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공군

“먹고 남기지 않을 만큼 맛있게 만들자”

송현숙

입력 2010. 05. 19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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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송현숙 기자 공군11전비 병사식당 급양병 체험기


대형부침기 앞에 서서 햄버거에 들어갈 고기 패티를 굽는 송현숙(오른쪽 둘째)기자. 10년차 주부 기자의 경력을 믿고 자신
있게 나섰건만 곧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이헌구 기자

병사 식당 입구에 마련해 놓은 1인분 아침식사 견본.

 한때 군대 최고의 보직은 단연 취사병(현 급양병)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명성도 시들해졌다. 남들 쉴 때 삼 시 세 끼를 챙겨야 하는 고된 임무인 데 반해 ‘폼’이 나지 않는다며 기피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급양병들을 바라보는 ‘시시한 눈길’을 거두시라. 공군11전투비행단 급양병들과 함께 병사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국자와 주걱을 총 삼아 매일 전투에 나서는 ‘밀리터리 셰프(chef)들’의 활약상을 취재했다.

 ▲빵이 싫어? 그럼 야채죽 먹고 힘내!

 지난 13일 새벽 4시 30분. 아직 캄캄한 세상과 달리 공군11전투비행단 내 제1병사식당에는 형광등 불빛이 훤했다.

 아침 6시 1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아침 배식을 위해 지원대 소속 급양병과 조리사들이 음식 마련에 들어간 것.

 이날 아침 메뉴는 이른바 ‘군대리아’. 일주일에 한두 번 나오는 군대식 햄버거다.

 “국, 밥, 3찬으로 구성된 한식에 비해 간단하겠다”고 하자 지원대장 박관서(36) 소령이 “몇 가지 사이드 메뉴가 있다”며 기자에게 메뉴표를 내밀었다.

 야채죽과 시리얼, 찐고구마…(헉, 우리 집보다 낫다!). 빵을 싫어하는 토종파 병사들을 위한 배려란다. 하루 1200여 명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대형식당에서 이렇게까지 장병 하나하나를 세심히 챙기니, 이 부대에 아들을 맡긴 부모님들이 전해 들으면 절로 탄성이 나오지 않을까.

 흐뭇한 마음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나왔더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전날 밤 부식으로 가져온 신선한 쌀빵을 데우고, 스프와 야채죽을 끓이고, 손질된 샐러드용 야채를 나눠 담고, 케첩 등 각종 소스의 뚜껑을 열어 배식대로 옮기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자 보다 못한 급양반장 백승창 상사가 일거리를 나눠 줬다. 대형부침기 앞에 서서 4인 1조로 햄버거에 들어갈 고기 패티를 구워 즉석에서 배식하라는 것. 호텔 뷔페에서 고기나 스파게티를 즉석에서 요리해 그릇에 담아주는 풍경이 병사식당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백 상사는 “이전에는 일손이 부족해 한꺼번에 쪄서 배식했는데, 고기의 식감과 온도 등을 고려해 지난 3월부터 일일이 구워 배식했더니 두 달 만에 공군 병사들이 먹고 싶어 하는 11전비만의 대표메뉴가 됐다”고 설명했다.

 1등으로 식사하러 온 시설대 최영현(21) 일병은 “식당에 들어서면 패티 굽는 냄새가 먼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고, 시리얼과 죽도 맛있어 이것저것 담다 보면 식판 칸이 모자란다”고 흡족해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알면서도 단체급식을 하다 보면 맛보다 조리의 편리함을 좇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원대 장병들의 땀방울로 만든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군대리아’ 패티 2400장 굽고, 항복!

 4명이 구워야 하는 패티 수는 총 2400장. 병사 1인당 2장씩 나눠줄 양이다. 명색이 10년차 주부인데 이쯤이야!

 적당한 온도로 달아오른 대형 불판에 살짝 식용유를 두른 뒤, 24장의 패티를 가로 세로 8×3으로 가지런히 펼쳐 놓고 굽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뒤집기, 왼손엔 집게를 들고 명절음식 만들던 솜씨를 뽐냈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던 걸까. 여기저기서 탄내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뒤집었는데 꺼뭇꺼뭇 못 먹을 정도로 탔다.

 사고(?)를 은폐하려는데 전문하사 윤용진(23) 하사 눈에 딱 걸렸다. “아이쿠, 이렇게 탄 걸 병사들한테 어떻게 배식해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꼭 어머니 같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2차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 10장만 올려놓고 재빨리 구워 병사 식판 위에 올려 냈다. 정신없이 배식하다 보니 얼굴과 등은 땀 범벅이 됐고, 집게 잡은 손의 손목은 녹슨 나사마냥 뻑뻑해졌다. 맨손체조로 간간이 긴장을 풀어보지만 숨쉬기 운동만 해온 기자의 ‘허약 체력’은 오전 9시, 온몸으로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전우들 맛있게 먹으면 힘이 절로!

 “급양병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김대선(27) 일병이 말하는 급양병의 정의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전우들이 맛있게 먹으면 절로 힘이 나고 맛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

 이들이 말하는 ‘맛있다’ ‘없다’의 기준은 잔반. 맛에 대한 평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대는 매월 영내자 급식 설문조사, 으뜸병사들이 고문 자격으로 참가하는 부대급식협의회, 상시 게시판 등의 창구를 열어놓고 급식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영양과 맛·기호도 등을 고려해 조리방법을 다양화하고, 비행단 차원에서 개별적인 식재료 수급 계약 방안을 모색하는 등 최고의 식사를 제공하고자 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4월 2010 공군 급식 질 향상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2010 세계 관광음식 박람회 군인조리경연대회에서 2개의 금상을 수상하며 ‘공군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가 나오는 부대’로 인증받았다.

 황성돈(준장) 11전투비행단장은 “장병 전투력의 원천은 따뜻하고 맛있는 밥 한 끼”라면서 “‘먹을 만큼만 덜자’가 아닌 ‘먹고 남기지 않을 만큼 맛있게 만들자’라는 철학을 갖고 병사 급식 개선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셰프란

 셰프(chef)는 식당의 주방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최고의 7성급 호텔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헤드 셰프 에드워드 권과 최근 모 방송에서 파스타 요리 전문점의 셰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 직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셰프 가운데 이그제큐티브셰프(executive chef)는 음식 주문, 장소 관리, 메뉴 개발 등을 포함하는 주방의 모든 운영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수셰프(sous-chef)는 서열이 두 번째인 주방장으로서 스케줄을 짜고 필요한 경우 주방장을 돕는 역할을 한다.

 셰프의 종류도 다양하다. 소테 요리사, 생선 요리사, 로스트 요리사, 그릴 요리사, 프라이 요리사, 채소 요리사, 패스트리 요리사, 냉동식품 저장 요리사, 육류담당 요리사, 라운드즈먼 등이 있다.

 기사에 쓴 ‘밀리터리 셰프’라는 표현은 장병들의 건강한 식탁을 위해 애쓰는 급양 관계자들의 전문성이 일반 식당의 주방장들과 견줘 속색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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