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지구 한바퀴

여행의 막바지에 서서 더불어 가는 세상 깨닫다

이승복

입력 2013. 11.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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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청년 이동진의 지구 한바퀴<60>


→ 경희대 건축학과를 다니던 중 해병대를 지원해 경북 포항 1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전역 나흘 만에 히말라야 곤도고로라(5690m) 등정에 성공,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울진~독도 수영 횡단(240㎞), 아마존 정글 마라톤 완주(222㎞), 미 대륙 자전거 횡단(6000㎞)을 하는 등 도전정신을 끊임없이 발산하는 젊은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를 여행했고 이젠 떠난다. 언젠가는 다시 올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언제일지 모르던 여행의 끝자락이 현실로 찾아왔다. 마치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 때의 느낌과 사뭇 비슷했다. 비행기를 타고 눈을 감았다. 이제는 눈을 떴을 때보다 눈을 감았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전 세계가 눈에 보이고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내 여행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진정한 가치에 대해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옆 자리에 한국인 유학생이 탔다.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유학 중인 22살 남학생이었다. 군 입대로 휴학하고,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유학생활을 해 왔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부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지난 몇 년간의 삶과 군 생활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해 줬다. 내 삶이 그 친구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시기에 있는 그에게 바른 결정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서울에 오면 한번 연락하라는 인사와 함께 이 친구의 멋진 선택을 기대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겠지만 말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 동생과 몇 번의 연락을 했고, 그는 해병대 면접을 본 뒤 2013년 3월 25일 해병대에 입대해 2사단 항공대에 배치받았다. 뜻이 있는 자에게는 스스로 그 길을 걸을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2년 뒤에 그가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된다.)

 방콕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이동했다. 경유 시간이 워낙 짧아 바로 수속해 탑승 준비를 해야 한다. 사막 위에 세워진 카타르 도하공항. 이번에도 옆 자리에는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심심한 터라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Hello. Where are you from? Are you from Bangkok?”

 아저씨는 짧게 대답하셨다. “Korea!”

 “와! 안녕하세요. 저도 한국 학생입니다.” 그제야 우리 둘은 서로 보면서 웃었다. 아저씨는 현재 남아공에서 사업을 4년째 해 오고 계신다. 젊었을 때부터 남아공·라오스·일본 등지에서 오랫동안 계셨다고 했다. 인생에 대해서 내가 여쭤본 것이 더 깊은 대화의 시발점이 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젊어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떳떳하지 않은 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주변에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어울렸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많게는 하루에 1000만 원도 벌었지만, 쉽게 번 만큼 쉽게 쓰셨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지난 몇십 년간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돈을 잘 유지하는 것이 곧 돈을 제대로 모으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케이프타운에 들어오기 직전에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하시면서, 종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도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저씨의 따스한 웃음에서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난 과거는 참으로 부끄럽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다.” 이제 케이프타운 사업도 정리했고, 한국에 들어와 새로운 일보다는 안정적인 일을 하며 사시겠다면서 술도 담배도 모두 끊으셨다고 하시는 아저씨.

 50을 넘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그분을 보니 인생에서 늦은 경우는 절대 없다는 걸 느꼈다. 자신의 뜻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내가 살면서 절대 만나지 못했을 분이었는데, 인연이 됐기에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행기가 방콕공항에 착륙했다. 어두운 밤에 출발해서 다시 밤이 됐다. 시차 때문에 하루가 아마 24시간보다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안전벨트를 풀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는데 방콕은 영국과 남아공, 그 외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태국을 나가는 비행기표가 있어야 했다. 예약 티켓을 확인하고 나서 입국을 완료한 뒤 짐을 찾아서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태국의 도심지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안전하게 느껴졌다. 같은 밤이었지만 동유럽의 어두컴컴하고 불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골목길보다 안전한 느낌이었다.

 부산스러운 방콕의 아침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잠시지만 태국이라는 나라를 느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방콕의 아침은 여느 나라의 도시들과 다를 게 없이 정신없고 부산스러웠다.

 호스텔을 나오는 골목 안의 조그마한 간이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팔고 계신 아주머니께 국수를 하나 시켜 놓고 의자에 앉아 도로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정신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검 뿌연 매연, 우리나라 80년대에 탔던 낡은 버스, 수많은 오토바이와 오고 가는 많은 사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세상은 이렇게 매일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비록 내가 여행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고, 누군가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단 한 순간도 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나는 지난 몇 개월간 깨달았다. 결국, 생존이라는 것은 소비를 의미하고, 다시 말해서 어떤 가치를 생산해 낸 대가로 돈을 벌지 않으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정부가 존재해서 수많은 문제에 대한 절충점을 법적으로 규정해 주고, 그런 국가들이 모여서 세계를 이루며 이런 세계를 통합·규제·지원해 줄 수 있는 국제기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결국,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다른 누구에게서 얻어야 하고, 내가 가진 것을 또 줘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내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세계 일주는 내 인생의 큰 획을 그었음이 확실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 삶에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다.

이승복 기자 < yhs920@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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