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보병장비이야기

<49>방한용 모자

입력 2012. 01. 16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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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M1951 ‘파일 캡’ 6·25전쟁 당시 큰 인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직후, 미 육군은 동계 피복류를 전반에 걸쳐 정비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방한용의 모자였다.

M1951 파일 캡.

제2차 세계대전까지 다른 동계 피복류와 마찬가지로 방한용 모자 역시 민수용을 기초로 한 다양한 버전이 납품돼 사용됐는데, 20만 명 안팎에 불과한 1930년대까지의 미 육군의 규모로 보면 이런 상황도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수백만 명으로 총병력이 늘어나면서 방한모 역시 생산과 보급의 단순화가 절대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사용된 방한모들은 가죽·양털 등 값비싼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생산 단가는 물론 원자재 확충까지 문제가 됐는데, 이를 위해 미 육군은 새로운 방한모 ‘파일 캡’을 개발, 배치했다.

 파일 캡은 첨모직(파일)으로 만든 방한 내장재를 방풍 기능과 제한적 방수기능(비나 눈에 대한 단시간의 노출에는 버틸 수 있는)을 가진 포플린 천 외피로 감싼 구조로 만들어졌다.

또 방한을 위해 얼굴 양 옆과 턱까지 감쌀 수 있도록 좌우에 면적이 넓은 귀 가리개가 설치됐고, 바람이 강할 때에는 바이저(챙)를 내려 얼굴도 상당부분 덮을 수 있었다. 바이저에도 방한재를 넣어 방한 효과가 도모되었다.

 파일 캡의 방한 능력은 역시 양털로 만든 기존의 방한모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털가죽이나 울 재질로 만든 다른 방한모들에 비하면 방한 능력이 동등하거나 다소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장점은 생산성과 가격이었다. 다른 방한 장구들도 마찬가지지만 양 이외의 동물 털가죽은 대량 수급이 필요한 상황에서 안정적 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며 양털 역시 단가·생산성 면에서 불리했기 때문이다.

또 파일 캡은 처음부터 넓은 방한 면적을 커버하도록 디자인되고 간편해 일선 병사들도 즐겨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6·25전쟁에 미군이 참전하면서 혹독한 우리나라의 겨울 추위에 제2차 세계대전형 파일 캡은 많이 사용되면서도 불편한 점들이 발견됐다.

가장 큰 문제는 바이저에 달린 방한 소재였다. 이 부분에까지 방한재를 붙임으로써 얻는 방한 효과는 예상과 달리 거의 없었던 반면 두텁고 돌출된 방한재가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무거워지면서 바이저가 아래로 처지는 부작용까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어느 정도 발견됐고, 이로 인해 미군은 이미 48년에 바이저에서 방한재를 제거한 신형을 내놓았지만 예산부족 등으로 제식화되지 못하다가 50년의 혹독한 겨울을 겪으면서 방한 장비의 대대적인 정비를 거치는 동안 완성돼 51년 제식화, M1951 파일 캡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됐다.

 개량형 M1951은 나오자마자 일선의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비의 하나로 부각됐다.

동계에는 사실상 말단 병사부터 장성에 이르기까지 야전의 거의 모든 인원이 이 파일 캡을 애용했다.

특히 이어플랩(귀덮개)부터 바이저까지 필요없으면 모두 위로 모아 고정할 수 있는 점에서 간편해 인기를 끌었다.

또 철모 밑에도 넣고 일종의 방한 내피처럼 쓸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불편해서 철모와 함께 쓰는 일은 적었다. 워낙 전선에서 자주 보이다 보니 M1951 파일 캡은 지금도 6·25전쟁 당시의 미군을 상징하는 주요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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