썼던 모자가 경매에 나왔다. 한 기업인이 이것을 모자 경매 사상 최고액인 26억 원에 구입했다. 나폴레옹이 생존 시 사용한 120여 개의 모자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19개다. 낙찰된 모자는 그중 하나였다. 이 모자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기병대 소속 수의사에게 선물로 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모자를 산 사람은 어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에서 시작해 자산 5조 원대의 대규모 육가공업체를 일군 기업 경영자다. 장병들도 박쥐모자를 쓰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그림을 보면서 성공의 자화상을 그려보자. 꿈은 그린 것보다 더 크게 이뤄진다.

오홍국 전쟁과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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