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심장 베르사유서 ‘통일 독일’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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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통일 독일제국 선포식.(중앙 흰색 군복이 비스마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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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근교의 비스마르크 생가.(정문 건너편에 기념관 위치) |
▶함부르크의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비스마르크 생가
독일 연방군 지휘참모대학에서 교육 중인 J 소령과 함께 함부르크 근교의 비스마르크 생가 답사를 위해 출발했다. 함부르크를 벗어나 1시간 정도 달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기다란 황색 담벼락과 울창한 숲으로 가려진 웅장한 저택이 통일 독일제국을 만든 게르만 민족의 영웅 비스마르크의 생가다. 정문 근처에 높이 게양돼 펄럭이는 독일국기가 19세기 당시 통일독일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약소국 독일을 강국으로 부상시키다
비스마르크는 1815년 4월 1일 프로이센 쇤 하우젠에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관학교 진학을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는 괴팅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대학 졸업 후 지방법원 판사, 주 러시아·파리 공사 등을 경험하고 1862년 프로이센 총리가 된다. 특히 1862년 9월 30일, 의회에서 국방예산 삭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렬한 연설을 통해 ‘철혈 재상’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현재 프로이센의 당면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군비 확충이다. 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은 더 이상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 독일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은 오직 철과 피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비스마르크는 군사적 압력과 노련한 외교로 마침내 1867년 독일 북부지역을 통합하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승리로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을 제거한다. 러시아와는 시종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일 완전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프랑스와는 결전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해 이에 대해 철저히 준비한다.
마침내 프로이센과 프랑스는 1870년 7월 19일, 보·불 전쟁으로 서로 국가의 존망을 걸게 된다. 사전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프로이센과 말과 허풍으로만 전쟁에 임한 프랑스는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약 4개월 동안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된 파리의 무능한 정치가들은 결국은 1871년 1월 29일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기념관 내에 독일 건국과정 사료 비스마르크 소장품·무기류 전시
별로 크지도 않은 소박한 기념관에는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계셨다. 내부에는 비스마르크의 소장품과 각종 그림, 1800년대 독일의 대외전쟁 기록물과 일부 무기류가 전시돼 있다.
비스마르크 70주년 생일을 기념해 기증된 ‘베르사유 궁전의 통일독일 선포식’ 그림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1871년 1월 18일, 프랑스의 심장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거행된 통일 독일의 장엄한 황제 즉위식! 분열된 독일을 프로이센이 주도해 통일국가로 만들고 마침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유럽의 강국으로 독일제국이 우뚝 서게 된다.
▶세계의 전사적지 답사기 연재를 마치며
유럽·중동·중국·베트남·남태평양 지역의 전사적지를 답사하면서 참전자들이나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그러나 아?게도 한국인을 현장에서 만난 기억은 거의 없다. 전쟁 참화를 숱하게 겪은 우리 민족은 이런 분야에 무관심하나 오히려 가끔 만난 중국·일본인들은 전쟁사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동안 본 연재 기사에 많은 관심을 두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전쟁과 우리의 생존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관심을 촉구할 좋은 기회를 준 국방일보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지면을 통해 남은 이야기들을 더 생생하게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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