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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고구려와 부여의 세 차례 전쟁

기사입력 2011. 12. 28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32

고구려 소수 병력으로 적절한 전술·날씨 이용 대승

“분열과 파괴의 시대, 운명에 맞서 싸운 신화보다 위대한 영웅, 아무도 보여주지 못한 한민족의 가장 위대했던 시대, 고구려의 하늘을 연 승리의 이야기.” MBC 방송에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했던 연속극 ‘주몽’ 광고문구다. 고구려를 세운 사람은 주몽이다. 어느 날 동부여(東夫餘) 금와(蛙)왕이 강가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왕은 유화를 궁중에 데려왔다. 유화가 햇빛을 받고 임신해 알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알에서 남자아이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이라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주몽이 너무 똑똑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아들인 대소(帶素)왕자 등이 시기해 죽이려 했다.
고구려 3대 대무신왕 영정.

 

이에 화를 피해 주몽은 졸본부여(卒本夫餘)로 도망쳤다. 졸본의 소도시국가였던 구려의 대표귀족인 소서노와 결혼한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가 고구려다. 그는 비류국과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기원전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주몽이 죽으면서 등극한 유리왕은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겨 왕권을 강화했다. 당시 부여의 왕이 됐던 대소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기후 기록과 화분 화석의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당시의 연평균 기온이 오늘날보다 0.5~1도 낮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졌으며 더불어 몹시 가물었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한서(漢書)’에 “한 성제 영시 3년(B.C.14) 여름, 큰 가뭄이 들었다” ‘동관한기’에 “한 광무제 전무 4년(28년), 왕망말기 이래 매년 천하가 가물고 서리가 내려 모든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2007년 중국과 미국·영국의 과학자들은 공동으로 기후변화가 전쟁의 발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해 미 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400년에서 1900년까지 일명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시기 동안 기온의 변화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전쟁의 발발 수에 대한 곡선을 그려보았다. 놀랍게도 기온이 오르거나 내려가는 것에 맞춰 전쟁 발발 수 그래프도 함께 요동쳤다. 온도가 급작스럽게 떨어지면 전쟁의 발발 수가 늘어났고, 기온이 온화해지면 그 수는 줄어들었다. 추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전쟁 발발 수는 기온이 온화했을 때보다 2배나 많았다. 추워지면 곡식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부족한 식량을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중국의 동쪽에 있었던 부여는 농업국가였기에 가뭄과 추위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부여의 왕 대소는 식량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고구려에 조공을 요구했다. 유리왕은 부여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고구려도 날씨의 영향으로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부여의 요구를 거부하자 기원전 6년 11월, 부여 왕 대소는 무려 5만의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강력한 한파가 내습했다. 한파와 더불어 폭설이 내리자 부여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입고 퇴각했다.

 서기 13년 11월, 부여 왕 대소는 두 번째로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때는 승승장구하면서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 진출을 눈앞에 뒀다. 밀리던 고구려는 날씨를 이용해 승리했다. 유리왕의 아들 무휼의 군대가 강추위가 몰아치는 밤에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부여군은 대패했고 적은 수의 병력만 살아 겨우 돌아갔다.

 유리왕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휼은 역사에서는 대무신왕이라고 부른다. 부여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내실을 기한 고구려는 주변국의 정복전쟁에 나섰다. 고구려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던 부여의 대소왕은 모든 병력을 동원해 고구려에 맞섰다. 3차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대무신왕과 부여왕 대소는 부여의 남쪽 벌판에서 대치했다. 부여의 대군이 고구려군을 포위했다. 초봄의 따스한 해가 떠오르면서 언 땅이 녹기 시작하자 평원이 진창으로 변했다. 전차와 기병을 주 무기로 했던 부여군의 기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때를 노린 대무신왕은 병력을 집중해 부여군의 심장부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고구려의 3대 왕을 이어 내려오면서 세 번에 걸친 전쟁을 벌였던 부여 왕 대소는 전사했다.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날씨는 철저히 고구려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여의 대소왕은 날씨가 얼마나 미웠을까?

 부여의 대소왕이 세 번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던 것은 병력과 장비의 우세만을 지나치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고구려는 소수 병력으로도 적절한 전술과 날씨를 이용한 대승을 거뒀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승리가 병력의 수나 장비의 질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더의 뛰어난 전술과 날씨와 지형을 적절하게 이용할 때 승리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Tip]기후변화가 전쟁을 부른다-“가뭄 확산·인구 증가땐 물·식량 둘러싼 전쟁 늘어날 듯”

데이비드 장 홍콩대 교수는 2011년 ‘기후변화가 전쟁을 부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전쟁 4500여 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날씨가 추웠던 1450년, 1640년, 1820년 전후에 기근과 전쟁이 발발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낮은 기온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앞으로는 지구 온난화가 농사에 악영향을 줘 전쟁과 기근 등 재앙을 가져오리라 전망했다.

 피터 브레키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는 “지구 온난화는 장기적으로 농작물 작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가뭄이 확산되고 인구가 늘어나면 물과 식량을 둘러싼 전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윌리엄 이스털링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기후변화는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 긴장을 높이고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의 분쟁연구기관 인터내셔널얼러트(IA)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구 온난화에 따라 46개국 27억 명이 폭력분쟁의 위험에 놓여 있고 56개국에서는 정치적 불안정이 우려된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후변화 폭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점은 걱정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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