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철모에서미사일까지

K-21 보병전투장갑차<23> 동력장치 개발

신인호

입력 2010. 07. 19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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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거치며 시험 성공 … 야전배치 보람


차기장갑차의 엔진
차기장갑차의 변속기

 일반적인 군용 궤도차량의 동력장치는 크게 엔진, 변속기, 냉각장치, 그리고?부수장치로 구성된다. 엔진은 차량의 기동 및 전원에 필요한 동력을, 변속기는 차량의 변속·조향·제동기능을 제공한다.

냉각장치는 엔진 및 변속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부수장치는 엔진에 연소공기를 공급하는 흡·배기장치와 차량의 조종장치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동력장치 구성품들은 탑재 및 정비성을 고려, 대개 일체화시켜 차량에 장착하도록 설계돼 있다.


 엔진과 변속기 기종 선정 

 차기장갑차 동력장치 개발을 위해 선행연구 단계에서 동력장치를 구성하는 핵심부품인 엔진과 변속기의 가용 모델 선정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미국·영국·독일 등에서 현재 생산 또는 개발 중인 750마력급 엔진과 변속기의 성능 자료를 확보해 특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엔진은 대우종합기계(현 두산DST)의 D2840LXE 모델, 변속기는 미국 GDLS 사의 HMPT500-4EK 모델을 각각 선정했다.

 D2840LXE 엔진은 K200 계열장갑차와 30㎜ 자주대공포 비호, 단거리 대공유도무기 천마의 탑재차량에 탑재된 D2840L 엔진(520마력)의 업그레이드형 엔진으로 보면 된다. 본래 D2840L 엔진은 대우종합기계가 독일 만(MAN) 사의 민수 제품을 기술도입 생산한 것으로 군용 궤도차량 외에 민수용 트럭과 고속버스용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 엔진의 기통당 출력을 증대시켜 750마력급으로 성능을 향상시켰다. 이것은 가격은 물론 군수지원 차원에서 타 엔진에 비해 크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HMPT500-4EK 변속기는 미국 GDLS사 제품으로 역시 비호와 천마의 탑재차량에 적용한 600마력급 변속기인 HMPT500-3EK를 750마력급으로 설계 변경한 변속기다. 기존 HMPT500-3EK와 80% 정도 부품 호환성이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많았다.

이 변속기는 원 설계업체인 GDLS 사가 750마력급으로 강도 보강을 위해 설계 변경한 부품들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에서 제작토록 허용하면서 ‘해외공동 개발’ 형태로 개발이 진행됐다. 

 
운용시험의 시련 

 ‘엔진은 초기에, 변속기는 안심할 즈음에.’ 동력장치 개발 관계자들이 개발 뒷이야기를 들려줄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엔진은 개발 초기에 말썽을 일으키곤 하지만, 변속기는 연구개발 단계가 한참 진행 중일 무렵, ‘이젠 괜찮겠다’ 싶을 때 문제가 일어나 애를 먹인다는 이야기다.

 차기장갑차 역시 이 속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사용군에서 개발된 무기체계의 운용성을 평가하는 운용시험 중에 차기장갑차 개발에 중대한 고비를 맞는데, 바로 변속기로 인해 찾아왔다.

당시 변속기 개발업무를 담당했던 ADD 김용원 연구원은 “연구소 입소 이래 가장 힘들었던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2006년 5월 31일, 그날은 지방선거가 있던 날이어서 임시 휴일이었다.?

 오전에 투표를 마치고 쇼핑센터에 들렀다. 정말 모처럼 찾아온 휴식 시간이었고,?상품진열대 사이로 카트를 한가롭고 밀고 다녔다. 그런데 느닷없이?핸드폰이 울렸다. 휴일에 전화라니, 반가울 리 없다. 체계종합팀장인 손재홍 박사였다. “차보(차기장갑차)가 섰답니다. 전방 향로봉 근처에서 엔진이 정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데, 운용시험을 계속할 수 없으니 (원인 파악을 위해) 현장으로 함께 가야겠습니다.”

 ‘이런! 얼마 만에 누리는 휴일인데…’하는 불만이 잠시 일었지만 이내 ‘어서 현장으로 달려가야겠다’며 서둘렀다.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잠시나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현장에 도착해서 변속기의 주압력만 확인하면 원인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육군본부 시험평가단운용시험관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운용시험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으니 어서 해결해 달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김 연구원은 곧 압력센서를 이용해 운행 상태에 따른 변속기 압력을 확인했지만 변속기 작동 압력은 모두 정상이었다. 점검 결과, 엔진 정지 원인이 변속기가 아닌 다른 부품일 것으로 판단, 운용시험을 계속 진행했다. 그렇지만, 차기장갑차는 향로봉을 넘기도 전에 엔진 문제로 또 멈춰섰다.  ?

