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배호 모창가수 유 비
배호 노래에 푹 빠진 사춘기 테이프 사다 밤새 따라 부르며 가수·영화배우 꿈꿔 고교졸업 후 밤무대서 모창
뜬구름 같은 연예인의 꿈 ‘돌아가는 삼각지’ 작곡가 찾아가 2002년 가요계 정식 데뷔 영화·드라마서 반짝 연기 활동 전통시장·오일장서 라이브 공연 직접 쓴 ‘여자 중의 여자’ 호응 얻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대합실 안 출입구 옆의 가수 배호광장에 중절모를 쓴 60대 중반 노신사가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다. 의자에 앉아 기타 치는 모습의 배호 동상 뒤에서는 배호(1942~1971)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파도, 막차로 떠난 여자,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 0시의 이별 등으로 이어진다. 노신사는 대합실을 나와 대구탕 집 골목 왼쪽의 배호노래비 앞에서 다시 회상에 젖더니 오른쪽 배호거리를 걸으면서 그가 살았던 60년대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 ▲건국 후 가수 베스트 50인 중 6위 ▲20세기 한국 최고가수 7위 ▲4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 ▲TBC 방송가요대상 등 30여 개의 가수상을 휩쓸었던 배호. 국가에서는 그에게 2003년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현재까지도 배호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인간 심성을 깊숙이 파고들어 심금을 울리는 진한 목소리 ▲쥐어짜는 듯 애수에 젖은 독보적 바이브레이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절규에 가까운 애절한 음색 ▲경쾌한 재즈풍의 놀라운 가창력과 세련된 무대 매너. 44년 전 29세로 요절한 그를 못 잊어 우리는 배호 노래를 생전의 배호와 구분 못 하게 잘 부르는 가수 유비(본명 김광석·54)를 통해 크게 위안받고 있다. 사람들은 유비를 ‘배호가수’라고 부른다.
서울시 강북구 미아 4동의 유비 집은 그의 집이 아닌 배호 집 같았다. 빛바랜 LP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 최근의 CD 음반까지 모두가 배호 노래만으로 방안 가득 빼곡했다. 국내의 100명 넘는 모창가수들이 ‘OOO의 모창가수’ 혹은 ‘짝퉁가수’로 불리는 걸 가슴 아파하지만, 유비는 오히려 “‘배호 모창가수’로 불리는 게 영광이다”라고 했다.
“중학교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호님의 노래를 들었지요. 철없는 어린 가슴속에 알알이 박혔습니다. 부모님 몰래 테이프를 사다 밤새워 들으며 열심히 흉내 냈어요. 제 노래 스승은 배호님 테이프고, 어찌 보면 배호님과 함께한 세월이 40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비의 고향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조막리. 해남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이모가 살던 충남 온양으로 이사와 온양고교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엔 중국 배우 이소룡에 미쳐 쿵후·합기도·해동검도·가라테 등을 배워 모두 2~5단씩 땄다. 한때는 체육관을 운영해 생계를 꾸리기도 했지만, 마음속은 오로지 가수와 영화배우가 되는 꿈으로 가득 찼다.
밤무대를 전전하며 배호 노래를 모창하던 유비는 2002년 작곡가 배상태(80) 씨를 찾아가 자신의 포부를 털어놨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을 작곡한 배씨는 유비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죽은 배호가 살아 둔갑한 것 같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유비도 이미 전국 배호모창대회 대상, 대한민국 트로트가요제 금상을 받으며 배호창법 일인자로 팬들의 인정을 받아 온 터다.
2003년 유비는 배씨가 작곡한 ‘꿈속의 가시내’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이를 계기로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도산 안창호 역을 맡아 배우로도 활약했고, 드라마 ‘육남매’에 출연하며 CF 요청도 잦아졌다. 그러나 인기는 허상이었고 바람결에 잠시 스쳐 가는 뜬구름이었다. ‘배호가수’로 다시 돌아온 유비에게 남은 건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가난뿐이었다.
“막연히 연예인 꿈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어요. 팬들은 하늘에 높이 뜬 큰 별만 바라보지 변방의 이름 없는 별들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그러나 연예인도 엄연한 직업이니 먹고는 살아야지요.”
최근 들어 유비는 전국 오일장과 도심 각 곳의 전통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냉엄한 가요계 현실을 헤쳐 기어이 성공신화를 쓰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단독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신 나는 트로트 메들리를 통해 지역민과 상인들의 흥을 돋워 주고 얼어붙은 시장경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노인잔치·보육원·청소년재활원 등의 재능기부에도 기꺼이 앞장선다. 그는 모창가수들의 권익보호와 활로 개척에도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한국 모창가수 모임인 이미테이션클럽(회장 주용필·49·본명 이일노, 1992년 창립)에서 파악하고 있는 국내 모창가수들의 예명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원조가수 이름). 모두 재치와 기지가 번득이는 이름이다.
배후·배오·배우(배호), 너훈아·너훈하·너훈나·라훈아·나운하·노훈아·나운아(나훈아), 주용필·조영필·주영필(조용필), 패튀김·패디김(패티김), 임이자·인미자(이미자), 하추나(하춘화), 잔이윤(쟈니윤), 주연미(주현미), 설훈도(설운도), 방쉬리(방실이), 배칠수·노철수(배철수), 임운세(이문세), 태지나(태진아).
이들은 원조가수가 떠야 살아남는 대리인생이긴 하지만 모창·짝퉁가수, 유사 연예인으로 불리는 걸 가장 싫어한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전국 군 단위 이상 음악행사는 866개. 공연 업계서는 소규모 행사까지 합쳐 300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350건 정도를 모창가수들의 무대로 꾸미고 있다.
이들은 원조가수의 노래 4~5곡을 부르고 60~150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데 원조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이들의 남은 꿈은 언젠가 자기 이름으로 신곡음반을 내는 것이다. 유비는 2013년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여자 중의 여자’를 타이틀곡으로 독집앨범을 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호기념사업회(회장 김수영·67·서양화가) 정의묵(72) 회원은 유비가 작사·작곡한 ‘사랑의 두 얼굴’을 불러 늦깎이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팬들이야 모창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한 번 웃고 즐기는 감탄의 대상일지 몰라도 이들은 이 한순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노래 연습은 물론 원조의 목소리, 몸동작, 의상, 세밀한 표정까지 무대 뒤에서 중단 없이 연구하고 익힌다. 눈을 감고 들으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평까지 듣는다.
지난 12일 나훈아 모창가수였던 너훈아(본명 김갑순·57)가 세상을 떠난 후 국내 모창가수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배호 창법의 독보적 계승자로 가요계서 공인된 유비. 우리는 그를 통해 이미 떠나버려 만날 수 없는 배호를 다시 만난다. “모창을 오래 하다 보면 본래의 내게 돌아가는 걸 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유비는 씁쓸히 웃었다.
<이규원 시인·‘조선왕릉실록’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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