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오늘, 필립 선장이 이끄는 11척의 영국 선박이 지금의 호주 시드니항에 입항했다. 영국이 정부 차원에서 호주에 처음 상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곧 호주 역사가 시작된 것을 의미했다. 선박에는 모두 1530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736명은 죄수였다.
영국이 죄수를 실은 배를 호주로 보낸 것은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영국은 이전까지 죄수들을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미국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죄수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황무지 대륙으로 별 관심이 없었던 호주가 새로운 관심을 끌게 된 것.
죄수 유배지를 이곳으로 결정한 사람은 당시 영국의 내무장관이었던 시드니 경으로, 그의 이름은 곧 지명이 됐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한 1월 26일은 호주의 국경일이 됐다.
죄수 유배는 1868년까지 80년 동안 계속됐다. 16만여 명의 죄수가 호주로 옮겨졌다. 그러는 사이 1823년에는 양(羊)도 호주로 들어오면서 양모산업과 목축업이 발달했다. 영국은 호주를 죄수 유배지에서 식민지로 전환하고, 브리즈번과 멜버른 등도 식민지로 개발했다. 모두 6곳이었다.
양모산업의 발달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자유이민자가 늘었다. 영국은 1850년 이들 6개 식민영토를 자치정부로 승격했다. 이들 6개 자치정부는 1901년 호주연방제를 구성,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방안보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