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기자의 JSA 현지르포
정전협정서 서명 때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사용했던 가로 1m, 세로 1.5m 크기의 탁자. |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바라본 JSA내 회담장과 북측 판문각 모습. |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 이후 남북 왕래가 중단된 ‘돌아오지 않는 다리’. |
미루나무 터에 세워진 보니파스 대위와 배러트 중위의 추모비. |
58년 전 총성이 멎던 그날.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부리를 내려놓자고 서명한 그곳은 여전히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발목 높이 정도로 쌓아올린 콘크리트 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를 향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양쪽의 군인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저렇게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전 이후 58년을 이어온 ‘긴장과 대립’은 이들의 눈을 통해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정전협정 체결 58주년을 앞두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은 건 지난 20일 오전. 통일대교에서 취재진을 안내할 한미연합사 공보요원과 만나 출입절차를 마치고 민통선을 넘어 JSA 경비대대가 자리잡고 있는 캠프 보니파스에 도착했다.
유엔사 측 관계자로부터 JSA의 역사와 임무, 주의사항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전용 버스에 올라탔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5분여를 달리자 왼쪽으로 남측 대성동 마을 입구와 대형 태극기가 보였고 조금 더 멀리 11시 방향으로 160m 높이의 게양대에 걸린 대형 인공기가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북한 기정동 선전마을이었다.
남방한계선을 넘은 지 10분이 채 안 돼 드디어 판문점 JSA에 도착했다.
남측지역 ‘자유의 집’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쪽 자유의 집과 북쪽 판문각 사이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 등으로 쓰이는 하늘색 건물 세 동이 남북으로 걸쳐서 나란히 배치돼 있고 그 양옆으로 은색건물이 한 동씩 들어서 있었다. 이 건물들 가운데로는 콘크리트 경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고 있었다.
경계선 남쪽에는 우리 육군의 JSA 경비대대 장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북쪽에는 북한군 장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콘크리트 경계선 앞으로 다가서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회담장으로 사용되는 하늘색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가운데에 유엔사 깃발이 놓여진 큰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다. 테이블 중앙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유일하게 북측 지역을 밟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서 연평균 40여 차례의 남북 군사회담이 열렸다고 한다. 창문 너머에 북한군 병사의 군화 소리가 들렸고 얇은 유리 창문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회담장을 빠져나오자 북측 판문각을 방문한 20여 명의 관광객 일행과 군관이 나타났다.
이들의 경호를 위해 북한군 경비병 3명이 콘크리트 군사분계선 앞까지 나와 경계를 섰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게 JSA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불과 10m 밖에서 북한군과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 중 일부가 남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극도로 삼엄한 경계와 긴장감 속에 조금은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회담장을 둘러본 취재진은 판문점 투어 전용 소형버스를 타고 판문점 일대 주요 지점을 둘러봤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기정동 선전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또 한번 분단의 현실을 체감했다.
일정을 마치고 자유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멀어지는 북녘땅을 바라봤다. 언젠가는 판문점 JSA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평화와 역사의 상징, 관광코스가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 판문점이란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며 ‘판문점(板門店)’은 이 지역의 이름을 말한다. 남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구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이나 남북한의 행정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특수한 지역이다.
오늘날의 판문점이라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 측과 공산 측(북한·중국)이 군정위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53년 10월 군정위 본부구역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600m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을 말한다.
판문점은 공식적으로 유엔군과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이라고 불리며 남북한 쌍방 간의 행정 관할권 밖에 있으며,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가 관할하는 특수 지역인 셈이다.
JSA경비대대(대대장 손광제 중령) 선발 일정은 부대운영과 훈련, 육군본부 충원계획에 따라 다르지만 매주 수요일 한 달 평균 3~4회 정도 306보충대에서 인원을 선발한다.
JSA경비대대 선발자격기준은 전문대 재학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 소지자다. 키 174cm 이상, 신체등급은 2등급 이상인 자, 안경 미착용자(나안시력 0.8 이상)로 가정이 원만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또 사상이 건전하고 국가관과 대적관이 투철한 자, 체력이 우수하거나 기타 결격사유가 없는 자여야 한다. 1999년부터 100% 공개 모집함에 따라 선발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1차로 306보충대에서 신체조건, 가정환경, 학력, 인성검사 등 선발 자격 조건을 충족하는 인원을 선별한다. 이들 인원은 다시 각 사단 신교대대에서 체력검정과 면담, 신체검사를 통해 엄선한다. 마지막 3차는 JSA경비대대 자체심의다. 소대장 및 조교의 개인평가와 함께 면담 후 최종 선발한다. 이렇게 엄선된 인원은 JSA경비대대에서 신병교육(3주)을 받는다. 신교대대에서 받는 신병교육 5주까지 합하면 총 8주간 신병교육을 받는 셈이다.
