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수호하고 깡패국가들을 응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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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5일 트루먼 전 대통령(맨 왼쪽)의 사저를 방문한 이 대통령이 집 앞에 모인 주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 유엔 방문
사정이 이러했으니, 우리나라의 국가원수가 유엔사무총장을 만난다는 것은 의미가 상당히 컸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8월 3일 오전 11시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 1903~1961) 사무총장의 영접을 받았다. 스웨덴 외교관이자 정치가였던 함마르셸드는 1953년,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후, 9년째 재임 중이던 1961년에 콩고 내전을 조정하러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사후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고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외교관’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함마르셸드 사무총장과 잠시 환담한 후, 그의 안내로 새로 건축된 유엔본부의 중요시설을 시찰했다. 마침 한국 아동 구호를 위해 각국의 우표를 팔고 있는 한국 아동구호소에 들른 이 대통령은 우표책을 몇 권 산 다음, 인근의 기도실에 들러 조용히 조국의 통일과 안녕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이어 소회의실에서 외신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유엔 회원국이 아닙니다. 소련이 우리가 회원국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국이 유엔회원국이 아니라고 불평하지는 않겠지만, 특정국가가 유엔 가입을 원하는 국가를 거부권으로 방해하는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엔헌장이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은 국제적인 정의를 심판하는 일종의 국제재판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사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국가가 유엔의 원칙을 침해하더라도 모두가 무기력한 것입니다.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여하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의를 고수해야 하며, 대동단결해 깡패 국가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국제연맹의 활동이 실패한 것은 세계가 정의와 법으로 평화를 달성하려고 강력하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거울 삼아 지금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은 함마르셸드를 비롯한 간부들의 환송을 받으며 유엔본부 건물을 떠나, 뉴욕타임스 본사로 향했다. 뉴욕 타임스지의 발행인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Arthur Hays Sulzberger, 1891~1968)로부터 오찬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는 1935년부터 1961년까지 뉴욕타임스 발행인을 역임하고, 1963년에 그의 아들 아서 옥스 설즈버거(Arthur Ochs Sulzberger, 1926~ )에게 발행인 자리를 넘겨 줬다. 현재 뉴욕타임스의 발행인은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의 손자인 아서 옥스 설즈버거 2세 (Arthur Ochs Sulzberger, Jr., 1951~ )이며, 그는 1992년에 아버지로부터 발행인 자리를 물려받았다.
미국 측에서 설즈버거 발행인을 비롯한 뉴욕타임스 주요 간부가 참석한 이날 오찬회의 주빈은 이승만 대통령이었고, 한국 측에서는 최순주 국회부의장, 갈홍기 공보처장, 양유찬 주미한국대사, 임병복 주유엔대사, 한표욱 주미한국대사관 정무공사가 참석했다.
오찬 후, 이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을 시찰한 다음, 웹 앤드 냅(Webb and Knapp)이라는 도시건축 전문회사를 방문했다. 1965년에 파산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건축회사지만, 당시에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에 본사를 둔 유명한 회사였다. 이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 회사의 대표인 윌리엄 젝켄도르프(William Zeckendorf, 1905~1976) 때문이었다. 젝켄도르프는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100만 가구를 건축하겠다면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회사 방문을 요청했고, 이날 저녁 이 대통령을 만찬회에 초대하기도 했다.
■ 시카고 방문
1954년 8월 4일 오전 8시 30분, 이승만 대통령 일행은 월도르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출발해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환송행사를 마친 대통령 일행은 미국 수송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이날 하오 12시 11분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은 공항에서 마틴 케넬리 시카고 시장을 비롯한 시카고 상공회의소 토머스 콜터 회장의 환영을 받았다.
특히 100여 명의 교민들이 항공기 주변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15명으로 구성된 중국인 자선협회 대표단도 환영행사에 참가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한인 동포들과 일일이 악수했으며, 리무진에 몸을 싣고 드레이크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이 대통령은 시카고 기업인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 트루먼 전 대통령 사저(私邸) 방문
8월 5일 오전 9시 56분, 이 대통령 일행은 미 공군기편으로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에 도착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는 미국 측 인사들 이외에 캔자스 리븐워스 소재 육군참모대학에 다니는 우리나라 장교단도 마중을 나왔다.
대통령 일행은 미국 국무부가 제공해 준 5대의 차량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디펜던스 시로 출발했다. 트루먼은 그곳에서 요양 중이었다. 트루먼 내외가 흰색 저택의 현관 앞으로 나와 일행을 맞아 줬다. 저택 앞 길거리에서 약 500명의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트루먼에게 말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나는 귀하가 미군을 파병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위대한 결정을 해준 귀하에게 나와 한국 국민의 변치 않는 감사를 표합니다. 귀하의 결정은 우리 국민의 사기를 북돋아 줬고,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싸워 물리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한국인 모두가 이를 고마워하고 있으며, 귀하를 비롯한 미국 국민이 이러한 감사의 뜻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트루먼의 저택 안에서 간단히 환담한 후, 밖으로 나온 이 대통령은 집 앞에 모인 군중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이 세계를 자기네 통치하에 놓기 위해 밤낮없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을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가정에서 그들과 투쟁해야 합니다.”
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옆에 있는 트루먼에게 뼈있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나는 1950년 비오는 날 깜깜한 새벽에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침략한 것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때 나는 기도했고,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싸우지 않고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이현표 전 주미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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