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그 後

˝기름띠 이겨낸 인간띠…하나된 민관군의 기적”

이주형

입력 2015. 05.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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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태안기름유출 당시 육군32사단 연대장, 김영준 육군개혁실장


하루종일 퍼내고 닦아내고 ‘기름과 전쟁’…툭하면 코피 터져

연인원 17만 명 구슬땀…사고 없이 대작전 성공 ‘무한 자부심’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께. ‘쿠웅’ 하는 둔중하면서도 불길한 굉음이 서해 바닷가에 울렸다. 15만 톤 크기의 유조선과 크레인선이 충돌한 것. 이 부딪침으로 인해 유조선에 구멍이 3곳 뚫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천천히 흘러 나오던 기름(원유)은 30㎝ 두께를 채우더니 어느새 30~100m의 폭으로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충남 태안과 서산 등 서해안 일대 1105㎞의 해안을 오염시킨 태안기름유출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는 민관군이 합심해 일궈낸 기적이 탄생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안 들립니다’. 해안기지에서 처음 상황보고를 받을 때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바닷물이 해변으로 밀려왔다 부딪치면서 철썩 하고 소리가 나는데 기름 때문에 점성이 생겨 소리가 안 났던 거죠. 긴급상황이다 싶어 급히 만리포 현장으로 갔더니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라고요, 완전히 고요한, 시커먼 색깔의 죽은 바다였죠. 기름 냄새만 심하게 나고.”

 김영준 육군개혁실장(준장·육사 40기·사진)은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사고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육군32사단의 연대장이었다.

 사고 발생 당일 태안군과 해경은 유출된 기름이 조류의 영향으로 중국 방향으로 이동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계속 주위 해안으로 번져만 갔다. 단순한 사고가 아닌 국가적 재앙이었다. 따라서 대기하고 있던 연대 병력이 우선 방제작전에 나섰다. 온종일 해안의 기름을 퍼내고 바위 등을 닦아냈다. 때맞춰 군에서도 대대적으로 지원 병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숙소였다. 하루이틀에 끝날 일도 아닌데 그것도 겨울에, 장병들을 텐트에서 숙식시킬 수는 없었다.

 “마침 발전소 연수원, 학교 휴양지 등이 생각나더라고요. 우리 지역에 있었으니 실태는 파악하고 있었죠. 그래서 태안군청을 찾아갔는데 거기도 정말 어수선하고 정신없더라고요. 워낙 대형사고인 데다 이런 것을 경험해 본 일이 없으니까요. 다행히 군청의 협조를 받아 비어 있던 그 장소들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군의 방제작전은 2008년 5월 30일까지 102일간 진행됐다. 32사단을 비롯해 61사단, 특전사, 205여단, 해·공군 등 20여 개 이상의 부대와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연인원 17만7394명의 병력과 2939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들에게 더욱 안전한 지역을 맡기고 장병들은 절벽이나 외진 곳, 바위지대 등 험한 장소를 담당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가면서라도 방제에 힘썼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해지면 돌아왔다. 고된 나머지 점심 먹고 잠깐 쉬는 시간이면 픽픽 쓰러져 잤다. 돌아와 샤워하는데 툭하면 코피가 터졌다.

 “장병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장병의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도 현장에 같이 있다.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야기해 달라. 조치하겠다. 전역하고 나서 문제가 있어도 알려 달라. 그런 것에 대해 후속조치를 취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자원봉사자들도 장병들 고생한다고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사건사고는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육군이 아니 국군이 전쟁 외의 작전을 펼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사고가 없었던 일은 처음이었다고 당시 관계자들은 기억한다. 또한, 이는 2002년 월드컵에 이어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나선 기념비적 사건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기름유출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새 8년이 흘렀다. 장병들과 자원봉사자들 지원에 힘입어 태안 바닷가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은 지 오래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예상치 못한 재난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질 것이며, 우리 군의 지원도 확대될 것이다.

 “사실 군만큼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난 조직은 없습니다. 항상 위기에 대비한 훈련을 하기 때문입니다. 재해재난과 관련해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으로, 초기대응을 잘 못하면 사상자가 엄청나고 피해가 커집니다. 따라서 재난 발생 초기에 군의 효율적 활동을 위해 관련 예산과 물자, 장비를 즉각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그가 태안기름유출사건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태안기름유출사건은?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인근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의 예인줄이 절단되면서, 입항을 위해 정박 대기 중이던 원유운반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크레인선이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 당시 원유 1만2547㎘(7만8918배럴)가 유출됐다.

 복구에 반세기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등 비관적인 전망이 있었지만, 전국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1년여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특히 일본이 3개월 동안 3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미쿠니의 기적’으로 자랑하는 1997년 후쿠이현 해안 기름유출 사례보다 4배가 많은 123만여 명의 인원이 참여, 위기상황에서 한국인들의 단결력과 극복의지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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