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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함길도 도관찰사 김종서 장군

기사입력 2012. 05. 18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8:00

우리 민족 활동 무대 두만강 일대로 확대

국경선 종성·회령·경원 등 6진 설치로 확정 1433년(세종 15)까지 국가 요직 두루 거쳐

오늘날 우리나라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확정된 것은 조선 세종대의 일이었다. 압록강 유역의 국경선은 태종 때 설치한 여연군에 이어 세종 때인 1433년까지 자성·무창·우예군에 이르는 이른바 4군의 설치로 이뤄졌다. 이어 1434년(세종 16)부터 1449년(세종 31)에 걸친 두만강 유역의 국경선은 종성·회령·경원·경흥·온성·부령의 6진 설치로 확정됐다. 이 두만강 유역의 국경선을 넓힌 인물이 바로 김종서다.

 김종서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1390년(공양왕 2)에 전남 순천에서 도총제로 있던 김추(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6살인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돼 북방 경영의 길을 떠났던 1433년(세종 15)까지 국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압록강 상류 지역은 여진족이 활동하면서 조선을 여러 차례 침략해 살상과 약탈을 자행했다. 그런데 1433년 경원부 지역을 괴롭히던 우디거 부족과 회령 지역에 거주하던 오도리 부족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세종은 두만강 하류 일대를 조선의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이 일을 주도할 인물로 함길도 도관찰사에 김종서를 임명했다.

 김종서는 먼저 경원부ㆍ영북진(1435년 종성군으로 승격) 두 곳의 기지 선정조건에 대한 조사를 한 후에 국방상 요지를 이전하거나 신설해 방수(防戍)를 철저히 하는 데 주력했다. 1434년 영북진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이전하거나 경원부를 회질가(會叱家:지금의 경원)로 옮겼던 것이다. 1440년(세종 22)에는 백안수소(지금의 종성)에 함길도 도절제사의 야전 지휘소인 행영을 설치했다.

이어 온성군을 설치해 경원∼회령∼종성∼경흥 등지를 연결하는 두만강변의 방어선을 완성했다.

 또 1449년에는 석막(石幕)의 옛 땅에 부령부(富寧府)를 설치함으로써 6진 설치를 완성했고 지역 방어를 위해 많은 백성을 이주시켰다. 6진 개척은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를 두만강 일대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성품은 단종이 즉위하면서 수양대군이 그의 야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문제되는 인물로 지목돼 계유정난 때 희생됐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김대중 (전쟁기념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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