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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서 위험 무릅쓰고 야전병원 활동

김철환 기사입력 2013. 07. 21   15:00

<18> 인도


 

 인도는 6·25전쟁 의료지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국가다. 이는 인도가 파견한 제60야전병원이 전쟁기간 내내 포탄이 빗발치는 최전선 인근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60야전병원의 위험을 무릅쓴 신속한 응급조치는 많은 부상병의 목숨을 구했으며,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르는 병사들에게 이들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됐다.

 인도가 북한에 침략당한 대한민국에 대한 의료지원을 결정한 것은 1950년 11월 초였다.

 이에 따라 2개의 외과반과 1개의 치과반 등 총 331명으로 구성된 인도 제60야전병원이 6개월분의 예비식량과 의무보급품까지 완비하고 장도에 올랐다.

 유엔군의 대대적인 반격작전이 진행되던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한 인도 제60야전병원은 현지적응과 재정비를 마친 뒤 12월 4일 평양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들이 평양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피란민들의 대대적인 철수가 이뤄지고 있었다.

 평양에서 이들은 영화와 같은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수송수단을 구하지 못해 의료장비와 의약품은커녕 부대원들의 안전한 철수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발견한 것은 평양역 구내에 방치된 기관차와 수 대의 화차였다. 12월 5일 인도 제60야전병원은 모든 인원과 물자를 이 열차에 싣고 미 공병대가 대동강 철교를 폭파하기 직전에 평양을 빠져나갔다.

 이후 60야전병원은 2개 제대로 나뉘어 영국 제27여단 지원과 영연방 부대를 위한 후방병원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영연방 군이 겪은 다양한 전투를 함께한 60야전병원 요원들은 전투병 못지않은 용기로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부상자들을 후송했다. 같은 해 10월 진행된 코만도 작전에서도 이러한 용감한 후송 작전을 펼치다 적의 공격으로 의료요원 2명이 전사하고 14명이 부상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어서 1952년 9월에도 60야전병원 본부가 중공군의 포격을 받아 1명이 전사하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같은 시기 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60야전병원 대구분견대는 민간을 대상으로 한 의료지원도 병행해 질병으로 고통받던 피란민들의 희망이 됐다. 특히 부대는 대한민국에서 무서운 안과질환인 ‘트라코마’를 퇴치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됐던 트라코마는 전염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실명에 이르게까지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인도 제60야전병원은 6·25전쟁 중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훌륭한 활약을 했으며, 수술 기술과 병원 운영 능력 전수, 한국인 마취기술자와 의료인력 양성에도 힘썼다. 이들은 많은 생명을 구한 공로로 한국정부는 물론 유엔군사령관, 인도정부로부터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인도는 전쟁기간 중 연인원 627명을 파견했으며 3명의 야전병원 요원이 임무수행 중 목숨을 잃었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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