JSA경비대대 복무기간은 대한민국 육군 병사 복무기간과 같다. 이들의 소속은 2004년 11월 1일부로 한국군이 경비대대 임무를 완전히 가져와 이때부터 종전 유엔사 소속에서 대한민국 육군3군사령부 직할 경비대대로 바뀌었다. 평균 경쟁률은 20 대 1을 웃돈다. 영어는 기본. 근무도 쉽지 않다. 영화에서 보듯이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마주보고 장시간 서서 근무하는 것은 경비대 근무의 일부일 뿐이다. 교전수칙부터 행정예규 등 암기해야 할 항목도 상당히 많다.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의 주요 업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캠프 보니파스 경비, OP(관측소) 관리와 비무장지대(DMZ) 정찰 등이다. 특히 남북한 경비병이 무장 상태로 경계근무를 하는 JSA는 24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북한 경비병들과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氣) 싸움에서부터 눌리면 안 되고, 강인한 체력과 사격술, 기민한 상황판단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대 배치 후 1년이 지나면 70% 이상이 태권도ㆍ킥복싱 등 각종 무술 유단자로 단련된다.
미2사단이 PT 테스트에서 총점 210점 이상을 요구하는 데 비해 JSA 근무자에게는 270점 이상이 ‘의무’다. 300점 만점 기록을 가진 병사들도 허다하다. 300점 만점자는 ‘PT 마스터’라고 불리는데, 22∼26세 병사가 만점을 받으려면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2분 안에 각각 75개, 80개 이상 해야 하고 2마일(3.2km) 달리기를 13분 이내에 주파해야 한다. 이들은 건물점거ㆍ총격전 등 다양한 상황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실전과 다름없는 전술훈련을 한다. 대부분의 병사가 권총 중화기 대공화기 등 7∼8종의 무기 조작에 숙달돼 있으며 경비대대 전원 특등사수다. 경비대대원들은 평소 개인훈련도 매우 강도 높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외출이나 외박 등도 엄격하고 까다롭다.
JSA는 당초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아 남북한 경비병과 출입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에 의한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한 후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이 설정되고 이를 경계로 양측이 각각 분할 경비하고 있다.
<유호상 기자 hosang61@dema.kr>
JSA 영화와 실제-北 경비병과 닭싸움? 영화는 영화일뿐
영화사, 군 명예훼손 사과
2000년 9월 9일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주연 이병헌ㆍ이영애)는 개봉 당시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켜 적잖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남과 북의 병사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초소(근무지역)를 오고간다거나 닭싸움을 벌이는 등 분단 상황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 실제와 같은 착각을 가져온 것.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의 거의 모든 상황은 허구다. 그저 영화일 뿐이다. 경비대대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맞지 않다.
그렇다면 영화의 어떤 부분이 잘못 그려졌을까. JSA전우회에 따르면 JSA 요원들의 월북행위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인 이병헌과 김태우가 밤만 되면 북한 측 초소로 가 공기놀이를 하고 닭싸움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과 북의 최전방 대치 현장이자 일촉즉발의 초긴장 공간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즉, JSA로 경비초소에서 음악을 듣거나 초코파이를 주는 행위는 현실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면이다.
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초소에는 도끼 만행사건 이후 경비병이 근무하지 않고 카메라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이곳 초소 경비병들끼리 접촉하는 영화 속 장면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청근 JSA전우회 부회장은 “영화에서 그 같은 장면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그런 장면과 다르게 JSA 요원들은 늘 긴장감 속에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다”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JSA 요원들과 북한군 병사의 잦은 만남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며, JSA 요원이 자살하는 등 나약하게 그려진 장면도 문제점이라고 이 부회장은 지적했다. JSA전우회는 따라서 당시 영화 상영 직후 영화사를 찾아가 문제점을 제기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영화사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5대 일간지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자막을 넣어 정중하게 사과했다. 영화 줄거리는 허구이며, JSA 근무장병 및 전우회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창작에 대한 간섭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았지만, 분단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실상을 많은 국민이 잘못 인식하게 할 수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당시 여론이기도 했다.
<조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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