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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베트남전쟁시 한국군의 해·공군 및 특수작전

입력 2011. 03. 0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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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다·적지종심서도 합동작전 `퍼펙트'


청룡ㆍ맹호ㆍ백마부대가 지상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거두고 있을 때, 해상과 공중, 적지종심지역에서도 합동작전이 수행되고 있었다.

해군 수송전대는 적극적인 연안(沿岸) 수송작전으로 주월 한국군은 물론,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작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공군은 1965년 3월 건설지원단 파병과 함께 소수의 연락 및 의전 요원이 파병된 후 지상군 파병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공군지원단으로 확대 개편돼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사단 공수 특전대는 적지종심작전, 장거리 수색정찰 등을 통해 작전에 기여함으로써 오늘날 특수전 부대 전투력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백구부대가 활동했던 붕따우항의 현재 모습.
백구부대의 LST 812함.
은마부대의 C-46D 수송기.

 ▶해군 수송전대(白鷗부대)

 1965년 3월 4일 LST(Landing Ship Tank: 상륙함)-812(위봉)함은 인천항에서 군사원조단장(준장 조문환)을 비롯한 장병 63명과 차량 및 수송 물자를 적재하고 십자성을 길잡이로 삼아 남중국해를 지나 사이공으로 향했다. 이후 1965년 7월 12일 장병 261명과 증파된 LSM(Landing Ship Medium: 상륙함)-609(월미)함과 LSM-611(능라)함으로 ‘해군 수송단대’를 편성했다. 남베트남 내의 해상수송 소요가 증대하게 되자, 1966년 2월 1일 LST-807(운봉)함과 LST-808(덕봉)함을 증파했으며, 3월 15일 비둘기부대에 배속돼 있던 해군 수송단대를 ‘해군 수송전대(백구부대: 바다와 더불어 생존을 걸고 나는 하얀 갈매기란 뜻)’로 개편함과 동시에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직할부대로 승격시켰다. 이에 따라 해군 수송전대는 사이공을 모항으로 북쪽 다낭으로부터 남쪽 캄보디아 국경 부근의 푸? 섬에 이르기까지 1000여 마일의 항정에서 미군 및 남베트남군과 통합된 연안 수송임무를 수행했다.

 백구부대가 수송한 물자와 장비 중에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연합해군의 입장에서 남베트남군의 군수물자 수송과 남베트남 정부가 요청하는 민간물자 수송도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한편 한국 함대에서 운항하는 LST 1척은 한국군 보급물자 수송으로 한국과 남베트남 간의 수송임무를 전담했다. 철수 시까지 적의 기습 위협과 낙후한 항만 시설의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총 항정 28만4992마일과 해상 수송 작전 462회, 군수물자 56만2011톤을 완벽하게 수송했다. 해군은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동티모르 파병부대 해상 수송, 아프간 ‘항구적 자유 작전’에 해성부대를 파병했으며, 현재 아덴만에 청해부대가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해양 안보 작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공군 지원단(銀馬부대)

 한국군 최초로 남베트남에 파병된 공군요원은 1965년 3월 비둘기부대와 함께 파병된 장병 3명으로 구성된 연락 겸 의전요원이었다. 이어 1965년 9월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될 때 참모요원으로 김재엽 중령 등 18명의 공군장병이 파병됐다. 그 후 지상군의 파병규모가 확대되고, 지상군에 대한 전술항공지원 소요가 증대됨에 따라 1966년 7월 전술항공지원본부 요원 10명과 공수지원요원 13명을 파병했다. 작전이 장기화되고, 병력이 증가됨에 따라 파병된 장병의 교대와 환자후송, 군수물자 공수 등 한ㆍ베트남 간의 장거리 항공소요가 증대됐다. 이에 따라 공군은 1966년 미 공군으로부터 C-54D 4대를 인수받아,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C-54D 인수식과 한-남베트남 간 항공수송을 전담하게 될 은마부대 명명식을 거행하고, 한국 공군기로 남베트남 전선의 후방 공수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한편 베트남 전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지합동작전의 필요성과 공수 지원소요가 더욱 절실히 요구됐다. 이에 따라 1967년 7월 1일,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예하부대에 분산돼 운용되던 공군 지원요원을 통합해 공군지원단을 창설하고, 그 예하에 전술항공지원대, 비행대 등을 편성해 주월 한국군사령부 직할부대로 운용했다. 이와 함께 C-46D 수송기 2대를 주월사 예하 공군지원단에 배속시켜, 주 2회의 정기비행과 예하부대의 요청에 의한 수시비행으로 공수지원을 제공했다. 이어 1968년 10월에 C-46D 수송기 1대를 증파했으며, 1970년 5월 적재량과 속도ㆍ항속거리 등이 우수하고 고성능 통신장비와 항법장치를 갖춘 C-54D 수송기로 교체해 보다 향상된 공수지원임무가 가능해졌다. 은마부대는 1973년 3월 15일 철수할 때까지 파병 기간 중 전술항공지원 1만669회, 공수지원 1420회 등을 통해 1만9800명의 인원과 223만 파운드의 물자를 수송했다.

 ▶특수작전부대

 지난 1월 21일 새벽, 청해부대 UDT/SEAL 특수부대 요원 20명이 ‘아덴만 여명작전’을 통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해 냈다. 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아크부대도 현지 장병들에게 특수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국군의 특수작전 수행 능력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같은 우리 군의 특수작전은 베트남전쟁에서도 이뤄졌다. 미군은 그린베레(Green Berets) 및 네이비 실(Navy Seals)을 투입해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1965년 해군 수송단대의 LSM-611함의 ‘판티에트(깜란과 냐짱의 중간지점)’ 해상 수송작전 시 UDT 요원에 의해 사전에 해안 수심과 암초 등 해저를 면밀히 탐색해 작전에 기여했으며, 각 함정 당 3명씩 승조해 함정 안전을 확보했다. 또한 수도사단과 제9사단은 제1공수특전단의 정예장병으로 구성된 사단 공수특전대를, 해병여단은 특공중대를 운용해 오작교 작전과 홍길동 작전 등 수많은 작전에서 전장 감시 및 정찰, 예상 탈출로 차단과 매복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 1969년 4월 1일 특수전사령부가 6ㆍ25전쟁 당시 군번 없이 활약했던 유격부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1공수특전단과 제1ㆍ2 유격여단을 예속받아 창설됐다. 이후 1970년 3월부터 ‘독수리 계획’에 의거 6개월 단위로 파병해 수도사단과 제9사단에 각각 12개 팀, 총 1172명이 장거리 정찰 및 수색, 적 교란 및 기습작전, 작전지역 사전 수색정찰 등을 실시했다. 베트남전쟁에서 특수작전 부대의 실전 경험은 북한의 끊임없는 지상과 해상침투 기도 분쇄 및 땅굴 수색작전 등에 큰 도움이 됐다. 오늘날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특수작전 부대는 동티모르·이라크·레바논 등에 이르기까지 해양안보작전을 포함한 세계평화유지활동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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