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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풍운의 별-136-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기사입력 2010. 01. 21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15

필자 부부 사진. 부인 최정임 씨는 1998년 1월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                                                      <필자 제공>


아내가 입원해 있던 병실은 혼자 쓰는 독실이 아니고 여성 환자들만 있는 6인실이었다. 그런 병실에 6척 장신 남자가 여성 환자들 보는 앞에서 병실의 ‘궂은일’을 할 때면 참으로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32세 여성 신장 기증받아

강남 성모병원은 모든 면에서 서울대병원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의사가 특실이건 일반 병실이건 차별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고, 간호사 또한 매우 친절했다. 때때로 수녀들이 병실을 찾아와 아내를 보살피면서 ‘우리들 수도자의 사랑보다 박 장군님의 사랑이 더 지극하다’고 말하면서 나를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주기도문(主祈禱文)을 신조로 사랑·봉사·평화를 위한 일상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1988년 2월 15일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이 내렸다.

아내가 건강한 32세 여성의 신장(腎臟)을 기증받게 된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내려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강남 성모병원 외과과장 김인철 박사의 집도로 신장이식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주기도문을 읽어 주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여덟 시간 동안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제발 수술이 성공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다. 장장 여덟 시간에 걸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었을까. 아내의 수술 경과는 매우 좋았고 회복도 빨랐다. 수술한 지 2주 만에 무균실(無菌室)에서 일반 병실로 나올 수 있었다. 아내는 내 손을 꼭 잡고 ‘당신의 기도문 낭송에 감동되어 수술을 편안하게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군과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다 보니 아내의 건강을 너무도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만큼 이제부터 나는 아내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그 후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다녔다. 경과는 그런대로 좋았다.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여행도 가까운 일본 정도는 가능하다고 의사가 말했었다. 그렇게 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큰 후유증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정말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청담동 성당에 가서 아내를 살려 주신 천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면서 아내의 몸은 차츰 저항력을 잃어 갔다. 나는 지체 없이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저항력이 떨어지자 금방 간(肝)에 이상이 생겼다.

10년 지나면서 저항력 잃어그때

일주일쯤 됐을 때 간에 있던 암세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의사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마지막 날 의사가 귀띔해 줬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잠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간 사이 병실에 있던 며느리와 딸들이 ‘어머니가 이상하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병실에 가 보니 벌써 숨을 거둬 버렸다. 1998년 1월 12일 오후 2시께였다.

 장례식은 예정대로 청담동 성당에서 엄숙하게 치렀다. 그날은 겨울인데도 아내의 심성을 닮아서 포근하기까지 했다. 1931년생인 아내 최정임은 여주의 남한강 공원묘지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부디 영면(永眠)하시라.

<박정인 전국방부전사편찬위원장·정리=김준범 언론인 bal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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