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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흥남(興南) 철수작전

기사입력 2009. 12. 14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09

美 10군단·한국군 1군단 성공적으로 철수

 흥남(興南) 철수작전은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과 한국군 1군단장 김백일 소장의 유기적인 협조하에 중공군 9병단 예하 3개 군단(20·26·27군단)과 북한군 제4·5군단의 공격을 격퇴시키고 성공적인 철수를 실시한 작전이다.

 중공군은 미 제10군단과 한국군 1군단을 포위 섬멸시킴으로써 유엔군의 우익을 제거해 전쟁에 유리한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흥남철수작전 결과 오히려 중공군의 대병력이 이 지역에서 견제 및 흡수돼 중공군 9병단이 서부의 13병단을 증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됨으로써 유엔군의 위기가 당분간 사라지게 됐다.

 전전(戰前) 상황을 살펴보면, 미 제10군단장 알몬드(Almond) 소장은 11월 중반까지도 당초의 계획대로 동북전선의 진격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급적 빨리 국경선으로 진출할 생각으로 한국군 수도사단은 청진에서 회령~웅기선으로, 한국군 제3사단은 길주~합수선으로, 미 7사단은 풍산~혜산진으로, 미 1해병사단은 장진호에서 압록강 상류로 각각 진격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이미 중공군 9병단 예하 3개 군단의 대병력이 한만국경을 넘어 국경선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미 1해병사단이 11월 27일 장진호 서안 유담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을 무렵 중공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미 해병1사단을 포위하고 후방작전선을 완전히 차단하려 했다. 한편 당시 서부전선의 미 8군도 중공군 13병단의 주력과 불시에 격돌해 큰 혼란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이처럼 상황이 급변하자 11월 28일 밤 맥아더 장군은 동경에서 전략회의를 소집해 전 전선에서의 철수를 결정했고,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11월 30일 오후 군단 철수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따라 혜산진(惠山鎭)과 신갈파진(新乫波鎭)으로 진출했던 미 7사단 주력과 청진으로 진출했던 한국군 1군단도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를 서둘러 한국군 1군단은 대체로 12월 10일까지 흥남으로의 철수를 완료했다.

 장진호 전투 이후, 12월 12일 미 1해병사단이 흥남으로 철수를 완료하자 10군단장은 미 3사단을 흥남 서쪽 연포비행장 지역에, 미 7사단을 흥남 북쪽, 한국군 1군단(수도사단 1기갑연대와 3사단 26연대)을 함흥 동쪽과 동해안에 각각 배치해 교두보를 구축하도록 했다.

 또 10군단의 안전한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흥남 근해에 항공모함 7척, 전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 로켓포함 3척을 배치해 중공군의 공격으로부터 설정된 통제선을 화력으로 철저하게 보호하도록 했다. 또 109척의 수송선을 동원해 병력 10만5000명, 차량 1만7500대, 35만 톤의 각종 전투 물자를 철수시키도록 했고, 미 극동공군의 전투화물사령부도 철수 초기에 연포비행장을 통해 철수를 지원하도록 계획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해상 철수작전이었다.

 12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승선과 탑재를 완료한 미 1해병사단이 15일 오전 9시 흥남을 떠났고, 12월 14일부터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 7사단 예하 32연대와 31연대 1대대, 군단본부가 승선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중공군 9병단 예하 3개 군단이 주공이 되고 북한군 제4·5군단 등이 조공이 돼 무자비한 인해전술로 흥남 교두보를 압박했다. 적의 1차 공세는 아군의 함포사격과 항공폭격으로 예봉이 꺾인 후 다시 지상부대의 화력으로 저지됐다.

 적은 12월 15일 접근이 보다 용이한 흥남 북쪽의 산악지대에서 2차 공세를 개시했으나 아군은 해·공군의 지원포격에 힘입어 이를 저지했다. 12월 16일 중공군은 이틀간의 손실을 감안해 북한군을 선두로 공격을 재개했으나, 이번에도 아군은 공중·함대·지상의 입체사격으로 격퇴했다.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수도사단의 승선이 다소 늦어졌으나 17일 야간까지 승선을 완료, 군단본부와 함께 흥남을 떠났다. 이어 미 7사단이 12월 21일에, 나머지 미 3사단이 12월 24일에 흥남을 떠나자 그날 14시 30분 유엔군의 항만 폭파를 끝으로 흥남철수작전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한국군 1군단장 김백일 소장은 철수작전을 실시함에 있어 수없이 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있는 피란민을 안전지대로 해상수송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9만1000여 명의 피란민의 철수를 도왔는데, 이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이 있기도 했지만 자유민의 수호라는 지상의 명령을 누구보다 강력히 이행하려는 장병들의 하나된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다.

<박홍배 소령(진) 육군사관학교 전사학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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