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병사는 병풍속 그림, 영웅만 영상속 펄펄

입력 2014. 05. 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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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기토(一騎討) - 전투는 대장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최고 지휘관 적장과 일대일로 맞서 승부 가려
삼국지의 한 장면 고려·조선시대서도 ‘버젓이’

 

흔히들 조선 시대의 지배세력을 말할 때는 ‘양반(兩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바로 두 개의 반(班) 즉, 글을 읽어 정치를 보좌하는 문반(文班)과 군사조련을 통해 국방을 보좌하는 무반(武班)이 양대 산맥처럼 조선을 이끌었다. 그런데 전쟁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야전을 지휘하는 무반(武班)들이었다. 평상 시에는 글과 정치를 담당하는 문반(文班)들에 의해 정국이 운영되지만, 창칼이 난무하는 야전에서는 오랜 군사경험과 무예훈련으로 다져진 무반들이 전면에 서야만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뛰어난 장수의 휘하에는 늘 용맹한 군사들이 있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적의 창칼을 막아내며 소중한 국토를 방어할 수 있었다. 만약 전략 전술에 능한 장수가 없었다면 이 땅의 오랜 역사는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오위진법 중 곡진·예진·직진·방진·원진의 모습이다. 이 모든 진의 정중앙에 대장은 자리를 잡고 군사들을 지휘했다. 설령 전투 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대장의 주변에는 아병들이 겹겹이 에워싸 최고 지휘관을 안전하게 전장에서 탈출시켜야 했다. 그것이 영(令)이 살아 있는 조직적인 군대의 모습이다. 
필자제공

 전통시대 전장의 최고 지휘관은 단순한 개인의 목숨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의 손에는 수많은 군사의 목숨이 좌지우지됐다. 단 한 번의 전술적 실수에도 엄청난 군사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전통시대 병법서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실제 전투운용 기술보다 오히려 야전에서 지휘관이 가져야 할 덕목과 마음가짐을 더 중요시하기도 했다.

 휘하의 군사들을 아끼고, 군율을 엄하게 세워 진정한 강군으로 만들어 내야만 전쟁수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쟁에 맞서 선봉장으로 출전하는 장수에게 국왕이 군사들의 생살여탈권을 비롯한 모든 권한을 부여한 부월(斧鉞)이나 상방검(尙方劍)을 내렸다. 만약 전투시 지휘부가 타격을 입어 핵심 장수나 부장들이 목숨을 잃으면 전술적 혼란이 더해져 전투를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진을 구축할 때에도 주장(主將)은 중군이라고 해서 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안전을 도모하면서 군사들을 지휘했다. 주장의 안전은 곧 전체 군사권의 안정이었기 때문이다.

 사극 속 최고 지휘관의 일기토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요즘 사극 속에 그려지는 지휘관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지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출중한 외모에 엄청난 무예실력까지 고루 갖춰 전장을 지휘하기보다는 직접 창칼을 들고 전투에 임하는 모습이 ‘영웅’ 그 자체다. 심지어 적으로 등장하는 적장의 모습도 아군의 장수를 능가할 정도로 멋지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반드시 서로 창칼을 맞대고 일대일로 승부를 가른다. 이 부분에서 적의 목숨을 빼앗는 일격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적이 물러가게 된다.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나 장비가 펼쳤던 일기토(一騎討)의 모습이 조선 시대 사극에서도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그러나 장수 개인의 전투가 아닌 조직적인 집단전술체제로 군사전술이 변화한 고려나 조선 시대 전투에는 결코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단 한 번의 전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투의 연속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핵심 지휘관의 부재는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장수의 목숨은 단순한 개인의 목숨이 아닌 전체의 목숨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힌 역사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나 오래되고 비체계적인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불과 200~300년 전의 군대와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오로지 군사 개개인의 무예실력에만 의존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고도로 훈련되고 조직화한 군대를 운용했던 것이 사실임에도 그저 개개인의 용맹을 드러내기 바쁜 모습으로 전쟁과 전투는 각인돼 있다. 대부분 이렇게 조작된 전통시대 군사들의 심각한 오류는 TV 속 사극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돼 거의 굳어진 상태다. 그래서 비상식의 결정체인 일기토의 문제도 지극히 상식인 것처럼 그려져 이런 장면이 빠지면 재미없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현실에 봉착한 것이다. 이제는 사극 속 잘못된 군사사의 모습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최형국 역사학 박사·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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