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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풍자 그리고 ‘날 선’ 비판 일제 강점기 ‘들었다 놨다 ~’

입력 2013. 12. 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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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병영-이도영의 ‘고복불안(高腹弗安)’


시사 만화 선구자… ‘대한민보’ 삽화그려 거만하고 욕심많은 외국인 배불뚝이 묘사


 이도영<李道榮·1884(고종 21)~1933>은 우리나라 최초 시사 만화가다. 그는 1909년 대한협회가 창간한 일간신문 ‘대한민보’에 1909년 6월 2일 창간호부터 1910년 8월 31일 폐간될 때까지 1년 2개월 남짓 우리나라 최초로 시사 삽화를 그렸다.

 이도영은 18세 때 조선왕조 최후의 화가였던 조석진과 안중식의 문하생이 돼 인물ㆍ동물ㆍ기명절지(器皿折枝) 등 전통적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구사했다.

 1918년에는 동연배의 친구인 고희동ㆍ조석진ㆍ안중식 등 13인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해 서화협회를 창립시키고, 1920년대 이후에는 고희동과 더불어 서화협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교육과 민족계몽에 앞장섰던 민족 운동가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그림 ‘고복불안(高腹弗安·불뚝 배가 편치 않을 걸)’은 대한민보 제32호(1909.07.18)에 실린 삽화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전차와 배가 터질 듯하게 부른 외국인 콜브렌을 그렸다. 거만하고 욕심쟁이로 그려진 콜브렌은 1897년 조선에 들어와 서울의 전차운영과 전기발전공장, 수도건설에 대한 사업권을 따냄으로써 근대화된 도시를 위한 사업을 선점하고 전기회사를 세운 뒤 많은 이익을 챙기고, 더 야욕이 짙은 일본인에게 팔아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상단에 쓰여 있는 글자 ‘고복불안(高腹 불뚝 쏟은 배, 弗安 편치 않다)’은 콜브렌을 ‘복(腹)’자를 뺀 나머지 ‘고불안(高弗安)’으로 읽어 욕심쟁이에게 주는 불편한 선물이기도 했다.

 일반그림들이 조형성과 아름다움에 의미가 있다면, 만화는 코믹·순정·무협 등 재미 외에도 시국풍자가 될 수도 있고 인간생활의 표리(表裏)를 표현할 수도 있다. 또 은유와 비유로써 우의성(寓意性)을 담아 풍자함으로써 많은 독자나 관중의 호응을 받고자 하는 데 역점을 둔다. 1909년에 그려진 이 시국풍자 만화가 100여 년이 지난 오늘 이렇게 말한다. “혼자 배부르니 좋으냐? 같이 좀 먹고살자!” 

 <최재훈 UNESCO A.poRT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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