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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군함 건조기술 힘찬 첫걸음…‘미약한 시작, 그 끝은 창대하게…’

이주형 기사입력 2015. 05. 05   17:09

<38> 최초 국산전투함 울산함의 초대 함장 황완기 제독

 


 

 


 

 

 

 

 1980년 4월 8일 울산 현대중공업 기지.

 최규하 대통령의 축사가 끝나자 주영복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각군 참모총장 등 참석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 영부인 홍기 여사가 도끼로 줄을 끊자 선수 앞에 마련된 샴페인이 터지고 꽃바구니에서 오색테이프와 꽃가루가 쏟아졌다. 독 안으로 해수가 들어오며 울산함은 서서히 진수됐다. 울산함이 공식적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첫 순간이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전투함이었기에 해군, 나아가 국민 모두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만들어진 미 해군 구축함을 들여와 이름을 바꿔 사용했었죠. 또 이전까지 국내에서 건조한 전투함정이라곤 무게가 200톤에 못 미치는 참수리급 고속정밖에 없었으니까요.”

 황완기(해사16기·예비역 소장) 전 제독은 당시 울산함 진수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 군 전력화 사업 일환 국민 기대 커


 그는 1978년 해군본부에 특수사업처가 생기면서 예비 함장(Pre Command)으로 임명돼 울산함 건조에 관계하다가 1980년 해군에의 인수를 앞두고 초대 함장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울산함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울산함 건조는 우리 전력화를 위한 율곡사업의 역점사업 중 하나였다. 잠수함 건조와 함께 추진됐다. 특히 잠수함은 영국과 독일 등 유럽지역에 가서 기술 지원을 위한 협약도 받았으나 미국의 반대가 심했다. 잠수함이 있으면 북한에 대한 단독 공격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유. 그래서 잠수함 건조를 포기하는 대신 울산함에 대한 적극적인 기술지원을 약속받았다.

 1976년 설계가 시작되며 울산함 건조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1500톤급 전투함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탑재무기·추진장비·통신시스템 등 각각의 장비 하나하나를 선정하고, 그것이 완료된 후에는 단독으로 또 다른 체계와 연동되는지 점검해야 했다. 이 같은 일을 위해서는 당시 기술지원을 하던 외국인 기술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들이 감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황 제독에 의해서.

 “황천(荒天·비바람이 심한 악천후) 때 함정의 장비체계들이 제대로 가동되는지 시험해야 하는데 외국인 기술자들이 위험하다고 안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때는 이들을 미리 부식창고 같은 데 붙잡아 두었다가 바다에 나가 풀어주곤 했지요. 몇 번 그렇게 했더니 나중에는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더라고요. 아마 그때 이들이 고소 고발했으면 큰 문제였을 겁니다. 물론 항구에 돌아오면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등 마음을 풀어주어 앙금이 남지 않도록 했죠.”

 

  ● 정주영 “중공업, 너희가 잘못했어”


 울산함은 그해 12월 24일 해군으로의 인수를 앞두고 큰 사고를 한 번 더 겪었다. 울산 현대중공업 독에 있었는데 당시에 발생한 엄청난 파도와 해일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떠다니는 철제 부유물을 소총으로 쏴서 가라앉히려고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끝내 소나 장비가 있는 부분이 파손되고 침수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파손된 구멍은 수리해 메꾸면 되지만 문제는 침수된 소나 장비.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에 하자 보수를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국방예산에 태우고 장비를 받으려면 몇 년은 걸려야 했다. 이때 정주영 회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중공업 너희가 잘못했어. 국가사업인데 사고 안 나게 빨리 지원했어야 하잖아. 우리가 물어내.”

 그래서 30일 울산함은 해군에 소나가 작동이 안 되는 상태로 조건부로 인수되고 다음해 1월 1일 취역식을 거행했다. 소나 장비는 4개월여 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공수돼 교체했다.

 

  ● 국산 1호, 해군전투함 역사 속으로


 이후 울산함은 1983년 12월 지휘함으로서 부산 다대포 해안에 침투한 간첩선을 격침했고 1993년 대한민국 해군 함정 중 처음으로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영광을 누리는 등 많은 활약을 보였다.

 한편 황 제독은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해양을 누비던 울산함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선체 노후화 탓에 2014년 12월 30일 퇴역식을 한 것이다. 국산전투함 시대를 열었던 양대 주역이 사라진 셈.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해전의 주역은 대양을 누비는 군함이며 군함 건조술은 해군력의 바탕이 된다는 것. 우리 해군은 2008년 건군 60돌을 맞아 부산 앞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을 했다. 이 자리에는 첫 이지스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아시아 최대 규모 수송함인 독도함, 한국형 구축함인 강감찬함, 최영함, 충무공 이순신함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산 군함 건조술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울산함이었다.

 

 

   [울산함은?]

 우리나라에서 자체 제작한 최초의 전투함으로 처음에는 구축함으로 취역,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함으로 역할을 수행하다 KDX 사업으로 광개토대왕함이 등장하면서 호위함으로 함종이 변경됐다.

 울산함은 당시 해군의 주력이던 미국제 중고 구축함과 달리 자동화된 사격통제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함정과 지상 레이더기지의 실시간 정보교환을 담당하는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을 탑재해 초계함과 고속정들을 지휘 통제하는 기함 역할을 맡아 함대의 해상 전투능력을 끌어올렸다. 울산급 호위함은 서울함, 충남함, 마산함, 경북함, 전남함, 제주함, 부산함, 청주함을 포함해 총 9척이 제작됐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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