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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신라 사신 당에 구원 요청

기사입력 2011. 12. 14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29

“소리없이 상륙전” “전례없으니 안심” 침략 구상하는 唐 대비 손놓은 백제

현재의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에 위치한 당항성. 고구려 백제 왜에 3면이 포위된 신라가 수당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
한 창구였다. 신라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배후지인 한강유역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서신면에 있는 당항성 항공사진(위)
과 1995년도에 복원된 모습.화성시 공보실 제공

643년 황자들 문제로 어수선한 당나라 장안 궁정에 신라의 사신이 도착했다. 몹시 절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황제를 만나는 데 우선순위에 밀려 그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신라는 한반도 동남쪽 구석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단지 여자가 왕이라는 점이 기억되는 정도였다.

 9월 4일 당 태종을 만난 사신은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1년 전에 백제가 우리 신라 서부지역 40여 성과 총사령부인 대야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백성들이 백제로 끌려갔습니다. 대야성주와 우리 여왕의 친척인 그 부인과 자녀들이 그놈들에게 잡혀 처형당했고, 그 머리들이 지금 백제 사비도성의 감옥 바닥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태종은 신라를 한참 잊고 있었다. 그제야 기억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 제국을 둘러싼 세계 전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보고 수백 건 가운데 하나였다. 당의 대외 정책에서 가장 중요성을 가진 것은 몽골고원의 설연타였다. 다음이 실크로드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던 서돌궐이었고, 그 다음으로 고구려 문제였다. 중요도에서 신라는 한참 뒤에 있었다.

 신라 사신은 말을 이었다.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이 백제 의자왕과 밀약을 맺고 우리 신라의 당항성을 공격했습니다. 성이 함락되면 신라 사신은 앞으로 여기서 폐하를 알현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당항성(黨項城)은 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九峰山)에 있는 산성이다. 둘레 1.2㎞ 동·남·북문지와 우물터, 건물지가 남아 있다. 성벽은 산 정상과 계곡을 두르고 있다. 이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나 장수왕대 고구려가 차지했고, 백제가 수복했으나 553년 신라가 빼앗았다. 당시 신라가 당과 통할 수 있는 서해안의 항구를 지키는 요새였다.

 ‘연개소문’이란 이름이 나오자 태종은 사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정이 격해진 사신은 목이 메어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연개소문과 의자왕이 올해 말에 우리 신라를 양면에서 대대적으로 공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신라는 국가의 존재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여왕께서 삼가 신하인 저를 통해 대국에 말씀을 올리게 했습니다.”

 태종이 말했다. “나는 너희 신라가 고구려 백제로부터 침략받는 것을 걱정해서 자주 사신을 보내 세 나라에 평화롭게 지내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는 말만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돌아서자마자 너희 신라 땅을 집어삼켜 나눠 가지려고 한다. 신라는 어떠한 기묘한 꾀로써 망하는 것을 면하려 하는가. 대책은 있는가?”

 힘이 빠진 모습으로 사신이 대답했다. “우리 신라는 한계 상황에 와 있습니다. 선대왕이신 진평왕 초반부터 전쟁이 본격화돼 이제 어언 52년이 넘었습니다. 오직 대국에 위급함을 알려 온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신과 대화를 하면서 병부(兵部) 산하 정보부에 해당하는 직방(職方)에서 보고받은 기억을 떠올려 생각을 정리한 당 태종이 대안을 말했다. “내가 요서(遼西)에 있는 우리 군대를 조금 일으키고 거란(契丹)과 말갈(靺鞨)을 동원해 요하(遼河)를 건너 요동으로 곧장 쳐들어가면 고구려의 주력이 그곳에 집중될 것이다. 그러면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공세가 저절로 약화될 것이고, 1년 정도는 포위가 풀리니 신라는 백제만 상대하면 된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군대가 없음을 알면 도리어 너희 신라는 고구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돼 더 힘들어질 것이다.”

 태종의 첫 번째 대안은 미봉책이지만 현실성이 있었다. 643년 당시 당은 요하상류인 시라무룬(西拉木倫河)의 거란족과 그 옆의 해(奚)족 그리고 수대에 중국에 들어와 유주(幽州) 창평(昌平)에 정착한 말갈족에 대한 통제력이 있었다.

