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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홍천부근 전투

기사입력 2009. 12. 21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10

38선에서 남진하는 적 포착, 격멸

1950년 12월 중순, 양양~인제~화천 지구의 중동부 전선은 장진호에 침입한 중공군 제9병단과 북한군 제3·4·5군단이 남하해 점령하려 했으나 함흥~흥남 지구의 미 제10군단 철수작전(12월 24일 완료)에 투입됨으로써 북한군 제2군단이 이 지역 점령 임무를 담당하게 됐다. 이에 대해 12월 20일부로 제2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예하 제7사단을 춘천 부근에서 현행 임무수행토록 하고, 제3사단은 인제 남쪽 38도선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부 전선에 투입, 적의 남침을 격멸하게 했다.

 따라서 함북 성진항에서 흥남을 거쳐 12월 12일 부산과 구룡포에 상륙한 국군 제3사단(사단장 최석 준장)은 동월 15일 ‘인제 지구의 38도선상에 배치해 남진하는 적을 포착해 격멸하라’는 2군단 작전명령 제100호에 의해 부산~경주~영주~안동~제천~원주~홍천선을 따라 북상, 20일까지 홍천에 집결했다. 제3사단은 그동안 제1군단 소속이었는데 12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편제돼 중동부 전선을 담당하게 됐고, 기존의 사단 예하 26연대와 수도사단 제18연대가 교대했다.

 12월 20일 제3사단장 최석 준장은 홍천에 사단 지휘소를 개설하고 예하 제22연대를 사단의 우전방 신풍리 일대에, 제18연대를 좌전방 자은리 일대에 배치했다. 그리고 제23연대는 사단 예비로 홍천 부근 경계임무를 부여했다. 이후 3사단 예하 각 부대는 담당 지역을 점령해 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찾는 노력과 기회 교육을 통한 교육훈련을 계속했다.

 국군 제3사단이 점령해 방어할 작전지역은 정면에 소양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강의 북안에는 대소고지가 분포했으며, 홍천에서 인제·양구에 이르는 24·92번 도로 좌우측에는 해발 평균 700미터의 대소고지가 종격실을 형성했다. 또한 폭이 좁은 도로들과 적설 및 결빙, 도로 좌우측 산악의 울창한 산림은 적의 소규모 유격대 침투에 유리하고 이를 포착해 격멸하는 아군에게는 큰 장애요소였다.

 전투는 23일부터 본격화됐다. 3사단의 좌측 인접 부대인 국군 제8사단 지역에 적이 출몰하자 사단 좌측 부대인 제18연대 1대대가 8사단 제10연대와 연계한 반격작전을 통해 적을 축출했으며, 사단 예비인 제23연대 2대대도 8사단 지역을 통해 침투한 적이 3사단 점령 지역인 홍천고개에 나타나자 이를 격멸하기 위해 출동했다. 24일 18연대장은 3사단 좌측 8사단 방어선을 돌파한 적을 소양강 북안까지 축출하기 위해 8사단 10연대 1·2대대를 통합 지휘하고, 23연대는 18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하 2대대를 자은리 서쪽 4km 지점으로 배치했다.

적의 공격 양상은 소부대 단위 유격대를 아군 진지 후방에 침투시켜 적극적인 후방 교란에 역점을 둔 것이다. 25일에는 3사단 우측 연대인 제22연대 지휘소에도 적의 침투와 기습공격이 시작돼 2개 소대 규모의 적이 격퇴됐으며, 예하 1대대는 우측 인접부대인 국군 제9사단 28연대 지역을 침투해 사단 지역 내에 나타난 적을 포착·격멸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적은 집요하게 3사단 좌우 인접부대와 예하 부대 간의 간격을 통해 침투하거나 아군의 일부진지를 돌파, 퇴로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전방의 제18·22연대는 일진일퇴의 접전이 계속됐다. 26일부터는 3사단 전 전선에서 적 유격대 침투가 시도됐고, 사단의 각 부대는 적을 찾아 격멸하는 한편, 퇴로가 차단되면 돌파해 후방에 진지를 재편성했다.

 결국 2군단 내 전 지역이 적 유격대의 침투로 위협받게 되자 군단장은 전열을 정비하고 적 점령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27일 09시를 기해 38도선상을 목표로 반격작전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27일부터 28일까지 3사단 예하 각 연대는 38도선상의 지정된 목표를 향해 공격작전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보·포·공병의 제병협동 및 미 공군과의 합동작전이 효과적으로 진행돼, 집결이 노출된 적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29일부터 3사단 각 연대는 38도 선상의 각 목표 지역을 점령한 후 진지를 강화하는 한편 적을 찾고 격멸하는 적극적인 공세 행동을 계속해 전선을 안정시켰다.

 30일 3사단의 우측 인접 부대인 9사단 28연대의 정면을 돌파한 적 1개 연대가 3사단의 후방교란 및 보급로 차단을 목적으로 홍천을 향해 북상하자 사단 예비인 제23연대가 이를 삼마고개에서 저지했고 31일에는 양덕원리와 한계리 동쪽 용포동, 하송고개 방면으로 북상한 적을 각각 공격해 격퇴했다. 이 시기에 사단 전방의 22연대와 18연대는 계속 적과 교전하면서 진지를 확보해 전선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2월 31일 중공군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소위 ‘3단계 제3차 작전’을 감행, 총 반격전을 전개해 3사단 좌우측의 국군 제7·9사단이 돌파당하고 3사단의 퇴로가 차단당할 위기에 빠지자 부득이 유리한 차후작전을 위해 단계적인 철수작전을 단행하게 됐다.

<성연춘 대위 육군사관학교 전사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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