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지구력 약하고 다혈질, 툭하면 튈 준비만…

입력 2013. 09. 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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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경주마는 사극에서 이제 그만


대부분이 돌진 DNA 가진 질주 본능 ‘서러브레드’ 품종 긴 다리·큰 키 보기엔 멋져 초원 달리면 넘어지기 십상

 

필자가 제주에서 마상 무예 전지훈련 중 한라마를 타고 마상월도를 펼치는 장면. 전통시대에는 체고가 높은 말보다 이처럼 중간 크기의 전투마가 활용됐다. 이들은 지구력이 좋고 다리 관절이 튼튼해 전투에 주로 활용됐다. 
필자제공

말에 올라 넓고 푸른 잔디밭을 자유롭게 달려보는 것은 많은 이들의 꿈으로 남아 있다. 특히 바람을 가르며 전력 질주하는 광경을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승마 초보자라도 말에 채찍질을 가해 뛰어 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것이다. 사극에서도 적진을 향해 말을 타고 멋지게 달려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잔디밭에서 말을 달리면 꼬꾸라지기 십상이다. 그것도 말과 함께 시원하게 말이다. 그 이유는 현재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말이 전투와는 거의 관계없이 경마를 위해 만들어진 ‘경주 전용’ 말이기 때문이다.

 ▶고속 기동전의 시작, 전투마

 말은 인간에게 ‘고속 기동전’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전투방법을 만들어 준 신기원 같은 존재였다. 말을 교체할 경우 인간이 두 발로 걷거나 달릴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가벼운 무장을 한 채 하루 10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기에 그 속도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전투에서 적진에 달려들어 충격력으로 적의 두터운 선봉을 격파하거나 빠르게 전진하며 쉼 없이 화살을 쏘는 전술은 고대부터 이어진 기병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전투에서 사용하는 말은 철저하게 전투용으로 교육된 말로 품종부터 전투에 적합한 말을 사용했다. 말은 초식동물이라 유독 겁이 많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동물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 것이 기본 습성이다. 따라서 전투용 말은 번쩍이는 창검이나 전투 중 발생하는 함성에 놀라지 않게 미리 관련 훈련을 거쳐야만 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전투는 다양한 환경에서 진행되기에 말의 품종 또한 튼튼한 발목과 엉덩이를 비롯해 거친 전투환경에 적합한 전투 전용 말들이 활용됐다.

 ▶경마용 말 ‘서러브레드’(thoroughbred) 품종의 탄생

 현재 대한민국 사극을 비롯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말 중 제주 조랑말이나 몽고 야생말을 제외하면 99%가 경주전용 말인 서러브레드 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사극촬영 시 전투장면에 등장하는 말은 거의 서러브레드다. 문제는 이 말은 전투에 부적합한 말로 17세기 이후 영국에서 경마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품종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경마 전용 말이라는 것이다. 이후 지속적인 품종개량을 한 결과 서러브레드는 오직 앞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DNA에 간직한 품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드러운 경마장 모래사장을 좀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마치 단거리 스프린터 선수들처럼 쭉 뻗은 긴 다리에 얇은 발목을 가진 것은 이 말의 생명이기도 하다. 특히 말의 기질 구분에서 ‘핫 블러드’(Hot Blood)의 대표 주자라고 할 정도로 서러브레드는 다혈질이다. 그래서 조금만 자극을 가해도 핏줄이 근육 전체에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앞으로 내달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또한, 서러브레드는 전투 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지구력이 약해 전투는 한계가 있다.

 ▶전투 시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심각한 문제

 전투에서는 전면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적이 좌우로 피하면 따라서 움직여야 하고 적이 흥분하더라도 침착하게 적을 주시하면서 대응해야 제대로 된 전투마인 것이다. 그래서 전통시대에는 전투용으로 적합한 중간 크기의 중마(中馬)나 발목이 튼튼한 말을 전투에 사용했다. 특히 경주마는 쇠나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편자를 신게 되는데, 이 상태로 푸른 초원에서 말을 달리면 곡선 구간에서 거의 예외 없이 미끄러지게 된다.

 현재 사극에서는 이런 말을 타고 고구려의 주몽이나 발해의 대조영, 그리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멋진 전투장면을 뽐내고 있다. 거기에 경마장에서 폐마로 방출된 큰 말(서러브레드)에 신경안정제를 투입해 촬영하는 일도 자주 있다니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마’라는 이름으로 품종이 개량된 우리 말이 전투용 중마 크기로 손색이 없으니 앞으로는 이 말이 사극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형국 역사학 박사·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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