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생도 형제가 겪는 사랑과 전쟁 `파노라마'
|
돈 시겔 감독의 `아나폴리스 스토리' 포스터. |
o 감독 : 돈 시겔
o 제작 : Allied Artists
o 배역 : 짐 스코트(John Derek), 페기 로드(Diana Lynn), 토니 스코트(Kevin McCarthy), 페기 로드 아버지 로드 대위(George Eldregde)
o 상영시간 : 81분 o 색상 : 컬러
o 제작연도 : 1955년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930~ )를 거장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 있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 ‘Unforgiven(용서받지 못한 자, 1992)’가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주연하고 감독한 이 작품을 돈 시겔(Don Siegel, 1912~1991) 감독과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1989) 감독에게 헌정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A Fistful of Dollars(황야의 무법자, 1964)’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석양의 무법자, 1966)’ 등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연으로 명성을 얻은 뒤, 돈 시겔 감독의 ‘Two Mules for Sister Sara(수녀와 병사, 1970)’ ‘Dirty Harry(더티 해리, 1971)’ 등 영화에 출연해 명성을 굳혔다. 더구나 시겔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감독수업을 시켰으며,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오늘 다루는 ‘아나폴리스 스토리(An Annapolis Story, 1955)’는 바로 돈 시겔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시겔은 존 포드와 같은 대가 감독의 그룹에 끼지는 못했지만, ‘B급 영화의 제왕’이라는 별명처럼 영화제작자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젊은 시절 그는 기록영화 ‘Hitler Lives?(히틀러는 살았는가?, 1945)’, 단편영화 ‘A Star in the Night(밤하늘의 별, 1945)’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에 액션 영화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후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Flaming Star(불타는 별, 1960)’, 스티브 맥퀸 주연의 ‘Hell Is for Heroes(지옥은 영웅들의 것, 1964)’, 리 마빈 주연의 ‘The Killers(살인자들, 1964)’로 주가를 올렸다.
‘아나폴리스 스토리’의 주연을 맡은 존 데릭(John Derek, 1926~1998)은 매우 이색적인 인물이다. 그는 영화배우·감독·사진작가로는 물론,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 4번의 화려한 결혼생활을 해 더 유명하다. 첫 부인은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조카손녀 패티 베르스(Pati Behrs, 1922~2004)다. 두 번째 부인은 스위스 배우이자 1960년대 섹시 심볼 우슬라 안드레스(Ursula Andress, 1936~생존), 세 번째 부인은 ABC-TV의 히트 연속극 ‘다이너스티(Dynasty)’의 주연 배우 린다 에반스(Linda Evans, 1942~생존), 네 번째 부인은 유명 배우이자 모델 보 데릭(Bo Derek, 1956~생존)이다.
그는 영화배우로서 주연보다 조연이 많았다. 독자들은 본 연재물 제10화 ‘Mission Over Korea(한반도 상공에서의 임무, 1953)’에서 피트 베이커 중위로 출연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조연한 대표작이라면, ‘십계(The Ten Commandments, 1956)’에서 여호수아 역할이 아닌가 한다.
그는 감독으로도 활동했는데, 자기 부인 보 데릭과 앤소니 퀸을 주연으로 내세운 ‘귀신은 사랑을 못해(Ghosts Can’t Do It, 1990)’가 대표작의 하나다. 또한 뮤직 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컨트리 팝 아티스트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 1965)의 뮤직비디오가 그중 하나다. 그는 심지어 도색영화(桃色映畵)를 감독하기도 하고, 사진작가로서 플레이보이 잡지를 위해 첫 번째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부인의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을 보인 인물이었다.
‘아나폴리스 스토리’는 미 해군의 홍보영화 성격을 띤다. 숙련된 해군조종사를 만들기 위한 미 해군사관학교의 혹독한 훈련, 6·25전쟁에서의 실제 전투 경험, 그리고 한 여자를 두고 두 형제가 벌이는 애정의 삼각관계가 이 영화의 볼거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짐 스코트와 토니 스코트는 미 해군사관학교 생도다. 형 짐은 모범생이며 공부광이지만, 동생 토니는 남자답고 놀기 좋아하며 무모하다. 교내 미식축구 대회에서 토니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 상대를 이긴다. 경기 후 감독은 토니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오히려 꾸짖는다.
짐은 토니에게 개인적인 욕망보다 팀워크와 규율이 중요하다고 충고하며, 그날 밤 함께 댄스파티에 가자고 제안한다. 짐은 자기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싶었다. 짐은 3년 전에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으나, 2년간이나 만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여자친구 페기를 만난 짐은 신이 났고 사랑이 다시 불붙는다.
짐과 토니는 교정을 벗어나 항공모함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훈련 과정에서 토니가 이륙 후 바다에 불시착하자, 짐이 의식불명이 된 동생을 구한다. 해군은 토니가 심각한 뇌진탕이 아닌지 우려하며 그의 회복을 위해 사관학교 병원으로 돌려보낸다.
페기는 토니가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위로차 방문하는데, 퇴원 후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형의 여자 친구로 페기를 대했으나 점차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토니.
페기는 토니의 매력과 집요함에 키스를 허락한다. 그러나 그의 결혼 요구는 거절한다. 후에 짐이 항공모함에서의 훈련에서 돌아오자, 토니는 페기와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분노한 짐이 페기에게 심한 비난을 퍼붓자 그녀는 짐의 따귀를 때린다. 짐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도둑질했다며, 토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짐과 토니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기 일주일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짐은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나, 토니는 550명 중 405등이다. 토니는 페기에게 청혼하며, 페기는 거절한다. 페기는 아버지인 로드 대위를 따라 도쿄로 가고, 최초의 전투에서 두 형제는 북한 비행기 3대를 격추한다.
휴가를 얻어 토니를 만난 페기는 자기가 아직도 짐을 사랑하며,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토니는 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 하지만, 짐은 아예 토니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짐은 페기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는지 모르고 출격했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낙하산으로 바다에 착륙한다. 토니는 짐의 구조를 방해하는 적기를 격추하고, 짐은 헬리콥터로 구조돼 도쿄의 병원으로 후송된다. 짐이 의식을 차리자 침대 옆에는 뜻밖에 페기가 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마침 병실에 들어선 토니는 이 광경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나폴리스 스토리’는 저예산 영화의 특성상 현지 로케가 아니라 영화제작사의 야외 촬영장을 이용했고, 해군이 제공한 자료 화면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컬러로 제작되고, 특히 시겔 감독의 신선한 터치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미 해군이 엄격하지만 안락하고, 재미있는 훈련을 통해 훌륭한 조종사들을 배출한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강조된다. 동시에 한 여인을 두고 벌이는 두 형제의 경쟁적인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홍보와 오락을 동시에 추구한다. 즉, 페기가 형과 동생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형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은 군사훈련과 전쟁이라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줄거리를 부드럽고 흥미롭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