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할리우드가본6·25전쟁

<2> 노섹 감독의 ‘한국 정찰대’

입력 2010. 03. 1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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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다른 형제애 `태극기 휘날리며' 미국판 6·25 다룬 할리우드 최초의 극영화 전쟁 7개월째 개봉 59분짜리 흑백 할리우드가 본 6·25 전쟁



o 감독: 막스 노섹
o 제작: 잭 스워츠 프로덕션
o 배역: 크레이그 중위(Richard Emory) 형‘김’(Benson Fong), 동생(Li Sun),병장 에이브람스(Al Eben), 한국 여성(Teri Duna),다이크스 상병(Danny Davenport)등
o 상영시간: 59분 
o 색상: 흑
o 배급: 이글-라이온 
o 제작연도: 1951년

 요즈음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의 하나로 각광받는 조니 뎁이 주연한 영화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가 2009년 8월 국내에서 개봉됐다. 액션 범죄영화 ‘히트(Heat)’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미국 대공황기의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허버트 딜린저(John Herbert Dillinger, 1903~1934)의 생애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딜린저는 식품점에서 50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8년 반 동안 수감됐다가 1933년에 출감한 후 1934년까지 약 1년 동안 20여 개의 은행을 털고, 4개의 경찰서를 습격한 희대의 강도였다. 그의 최후도 극적이었다. 1934년 극장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이런 딜린저의 일생은 극화되기에 충분했으며, 그의 사망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설·영화·TV드라마에서 종종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초로 딜린저를 영화화한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나치를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인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막스 노섹(Max Nosseck, 1902~1972) 감독이다.

  6·25전쟁에 관한 할리우드 최초의 극영화도 노섹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1951년 1월 15일, 이날은 ‘한국 정찰대(Korea Patrol)’라는 세계 최초의 6·25전쟁 극영화가 개봉된 날이다. 전쟁 발발 7개월이 채 안 되는 때였다. 막스 노섹이 감독하고, 잭 스워츠 프로덕션이 제작한 이 영화는 59분짜리 흑백영화다.

 ‘한국 정찰대’는 59년 전에 상영된 이후 잊혀진 영화다.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고, 저예산으로 제작된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이 영화 포스터에 광고된 것과 달리 ‘맥박이 뛰는 드라마’ ‘당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고, 이야기의 전개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객에게서 멀어진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 영화보다 보름 뒤에 개봉된 영화 때문이었다. 사무엘 풀러(Samuel Michael Fuller, 1911~1997)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6·25전쟁 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 ‘철모(The Steel Helmet)’가 그것이다. ‘철모’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소개하기로 한다.

 ‘한국 정찰대’가 오늘날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 밖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할리우드, 나아가 세계 최초의 6·25전쟁 극영화라는 점에서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지면상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북한 공산군의 침략 직후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의 실제 자료화면으로 시작된다. 안보리는 북한 공산군이 즉각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어 내레이터가 북한의 침략 시 한국에는 500여 명의 미군 군사고문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 영화는 유엔군이 전투에 가담한 최초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북한군의 침략이 있던 날, 크레이그 중위와 다섯 명의 다른 정찰대원들은 두 개의 주사위로 하는 게임을 하며 쉬면서 북한군이 침략할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때 크레이그가 사령부로부터 무전을 받는다. 북한군이 침략했으니 ‘마벨’이라는 작전계획을 수행하라는 명령이었다. 북한군이 건너게 될 교량을 확보하든지 파괴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2개조의 정찰대가 크레이그 정찰대의 임무 수행에 협조할 것이라는 정보도 받았다.

 크레이그는 2명의 미군 병사와 3명의 한국군 정찰병과 함께 북한 비행기를 피해 숲으로 이동하며 목적지로 접근한다. 그런데 사령부에서 다시 연락이 온다. 다른 2개조의 정찰대가 적군과 조우해 전멸했다는 것이다. 이어 한국군 전령 1명이 추가 명령을 갖고 크레이그 정찰대로 찾아온다. 전령은 이미 크레이그 정찰대의 한국인 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형과 재회한다.

그런데 형은 동생을 보자 놀란다. 미국인들을 적이라고 믿고 있는 동생이 나타났고, 더구나 동생이 한국 ‘군복’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왔다고 믿으며 미군과 함께 근무 중인 형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어쨌든 동생은 사령부의 명령이라며, 크레이그 중위에게 다리 폭파를 위해 가까이에 있는 적의 건설현장으로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찰대원들은 적군의 음성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적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형은 혼자 건설현장에 침입해 다이너마이트 상자를 구한다. 그 과정에서 그를 쫓아오는 2명의 적 경비병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한다.

 다이너마이트는 7명의 정찰대에게 분배된다. 형은 동생이 혹시 기회가 되면 북한군에 협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한다. 정찰대는 다시 교량으로 행군을 계속하다 적과 조우한다. 한국 정찰대 한 명이 살해된다. 또한 교전 중에 중상을 입은 다이크스 상병은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지니고 적진으로 기어가서 자폭해 적병들과 함께 산화한다.

전쟁의 공포를 처음으로 목격한 동생은 형에게 미군을 배신하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형은 반대한다. 정찰대원들은 농가로 가는데, 그곳에서 적의 포로가 된 한국 여성을 만난다.

그들은 적 경비병들을 죽이고 그녀를 구출해 숲속으로 돌아온다. 이때 또 한 명의 한국군 정찰대원이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미군 에이브람스 병장도 등에 칼을 맞아 죽는다.

 형 ‘김’은 크레이그 중위와 임무를 수행하러 가면서 여인에게 총을 준다. 이미 한번 도망치려고 하다가 제지된 동생을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여인은 동생에게 겁쟁이라면서, 북한인들이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얘기해 준다. 동생은 창피함을 느끼고 작전에 참여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동생은 그녀가 갖고 있는 소총을 받아들고 형을 뒤따라간다.

한편 교량 근처에서 형 ‘김’은 다리에 부상을 당하고, 크레이그는 팔에 총상을 입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용감히 싸운다. 그때 동생이 도착해 북한군 몇 명을 사살하고, 다이너마이트를 받아서 교량을 폭파한다. 마침 다리 위를 지나던 최초의 북한군 탱크들도 함께 화염에 싸인다. 임무를 수행한 동생과 형, 그리고 크레이그는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면서 부대로 돌아온다.

비록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지만, 필자는 이 작품의 스토리 전개가 나름대로 탄탄했다고 본다. 제작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더라면 이 영화가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다음과 같은 매력적인 착안을 했기 때문이다.

 첫째, 6·25전쟁 중의 형제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의 시대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이 점에서 강제규 감독, 장동건·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를 연상시킨다. 두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과 형제애를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는 대박을 냈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두 형제가 마침내 영웅적인 행동을 함께 하는 ‘한국 정찰대’는 흥행에 실패했다.

 둘째, 교량 폭파라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가상의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의 또 다른 6·25 전쟁영화 ‘도곡리 다리들(The Bridges at Toko-Ri, 1954)’에서는 잘 극화돼 아직도 세계 영화팬들의 호평을 받는 명화가 됐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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