 말갈족의 추장 돌지계(突地稽)는 당 고조 이연을 받들어 당에 적대적이었던 군웅 유흑달(劉黑?)과 고개도(高開道)를 유주(幽州)에서 격파했다. 626년 태종이 즉위한 직후에 추장 돌지계에게 이(李)씨 성이 하사됐다.

 거란족과 당의 관계는 6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돌궐이 내분으로 힘이 약화된 상황이었다. 거란족 추장 마회(摩會)가 부락주민들을 이끌고 당에 항복을 해왔다. 그들은 당에 유용한 기병 자원이 될 터였다. 그러자 돌궐의 칸 힐리가 당에게 제안했다. 수나라말 군웅의 하나로 당을 괴롭혀 왔던 양사도(梁師都)를 마회의 거란 부락과 맞교환할 것을 제안했다.

 태종은 거절했다. 당에 항복해온 종족을 배신하는 것은 대외 신인도를 추락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이제 막 건국한 당에 치명적이다. 어떤 종족이나 나라도 당을 믿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변의 적을 양산하게 된다. 당이 신의칙을 지키자 629년 거란과 비슷한 계통인 해족이 당에 귀부를 해왔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거란과 해족 그리고 말갈은 645년 당의 고구려 침공에 동원됐다.
 신라 사신이 도착하기 직전인 643년 6월 당태종은 장손무기 등 핵심 신료들과 그들의 군사적 동원에 대해 이미 논의된 바가 있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황상(皇上 : 당 태종)이 ‘연개소문이 그 임금을 시해하고 국정을 전횡하니 짐은 참으로 참을 수가 없다. 지금의 병력만으로 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가 백성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장차 거란과 말갈을 시켜 그를 어지럽히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말했다.

 장손무기가 ‘연개소문은 스스로 죄가 크다는 것을 알고 대국의 토벌을 두려워해 반드시 엄하게 수비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조금 그를 인정하면서 참고 계시면, 그는 스스로 안심하고 반드시 다시 교만해지고 풀어져 더욱 그 악행을 거리낌 없이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를 토벌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상이 ‘옳다’라고 말했다.”

 당 태종은 애초에 당군을 직접 발동해 고구려 공격에 나서려고 하지는 않았다. 수나라가 백성을 심하게 동원해 고구려 침공에 나섰다가 망했다. 이어진 동란 속에서 청춘을 보낸 당 태종의 머릿속에 ‘고구려 전쟁 노이로제’가 있었다.

 태종은 말갈과 거란을 시켜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려고 했다. 당이 직접적인 손실 없이 고구려를 굴복시키려고 했던 이 안은 장손무기의 완곡한 반대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하지만 신라 사신이 오면서 다시 나왔다.

 태종이 제시한 두 번째 계책은 신라에게 수천 개의 당나라 붉은 군복과 깃발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입고 세워 놓으면 고구려와 백제군이 물러날 거라는 것이다. 또한 태종은 미래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말했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백제국은 바다의 험난함을 믿고 병기를 수리하지 않고 남녀가 어지럽게 섞여 서로 즐기며 연회만 베푸니, 내가 수십 수백 척의 배에 군사를 싣고 소리 없이 바다를 건너 곧바로 그 땅을 습격하려고 한다.” 17년 후에 현실화되는 당의 백제 멸망 계획이었다.

 백제는 멸망직전의 순간에 서해안을 통해 당군 13만 대군이 쳐들어오리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로 보아 그러한 상륙은 전례가 없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바다의 살인적인 조수간만의 차이는 한반도 남부가 중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해안에 대한 백제의 구체적인 수비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백제의 병력은 신라와 맞닿은 동쪽에 집중돼 있었고, 대야성을 함락시킴으로써 낙동강까지 가 있었다.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백제는 전쟁 승리의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전략 문제 이전에 당 태종은 비현실적인 여왕이 지배하는 신라는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했다. 그가 사신에게 건넨 말은 늙은 신라 여왕에게 치명적이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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