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28>이지윤 KBSN 아나운서

입력 2010. 10. 0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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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군 출신 첫 앵커 “아직도 군대는 내 고향”


군복무 시절 동료 전우와 함께 달콤한 휴식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한 이지윤 아나운서(뒷줄 가운데).

이지윤 아나운서는?  1982년 인천 출생.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7월부터 KBSN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 출신 앵커다.

숨 막히던 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 서울 남산 기슭에 자리한 한 대학교의 캠퍼스를 올랐다. 이곳에서 이번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봤지만 모두 학생들뿐이다.

`병영의 추억'을 얘기할 만큼 나이 지긋한 신사는 어디에도 없다. 푸른 정원수들 사이에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여대생들뿐이니 장소가 엇갈렸나 하는 생각에 잠시 난감해진다. 그때 한쪽 편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젊은 여성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맞다! 오늘 군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 이지윤 아나운서다.

  이지윤 아나운서는 현재 스포츠 전문채널 KBSN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아이러브 베이스볼'의 진행을 맡고 있다. 지난해 7월 이 방송국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스포츠 현장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해 왔던 터라 스포츠 팬들에게 이미 친숙한 얼굴이다.

매끄러운 방송 진행에 청순한 외모, 발랄한 성격까지 받쳐 주니 경기장과 방송국 안팎에서 인기가 많은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 부드러운 이미지의 여성이 예비역 장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춤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된다. 1982년 인천 출생.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7월부터 KBSN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 출신 앵커다.

 이지윤 아나운서 이력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군 복무를 결심하게 됐는지 묻는다.

그의 주변에는 딱히 군과 관련된 인물이 없다. 아버지나 한 세대 위 친척 중 군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제도 언니 한 명뿐이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군인이나 경찰 등 제복을 입은 모습에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얼마 전 우연히 들 춰본 고교시절 일기에서도 군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구절을 발견했단다. 대학 3학년 때, 해병대를 전역한 선배와 나눈 가벼운 대화가 소망에서 현실로 옮겨 간 전환점이 됐다. 이 선배는 겉모습처럼 여성스럽지도 않고, 독한 구석이 있는 데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에게 군 복무를 추천했다.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스포츠를 좋아해서 수영·합기도·권투·재즈댄스·달리기 등 이런저런 운동을 계속 해 와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더욱 그를 자극한 건 남자들끼리 모이면 으레 터져 나오는 군대 이야기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군대 이야기 끝에 꼭 따라붙는 단 한마디였다. “넌 여자라서 몰라도 돼!”

 “제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남자 선배나 동기들의 말에 오기도 생겼답니다. 당시 스페인 유학을 갈까 생각도 했었고, 방송 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이 나이에 꼭 한번 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입대를 결심했죠. 다른 건 군에 다녀와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2006년 3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지윤 아나운서는 입대했다. 여군사관 51기. 당당히 체력 검정을 거쳐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건만 남자 학사사관 후보생들과 함께 똑같이 행군하고, 사격하고, 훈련을 받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군장 무게마저 평등했죠. 몸은 힘들었지만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성취감을 맛봤답니다. K2 소총에 전신위장, 완전군장까지 하고 야간훈련을 하던 중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행복감이었어요.”

 16주의 훈련소 생활을 마친 뒤에도 4개월의 정훈장교 교육을 더 받고 나서야 육군8사단 신병교육대대로 발령을 받았다. 교육대대에서는 신병들을 대상으로 정훈교육 1과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를 가르쳤다. 군대 정신교육의 최전방에서 근무한 셈이다. 인터넷 카페 운영을 통해 장병과 부모님들의 의사소통 통로가 됐고, 부대 소개 동영상 등을 제작해 홍보하는 한편 장병 가족들의 궁금증과 걱정도 풀어줬다. 하지만 가장 큰 ‘특수임무’는 누이의 부드러운 심성으로 훈련병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당시의 장병 중에는 방송활동을 하는 이지윤 아나운서를 알아보고 가끔 메일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정훈장교로 복무하던 중 국방홍보원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다. 학창시절 대학 교육방송국 기자로 활동했던 그에게 가장 솔깃했던 말은 “국군방송(KFN) 앵커는 항상 현역군인이 맡는다”는 것. 교육대대의 일상에 묻혀 방송국 견학이 잊힐 때쯤 동료 장교가 국방일보의 공고 하나를 내밀었다. 대대장님의 열렬한 후원을 받은 그는 서류·면접·카메라 테스트 등에 모두 합격해 국군방송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됐다.

 그곳에서는 앵커로 뉴스를 진행하고, 인기프로그램이었던 국방 레이더 365를 맡아 흥미진진한 소식들을 전했다. 방송활동 외에도 홍보지원대원(연예 병사)의 중대장 역할도 겸해야 했다.

 “연예인 활동을 하다가 뒤늦게 입대한 장병이 많습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장병도 있었죠. 하지만 군기는 확실히 잡았답니다. 상명하복은 군 기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니까요. 나이 때문에 작은 신경전들도 있었지만 모두 충실하게 맡은 역할을 다해 줬습니다.”

 국군방송에서의 경험은 그가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2009년 7월 31일 40개월의 육군장교 생활을 마치고 전역과 동시에 KBSN에 입사했다. 한동안 군에서도 체험하지 못한 야전생활을 해야 했다.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열심히 경기장을 누벼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인터뷰를 맡았을 땐 꽤 긴장했어요. 상상으로 선수들에게 군복을 입혔더니 곧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이지윤 아나운서는 입대를 자원한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냥 “멋있어 보여서”다. 하지만 멋에 대한 개념이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

 “물론 제복 입은 군인이 멋있어 보여서 지원했죠. 그렇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멋이 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인에게서 진정한 멋이 나려면 군인정신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며, 임무에 대한 투철함과 적극성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멋있는, 제대로 폼 나는 군인이 되죠.”

 군에서 얻은 것이 많으니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며 외부강사나 앵커가 필요한 부대가 있으면 꼭 가서 봉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는 이지윤 아나운서.

 “아직 미혼이라 군대가 친정 같다는 표현은 못 하겠고… 여전히 고향처럼 여겨져요. 여성 학군사관후보생도 모집한다던데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값진 경험이 될 거예요.”

 <서창훈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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