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7) 유라시아친선특급
수많은 인명과 바꾼 1941년 모스크바 전투의 승리
무명용사의 묘에서 전쟁억제력 중요성 다시 곱씹어
세계 최장 직통노선 서울까지 뻗는 통일한국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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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전투는 모르긴 몰라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주요한 전투였고, 이론의 여지없이 두 군대 사이에서 벌어진 사상 최대의 전투였다. 양측을 합쳐서 약 700만 명의 장병이 참전했다. 그중 250만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실종되거나 입원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세계사 최대의 전투-모스크바 공방전’/앤드루 나고르스키).
26일 유라시아친선특급은 시베리아횡단열차(TRS)의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했다. 지난 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12일간에 걸쳐 무려 9288㎞의 길을 달려온 것이다.
흔히들 말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정신이라면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이라고. 그렇듯 모스크바는 인구 1200만 명, 면적 2400㎢(서울의 4배)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도시다. 역을 나서자 도로 크기가 우리를 압도한다. 왕복 16차선이다. “아, 여기가 진짜 러시아구나.” 정신이 바짝 든다.
간단히 여장을 풀고 도시 순회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붉은광장 인근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였다.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영원의 불길이 타오르는 이 묘는 1941년의 모스크바 전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해 10월, 독일군이 모스크바 교외 수십 킬로미터(㎞) 밖까지 접근해오면서 모스크바는 함락 위협에 빠지게 되고, 스탈린은 간부들에게 임시수도로 정해둔 쿠이비셰프로 피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에 남아 전쟁을 독려했다. 모든 상황이 암담했지만 소련 국민들과 모스크바의 시민들은 끝까지 조국과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성인 남성들은 자진해 입대했고, 도시에 남은 여성과 소년들은 참호를 파거나 서치라이트를 돌리며 모스크바를 하나의 거대한 요새처럼 만들어냈다. 마치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민·관·군이 합심한 것처럼.
치열한 공방 끝에 독일군은 물러났다. 독일군의 무패 신화가 깨짐과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의 추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전투였다.
그러나 이는 소련 입장에서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소련군의 사망자 수는 독일군의 사망자 수보다 평균 세 배가량 많았으며, 전투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역시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전쟁억제력이 필요한 이유다.
외교부 관계자는 “무명용사에 대한 헌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인명 피해국(러시아 측 추산 민간인 포함 2700만 명)인 러시아의 커다란 희생과 기여를 한국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면서 “올해는 한·러 수교 25주년일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발길을 돌려 붉은광장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지난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했던 8일을 승전일로 본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치가 옛 소련군에 다시 한 번 항복을 서명했던 9일을 승전일로 기념하고 있다.
당시 승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는 1만6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됐고 최신형 T-14 아르마타 탱크와 RS-2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첨단 방공 미사일 S-400 등이 모습을 보였다. 4.5세대 전투기로 불리는 최신 전투기 Su-35, 전략폭격기 Tu-95MS 등은 하늘에서 위용을 뽐냈다. 각종 군사장비 190여 대와 군용기 140여 대가 총동원됐다. 소련 붕괴 이래 최대 규모였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야로슬라블역에는 세계 최장거리 직통노선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평양으로 가는 국제열차다. 거리는 1만㎞가 넘는다. 이 기록은 경신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이 된다면 서울로, 부산으로, 목포로 열차 거리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통일 이전에 남북철도가 연결되더라도 언제든지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하나 더, 러시아의 역 이름은 도착지 이름을 따서 짓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남북철도가 연결된다면 야로슬라블역의 이름도 서울역 또는 카레이스키역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역의 이름도 변경되고 최장거리 노선의 기록도 경신되기를 바라는 게 친선특급 참가자들의 하나 같은 염원이다.
jataka@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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