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칭기스칸 따라 2500Km <25>
“얼기다! 으아아악! 흑흑흑.”
얼기, 최종 종착지여서인지
프로젝트 마무리 의미인지
속 안의 응어리가 끓어오르며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100㎞ 표지판 바로 옆에 있는 게르 주인에게 듬직이를 맡겼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게르로 들어가서 유목민에게 말 한 마리를 이틀 동안 3만5000투그리에 급히 빌렸다. 새로운 말의 이름을 ‘기적’이라고 붙여줬다. 녀석은 온순하고 차분했지만 겁도 없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달려 보니 처음에는 꽤나 신나게 달리고서는 돌 때문인지 천천히 경속보로 가더니 이내 걷기 시작했다. 대환이와 정우가 나에게 다가왔다. “형, 이 속도로 가면 내일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은데, 오늘 밤새워서 달리는 건 어때?”
나와 재웅이 형은 잠깐 고민한 후 결정 내렸다.
“좋았어! 여기서 밥 먹고 우리 밤새워서 가보자. 마지막 날 우리 엄청난 것을 시도하고 있어!”
“우린 미쳤다! 진짜 재미있겠다! 야간 행군한다는 느낌으로 달려 보자!”
처음이자 마지막, 새벽 행진
출발과 동시에 말 바로 뒤에서 자동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춰줬다. 우리도 59일 만에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일이었다. 저녁 6시께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돌멩이가 너무 많은 지역이어서 말이 달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의 평화를 갖고 온몸에 힘을 빼고 말이 달릴 수 있는 포인트에 채찍질을 하거나 옆구리를 차주면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모든 운동이 힘을 빼야 되는 것처럼 승마도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없는 힘마저 빼야 하는 것이 바로 승마인 것 같다. 대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지형적인 요소인데 전부 자갈이 깔려 있다 보니 그나마 없는 곳을 밟아서 달려야 한다.
2시간 만에 5마일을 걸었다. 그리고 교대로 형님이 걸으실 때면 나는 말 뒤에서 따라가는 차에서 눈을 붙였고, 금방 2시간이 지나 다시 나는 말을 갈아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20마일을 가는 데 약 8시간이 지났다. 새벽 2시.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심지어 나와 말이 바람에 날아갈 듯했다.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 차가움이 스며들어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밤새도록 우리는 달렸다.
록따 형이 이제 아침이니까 한번 달려보라고 했다.
‘밤새도록 쉬지 못했고, 어제 처음으로 횡단 길에 올랐는데 이 녀석 체력이 남아 있을까? 거리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자~ 기적아, 가자! 진짜 시작이다! 달려볼까~!”
나는 밤새 한번도 재촉하지 않았던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그리고 엉덩이에 몇 차례 채찍질을 하면서, 고삐를 부드럽게 놔주다가 다시 부여잡기를 반복하면서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녀석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더 거세게 발동을 걸어 채찍질을 가했다. 녀석의 발에 불이 붙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았고, ‘미친 듯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불과 30초도 되지 않아 속도를 엄청 내는가 싶더니 달려가는 차를 따라잡아 버렸다.
차에 있던 팀원들이 모두 창문을 열고 깜짝 놀라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와! 대박이다!”
달리고 있는 나조차도 이 녀석에게 더없는 감사를 느끼면서 우리는 하나가 돼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침의 기운을 받았는지 지칠 줄 모르고 달려준다. 속도를 서서히 줄이면서 가볍게 뛰다가 걷는데, 차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형, 2마일 다 왔어!” 불과 몇 분도 안돼 도착했다. 어젯밤에 5마일을 가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총 20마일을 가는 데 8시간 걸렸다. 아마 녀석도 밤새워 보이지 않는 길과 자갈밭을 걷느라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드디어 얼기 도착
언덕을 계속 올라갔다. 그러다가 다시 내리막. 여기는 거대하다. 몽골다운 거대함. 짧은 내리막 뒤로 다시 오르막.
‘저기까지만 달려 보자’ 세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차도 보이지 않는 지금, 저편 너머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이 예감은 뭐지.
좋지도 싫지도 않은 뭔가 야릇한 기분이 내 몸을 파고들면서, 이제는 완전히 환해진 아침 기운을 머금고 오르막 길을 올라가는데, 우리 차가 보이면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도착한 것인가? 설마.’ 정말 야릇하다. 모두가 밖에 나왔다. 민성이는 태극기를 휘날린다. 정우는 카메라를 들고 갑자기 달려오고 있는 나를 찍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재웅이 형이 나에게 달려와서 이야기를 해줬다.
“동진아, 얼기다! 얼기 도착이다!”
“얼기요? 얼기? 진짜로 얼기야? 우리 최종 목적지 맞아?”
우리가 서 있는 언덕 저 멀리 아래로 작은 마을이 보였다.
“얼기다! 진짜 얼기다!” 나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얼기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미친 듯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재웅이 형과 한 손을 불끈 잡고 소리쳤다.
드디어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얼기에 도착한 것이다. 갑자기 속에서 나도 모르는 뭔가가 울컥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속에 있던 응어리가 끓어오르면서 훌쩍거림으로 바뀌었다.
“얼기다! 우리가 드디어 얼기에 도착했다!” 형과 나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계속되는 훌쩍거림이 점점 의식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얼기를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내 머리와 가슴에서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하더니, 가슴속에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한방에 터지고 말았다.
“얼기! 으아아악! 흑흑흑 아아.” 나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왜 내가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횡단에서 얼기가 의미하는 것이 최종 종착지인지, 아니면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그 모든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울고 있는 순간 아마 내 횡단의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역사를 만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그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많이 참고 또 참은 것을 몸으로까지 느꼈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많이 힘들었구나.’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몽골 횡단.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칭기즈칸이 달렸던 이 땅 위에 내려놓을 시간이 왔다.
우리 6명과 말들이 해낸 역사에 남을 이야기. 우리가 가는 그 길이 바로 ‘역사’였음을 나는 깨달았다.
“인간은 끝없이 진짜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지막이 나에게 속삭였다. “동진아, 고생했다. 정말 큰 고생했다. 나는 네가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청년모험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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