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음식

유보트승조원, 통조림 먹고 화장실 ‘들락날락’

입력 2015. 02. 11   17:52
0 댓글

<100> 정어리



 


 

 


 

 

 ’노르웨이, 獨 정어리 수탈에 설사 유도약 뿌려 ‘맞불’

 

 “노르웨이 어부들이 잡은 정어리를 모두 독일과 독일군 점령지역으로 수송하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듬해인 1940년 4월, 독일군이 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노르웨이를 공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노르웨이는 북유럽에서 최고로 수산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정어리 어획량은 노르웨이가 세계 첫째, 둘째를 다툴 정도로 많았다.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부에서는 유럽 전역으로 전선이 넓어지자 노르웨이산 정어리를 다른 지역으로 운송할 것을 명령했다.

 청어과인 정어리는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다. 음식으로 먹기도 하지만 기름을 추출해 산업용·군사용으로 쓸 수 있어 군수물자로 활용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도 일본의 정어리 공급 기지 역할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정어리의 42%를 일본이 수탈해 갔고 또 가져간 정어리는 군용 통조림으로 가공하거나 기름을 추출해 군사용으로 사용했다.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노르웨이에서 잡히는 막대한 양의 정어리를 유럽 내륙으로 옮겨 군용 통조림으로 가공하거나 군수용 기름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애써 잡은 물고기를 빼앗기다시피 넘겨주고 또 생계를 위협당하게 됐으니 노르웨이 어부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점령군인 독일군의 총칼 앞에서 노골적으로 반항할 수는 없었다.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반년이 지났을 무렵, 노르웨이에는 폭넓은 형태의 저항 조직이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지역에서의 레지스탕스 활동은 프랑스가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르웨이도 못지않았다. 다만 직접적인 무장 저항보다는 태업 중심의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첩보원들은 활약이 대단해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효율적인 간첩 망을 구축해 놓았다고 전해진다. 독일군 사령부에도 직접 잠입했다.

 노르웨이산 정어리를 모두 독일 및 주요 독일군 점령지역으로 운반하라는 독일군 사령부의 지시가 떨어지자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조직의 첩보망이 그 이유와 명령의 배경을 캐기 시작했다. 물론 군수용 통조림과 정어리유 제조가 목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 일부가 영국에서 가까운 프랑스 중부 해안의 독일군 해군기지 생나제르로 들어간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생나제르는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이후 카를 되니츠 제독이 지휘하는 독일 해군 잠수함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근거지로 독일 해군은 전쟁 무기와 식료품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연합국 선단을 다수의 유보트 잠수함으로 집중 공격해 침몰시키는 ‘바다의 이리떼(wolf pack)’ 작전을 수행했다.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첩보망은 생나제르 항구로 보내지는 노르웨이산 정어리가 바다의 이리떼 작전에 참가하는 유보트 승조원들에게 제공될 통조림 원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유보트의 작전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미국이 참전한 이후에는 미국과 캐나다 연안, 그리고 멕시코 만까지 진출했고 아프리카 해안과 심지어 일본의 활동 무대였던 동남아 페낭까지 간 적도 있다. 작전 범위가 넓다는 것은 한 번 출항하면 그만큼 장기간 바다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져가는 일부 정어리의 목적지와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조직은 기발한 작전을 구상했다. 지하조직 지도자들은 영국 런던의 첩보부대와 접촉해 다량의 크로톤 오일(croton oil)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크로톤은 전자파 차단과 공기정화 효과가 있어 최근 많이 재배하는 식물이지만 여기서 추출한 기름은 주로 설사 유도제로 사용된다.

 프랑스 생나제르 항구로 보내는 정어리가 독일군에게 인도되기 전, 노르웨이의 레지스탕스 요원들은 영국의 첩보부대에서 보낸 크로톤 오일을 선적 직전의 정어리에 마구 뿌렸다. 크로톤 오일은 냄새가 역하지만, 정어리 냄새가 더 지독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뿌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설사약을 뿌린 정어리로 만든 통조림은 장기 항해에 나선 유보트 승조원들의 식량으로 잠수함에 실렸다. 비좁은 잠수함에서 원인 모를 설사병에 시달리며 화장실을 들락거렸을 유보트 승조원의 전투력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크로톤 오일을 뿌렸고 그 결과 유보트의 전투력 하락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 때문에 그저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기발했던 작전 중의 하나로 기억될 뿐이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영국 정보 당국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정어리 작전에서 힌트를 얻어 ‘약을 음식에 발라서 먹고 이질을 핑계로 병원에 후송됨으로써 전쟁을 피하라’는 내용의 삐라와 함께 설사 유도제를 사기가 떨어진 독일군 지역에 투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다만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전쟁이 계획보다 빨리 끝났기 때문인지 작전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