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사랑하는 마음 담아 가슴뭉클하게 표현
임의 생각
한국인 정서 절절하게 표현해 민족 심금 울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러시아 대표 예술가곡…세계무대서 널리 연주돼
▶오페라 작곡가 장일남의 예술가곡
6·25전쟁이 남긴 우리 마음속의 상흔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가곡 ‘비목’의 작곡자 장일남(1932~2006).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들장미’를 발표할 정도의 천재적인 음악 재능의 소유자였으나, 해방 후 북한 공산정권의 예술탄압을 견디다 못해 1950년 월남했으며, 이후 2000여 곡을 작곡 혹은 편곡함으로써 한국 음악 발전에 남다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국민 애창 가곡 ‘비목’과 ‘기다리는 마음’, 1966년 초연 후 오늘까지 우리 창작 오페라 중 가장 자주 공연되는 <춘향전>,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에서 초연돼 한국 오페라의 백미로 평가받는 <불타는 탑>, 국립오페라단 창단공연 작품 <왕자 호동>(1961) 등이 바로 그 징표다. 또한 그는 <신고산타령> <가야금병창> <대금협주곡> 등 국악, 무용조곡 <허도령의 죽음>과 우리의 4계절을 표현한 교향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 등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평소 가곡 작곡가보다는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지고 싶은 것이 장일남의 바람이었다지만, ‘비목’이 대중의 뇌리에 심어 놓은 고정관념을 깨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 감상하는 ‘임의 생각’은 그의 희망과는 달리 예술가곡 작곡가로서의 장일남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기에 충분하다.
아래의 짧은 가사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를 장일남처럼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곡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는 이 예술가곡을 통해서 배달민족에게 심금을 울리는 노래란 천부적인 재능과 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임의 생각 절로 나고
바람소리 풍경소리 이 내 마음 설레이네
너와 살고지고 너와 살고지고
너와 나 더불어 내 사랑아 내 사랑아
▶김성길의 ‘임의 생각’
‘임의 생각’은 대중에게 생소할 뿐만 아니라 국내 성악가들이 무대에서 부르거나 음반으로 취입한 적도 거의 없는 곡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내 대표 성악가들이 부르는 우리 가곡 36곡을 수록한 음반 <그리운 우리 가곡>(CD 2장, 2003년 KBS미디어 제작:소장할 가치 있는 음반임)에 포함된 바리톤 김성길의 ‘임의 생각’은 매우 소중하고 고맙다.
이 곡 이외에도 김성길은 장일남과 흥미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그는 1977년 장일남이 작곡한 ‘기다리는 마음’과 편곡한 <신고산타령>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LP음반 <김성길 애창곡집>을 발표해 36세의 풋풋한 젊음과 예술정신을 표출한 바 있다.
서울대와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한 김성길은 1970년대 오페라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국내외에 우리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선양했으며, ‘줄리아드 유학파 1세대’로서 전도 유망한 젊은 음악가 발굴과 지도에 헌신해 오고 있다.
특히 감미로우면서도 중후한 지성의 목소리로 정확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김성길의 가곡 해석은 듣는 이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편 그는 2006년 65세의 나이에 예술의 전당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달톤 볼드윈(Dalton Baldwinㆍ1931~)의 반주로 서구의 가곡을 소개하는 콘서트를 개최하고, 2011년에는 70세의 나이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하는 등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장일남과 마찬가지로 후세에 예술가곡 작곡자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던 러시아 작곡가가 있었다. 바로 차이콥스키다. 그러나 아래 가사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Нет, только тот, кто знал)’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예술가곡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바이올린ㆍ피아노 등 기악곡으로 편곡돼 세계무대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괴로움을 알리라!
모든 기쁨으로부터
절연된 채 홀로
나는 저편의
끝없이 열린 하늘을 바라보네
아! 나를 사랑하고 이해했던
임은 저 멀리 있네
정신이 혼미하고
애간장이 타는구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괴로움을 알리라
차이콥스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인 29세 때 곡을 붙인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는 독일의 문호 괴테(1749~1832)가 집필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학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1795년)라는 교양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편의 시 중 하나다. 독일어로 ‘Nur wer die Sehnsucht kennt’라는 이 시는 베토벤ㆍ슈베르트ㆍ볼프 등 저명한 독일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곡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보다 러시아 극작가며 시인인 렙 메이(Lev Mei·1822~1862)가 러시아어로 번역한 시에 곡을 붙인 차이콥스키의 그것이 더 애창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곡은 세계 남녀 성악가들이 독어ㆍ영어로도 즐겨 부르지만, 아무래도 러시아어로 듣는 것이 제맛이라 하겠다. 즉 저명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인 그의 아내 갈리나 비시넵스카야(Galina Vishnevskaya·1926~)가 부르는 1964년 실황공연 동영상이 좋은 본보기의 하나다.
특히 오늘 감상하는 파벨 리시치안(Pavel G. Lisitsianㆍ1911~2004)의 해석은 전성기가 아닌 노년에 부른 동영상이므로 아쉽지만, 이 곡이 베토벤과 볼프, 나아가 슈베르트의 그것보다 더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광산 근로자의 아들로 태어난 리시치안은 소년시절 다이아몬드 시추와 용접기술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천부적인 성악가로서의 재능은 그를 기술자로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1940년부터 1966년까지 볼쇼이 오페라의 주역 가수로 러시아 예술의 독창성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성악가였는지 37세 전성기 때 러시아어로 부른 슈베르트의 ‘음악예찬(An die Musik)’을 감상해 보기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3g3_NEb FhU4&feature=related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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