 동력장치의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운용시험 관계자들이 긴급히 자리를 함께해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동력장치의 모든 부품들을 재점검해 원인을 찾기로 하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운용시험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엔진시동 다시 꺼져

 이에 따라 곧 변속기를 떼어내 개발업체로 이송했다. 1분이 금쪽 같은 운용시험 기간, 연구팀은 점검일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일 야간작업을 해 나갔다. 3주간이나 정밀검사를 했지만 우려했던 엔진 정지현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품 결함은 발견할 수 없었다. 원인을 확실히 찾고 해결해야 했지만, 더 이상 운용시험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부 부품을 교체한 후 변속기 동력계와 실차 장착시험을 통해 성능을 점검하고 운용시험에 재투입하기로 했다.

 2006년 6월 20일, 운용시험이 재개됐다.

경기도 양평에서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육군과학화전투훈련장(KCTC)까지 달려가 이틀간 주행하는 작전지속능력시험을 실시했다. 차기 장갑차는 정말 잘 달렸다. 그런데 문제없이 주행하던 장갑차가 갑자기 엔진이 꺼지면서 또 다시 멈췄다. 정말 난감하고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연구원에게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엔진 정지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면 운용시험이 계속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초췌한 모습을 보면서 변속기 개발 담당자로서 미안함 때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근처 부대회관에서 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는데, 평소 라면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라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어요. 그때의 그 쓰던 라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김용원 연구원)

 
 뚜렷한 원인 찾지 못해

 식사 후에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김 연구원은 “엔진이 갑자기 정지하는 현상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2개의 변속단이 동시에 작동돼 발생할 확률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변속단의 유압을 제어하는 변속기의 인터페이스 조립체(IA : Interface Assembly)가 의심된다며 경남 창원의 S&T 중공업에 있는 여유분을 긴급 수송해 교체해 볼 것을 제안했다.?

 다음날 오전, 밤새 수백 킬로미터를 긴급하게 수송해 온 IA를 교체한 후 장갑차 주행에 들어갔다. 엔진 시동이 꺼지는 현상은 나아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차량이 한쪽으로 쏠리는 주행편향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서 지원업무를 총괄하던 김인우 박사(당시 사업책임자)는 상황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변속기 모든 부품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모든 부품성적서가 검토되기 시작했다. 변속기 공동개발 업체인 미국 L3 Com 사(GDLS 사의 동력장치 부분 인수)의 엔지니어도 참여했다. 1주일 정도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지만 뚜렷한 원인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방책도 찾을 텐데 답답한 일이었다. L3 Com 사의 엔지니어들도 20년 넘게 M2 브래들리 장갑차를 운용했지만 이번과 같은 현상은 없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IA가 계속 의심스러웠어요. 그래서 단품 성능시험을 해 보았는데 마침 3단 솔레노이드 밸브에 잔압이 발생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김용원 연구원)

 밸브 사이에 미세한 이물질이 끼여 밸브가 닫히더라도 완전히 밀착되지 못했다. 이물질로 인한 미세 틈새로 3단 솔레노이드 밸브의 잔압이 발생됐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엔진 시동 꺼짐 현상과의 연관성을 분석해 보니 잔압으로 인해 2단과 3단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땀방울 보람 느껴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현상의 재현성이었다. 즉 ‘어떻게 엔진이 꺼지는 현상을 재현할 것인가?’가 숙제였다. 우선 잔압이 발생한 IA를 정상 변속기에 조립해 동력계에서 재현시험 실시했다. L3 Com의 엔지니어들도 이 시도에 동의했다. “그러나 엔진이 꺼지는 현상은 쉽게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멍석 깔아 놓고 하라면 안 된다’라는 옛말이 실감 나게 느껴졌어요. 수차례의 시도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엔진 꺼짐 현상이 재현됐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김용원 연구원)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됐고, 시험도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같은 성격의?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술자료도 보완했다.

 “지난해 11월 육군 20사단에 차기장갑차가 처음 배치됐다는 국방일보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변속기 문제로 고생하던 추억들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장갑차 개발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며 흘린 땀방울을 생각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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