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11전투비행단 151전투비행대대의 F-4D 팬텀 전투기가 29일 도입 40주년을 맞이한다. ‘하늘의 도깨비’로 불리며 1969년 도입 이후 40년간 변함없이 조국의 하늘을 철통같이 수호해 온 F-4D 팬텀 전투기의 과거·현재·미래를 살펴본다.
▲ 과거
‘명품(名品)’ 하면 으레 핸드백이나 의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무기체계에도 명품이 있다. 뜀박질하듯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쏟아져 나오는 최첨단 무기체계 속에서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제 역할을 당당히 해 내는 무기체계가 바로 명품 아닐까.
그런 점에서 F-4D 팬텀은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웰메이드(well-made) 무기체계다. 우리나라는 1969년 8월 29일 오전 F-4D 팬텀 1차 도입분 6대가 대구기지에 무사히 착륙하면서 아시아 최초의 F-4D 팬텀 도입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의 F-4D 팬텀 도입은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당시 국제적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었다. 60년대 당시 북한 공군력은 우리 공군력의 2배 이상이었다.
최신예 MiG-21 전투기와 IL-28 전폭기 등을 운영하던 북한에 비해 우리 공군력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뒤져 있었다. 우리 공군은 이러한 남북 공군력 비대칭을 해소하고 공군 현대화를 위해 F-4D 팬텀을 원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시 군 통수권자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필요성을 역설했다.
F-4D 팬텀은 미 공군에서도 막 실전 배치가 이뤄진 ‘최신예’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68년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미 푸에블로 호 납북사건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도입을 요청하는 등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 미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국군의 베트남전 3차 파병과 관련해 미 정부가 우리나라에 제공한 특별군원 1억 달러 중 6400만 달러를 들여 F-4D 팬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공군은 F-4D 운용을 위해 69년 7월 10일 151대대를 창설했고 같은 해 8월 29일 1차 도입분 6대를 인수했다.
이후 국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구입한 ‘방위성금 헌납기’를 포함해 총 70여 대의 F-4D를 도입했다. 현재는 20여 대를 운용하고 있다. ‘명품’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지난 40년간 F-4D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71년 소흑산도 대간첩선 작전에 투입됐고, 83년에 구소련의 TU-16을 요격하기도 했다. 그 이듬해에는 구소련 TU-95와 핵잠수함을 요격·식별했고, 98년 동해에 출현한 러시아 정찰기 IL-20을 요격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 현재
명품, 아니 명품의 할아버지라도 항공기를 40년간 사용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특별한 비결이라도? 우리 공군은 이에 대해 ‘공군의 과학적인 정비 방법’과 ‘정비사들의 뛰어난 정비 역량’이라는 비결 아닌 비결을 공개했다. F-4D 생산 당시 설계 수명은 4000시간이었다. 그러나 미 공군이 이후 항공기 기골보전 프로그램을 실시해 수명을 8000시간까지 연장했다.
우리 공군전투발전단은 2003년 4월 F-4D 경제수명을 9600시간으로 판단해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다. 현재 F-4D 평균 사용시간은 9100시간이다. 하지만 기골보전 프로그램 등만으로는 F-4D처럼 장기간 운용하는 항공기를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 공군 특유의 정비 방법과 정비 역량이 힘을 발휘했다.
공군은 취약하게 된 기골이나 기능 저하가 예상되는 부품 등에 대해 예방정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F-4D의 경우 도입 시 정비 항목 외에도 858개 추가 점검 항목을 만들어 예방정비에 힘쓰고 있다. 이 외에도 부위·부품별 점검주기를 단축하고 비파괴검사를 강화하며, 항공기 계통별 주요 부품을 개량형 또는 신품으로 교환해 장기 운용에 따른 결함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도 ‘완벽’에 도달하기에는 2% 부족한 측면이 있기 마련. 이 부족분은 정비사들이 터득한 40년간의 운영 노하우와 단 하나의 결함도 놓치지 않으려는 혼신의 노력으로 메우고 있다.
