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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고랑포 제1땅굴 발견과 교훈

기사입력 2009. 11. 23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06

평화의 제스처 보이며 남침용 땅굴 구축

임진강 고랑포 제1땅굴.

 어떤 사건도 그것을 후일에 반추해 볼 때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의 긴장감을 그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과 국민들에게 당시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북한의 위협을 경시할 수 없게 만든 일은 1974년 11월 15일에 처음으로 임진강 고랑포 지역 비무장지대(DMZ) 남단에서 북한이 구축한 땅굴이 발견된 사건이다. 그것은 북한의 대남전략의 집요함과 교활성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날 오전 7시 35분 우리 국군 민정경찰 9명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을 순찰하던 중 지하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의심스러운 그 지역을 파헤친 결과, 지표에서 약 46cm 아래에 터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땅을 파는 작업을 계속했다.

 흙을 파고 있던 도중 오전 8시 5분쯤 북한 측으로부터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 이 사격으로 작업하던 병사들 중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했다. 우리 측에서는 즉각 대응사격을 해 방어태세를 갖추는 한편, 문제의 터널이 뻗어나가는 곳을 탐색했다. 그 결과 이 터널이 군사분계선 남쪽 1200m까지 형성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동안의 작업 끝에 이 ‘고랑포 땅굴’은 그 전모가 드러났다. 이 땅굴은 폭 1m, 높이 1.2m 규모의 콘크리트 슬래브로 구축됐고 전체 길이는 3200m로 추정됐다. 땅굴 내부에는 220V 전선에 60W 전구가 가설돼 있었으며 작업용 협궤 레일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흙 운반용 수레차가 발견됐으며 터널의 곳곳에 우회 통로와 수레차를 돌리는 지점 및 취침장소와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이날의 수색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날인 11월 16일 서종철 국방부장관이 밝혔듯이 이것은 북한이 일본을 통해 간첩을 침투시키는 것을 대신해 좀 더 강력한 침투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7일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긴급대책회의에서 이 지하침투로는 1시간에 1개 연대병력과 각종 군사물자를 수송해 침투시킬 능력을 가진 것임이 확인됐고,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의 목적으로 구축됐다고 분석됐다.

 정부는 이 사태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보고, 유엔군 사령부를 통해 북한에 항의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원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또 휴전선 일대와 해안시설의 경계를 강화했다. 유엔군 측은 북한이 판 땅굴이 중대한 휴전협정 위반이자 도발이라고 대변인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북한의 행동을 비난했지만 북한은 미군과 대한민국이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땅굴 발견 후 5일째인 11월 20일 국군 2명과 미군 6명 등 8명으로 편성된 공동수색조가 땅굴의 구조와 제원을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땅굴 안에서 수색작전을 전개하던 중 군사분계선 남쪽 300m 지점에 이르렀을 때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폭발로 작업 중이던 우리 국군 장교 1명, 미군 장교 1명 등 2명이 전사했고, 미군 5명과 국군 1명 등 6명이 부상당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것은 그 땅굴이 1972년 남북 간의 대화 교섭이 이뤄졌던 바로 그 시기에 착공됐다는 사실이다. 북한 땅굴 설계에 참여했다가 후에 귀순한 설계기사 김부성에 의하면 북한은 1972년 2월 1일에 이 땅굴을 착공했다. 북한 수뇌부는 1970년 베트남과 중국의 갱도를 시찰한 뒤 ‘북한 실정에 맞는’ 땅굴을 파기로 결정했다. 김일성은 1971년 9월 25일에 이른바 “통일을 위한 대통로”, 즉 땅굴을 건설하라는 은밀한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땅굴 구축이 시작된 것이다. 남북대화를 통해 평화 제스처를 보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후방침투용 땅굴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에 철원·판문점·양구에서 추가로 발견된 제2, 제3, 제4호 땅굴은 그 규모가 고랑포의 제1땅굴보다 더 커 그것이 다만 간첩침투용이 아니라 전쟁 시 대규모 병력 투입을 목표로 한 것임이 명백해졌다.

 북한 땅굴 발견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땅굴의 존재는 우리에게 북한과의 협력과 교섭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임할 것을 경고해 준다.

  <김광수 육군사관학교 전쟁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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