77년 하사 임관 이후 F-4D 정비를 맡아 33년간 F-4D와 함께 웃고 울었던 151정비중대 정비감독관 이준영(51·준사관69기) 준위는 “그동안 정비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의거해 철저한 정비를 수행해 온 정비사들의 성실함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다”며 “성실성이 F-4D 정비사들의 업무 노하우”라고 말했다.
▲ 미래
F-4D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는 늘 가벼운 아쉬움과 약간의 우울함이 감돈다. 각종 전자장비나 컴퓨터가 즐비한 최신예 전투기인 F-15K나 KF-16이 속속 도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F-4D는 늘 퇴역의 대상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실제 공군은 F-4D 퇴역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만일 F-4D가 퇴역하게 되면 주요 무장과 부품을 떼어낸 뒤 기체를 원하는 기관과 민간에 전시용으로 기증하게 된다. 비록 하늘을 누비며 우리 영공을 지키는 임무의 최일선에서 물러나겠지만 F-4D는 미래의 보라매를 꿈꾸는 어린 세대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우리 공군의 도약기를 지켜 본 산증인으로 역사를 증언하는 임무를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규범·절차 완벽하게 지키려 노력”-김기영 중령·공군11전투비행단 151대대장
“F-4D 팬텀을 조종해 보면 묵직하고 웅장한 기운이 전달됩니다. 장남처럼 믿음직스러운 전투기지요.”1969년 창설된 이래 40년간 F-4D를 운용하고 있는 공군11전투비행단 151전투비행대대장 김기영(42·공사38기) 중령은 F-4D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랜 기간 우리 공군 명칭 앞에는 늘 ‘팬텀’이라는 용어가 붙곤 했습니다. 그만큼 F-4D는 공군의 대표선수였지요. 국방력에서 F-4D가 차지하는 비중도 컸고요.”
김 중령의 설명에는 F-4D와 대대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151대대는 공군의 ‘살아 있는 신화’로 통하기 때문이다. 2001년 보라매 사격대회 최우수 대대로 선정됐고, 올 1월에는 2008년 안전 우수부대로 선정돼 참모총장상을 수상했다. 그중 압권은 1985년 이후 23년 10개월 동안 이어온 8만6000시간 무사고 기록. 단일 기종을 이토록 오랜 기간 사고 없이 운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이다.
“F-4D가 최신형 항공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기에 우리 조종사들은 비행 규정과 절차를 더욱 완벽하게 지키려 노력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40년간 축적해 온 운영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를 후배 조종사들이 배우면서 전투기 특성과 비행 중 발생되는 특이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됩니다. 항공기를 이해하고 항공기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모든 교범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조종할 수 있는 이른바 ‘기인동체(機人同體)’가 됐을 때 비로소 F-4D 조종사라고 할 수 있지요.”
정비에 대한 신뢰도 무사고 기록 달성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완벽하게 규범과 절차를 지키려는 노력, 40년간의 운영 노하우와 조종사 - 정비사 간의 상호 신뢰,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를 이뤄 151비행대대는 세계 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매일 다시 쓰고 있다.
사진설명
①1969년 8월 29일 열린 F-4D 팬텀 도입식에서 1차 도입 팬텀기를 지휘한 강신구(맨 왼쪽) 중령에게 아내가 꽃다발을 걸어 주고 있다. 강 중령은 유명 배우이자 전 국회의원인 강신성일(오른쪽 셋째) 씨의 친형이다.공군제공
②공군11전투비행단 151정비중대 전찬호 원사가 F-4D를 꼼꼼히 정비하고 있다.
③공군11전투비행단 무장사들이 F-4D에 무장을 장착하고 있다.
④김기영 중령·공군11전투비행단 151대대장
글=김가영·사진=정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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