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생도 재학 중 30소티 비행교육 필수 이수 이르면 2011년부터 4학년 3개 학기 체계로 임관 후 실질적인 임무 연계 가능하게
공군사관학교가 지나온 60년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60년을 준비하며 획기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특성화 교육 강화가 그것. 공사는 이와 관련 재학 중 생도 전원이 일정 수준 이상의 비행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생도 비행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교육과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4학년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비행교육 입문과정은 제212비행교육대대에서 T-103 훈련기를 운용해 15소티(군용기의 출격 횟수를 일컫는 말로 T-103 항공기는 1회 출격에 약 80분가량 훈련을 진행한다)의 비행교육을 이수하게 돼 있다.
비행 여건에 따라 일부는 졸업 후에 이수하고 있으며, 기수별로 전투조종사를 지원한 약 70%만이 이 비행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그런데 이르면 2011년부터는 전 사관생도가 재학 중, 30소티 수준의 비행 교육을 받아야만 졸업·임관할 수 있게 된다.
시기도 1년 앞당겨 3학년 때 8~10소티를, 4학년 때 20~22소티를 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곧 도래할 항공우주시대를 준비하고, 실질적인 임무환경 체험을 위해 공사 재조형 차원에서 추진하는 핵심 과제다.
이로 인해 4년간의 생도 교육 과정도 개정된다. 주 1회 비행교육 훈련 일을 별도로 정해 운영하고, 4학년을 3개 학기로 구분해 운영한다. 2개 학기는 학위교육, 1개 학기는 집중비행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학년별 교과 이수 학점도 조정해 1~2학년은 공통필수 과목을, 3~4학년은 전공 중심 과목으로 편성한다.공사 관계자는 “이 같은 생도 비행교육 운영 방안이 완성되면 재학 중 비행교육 입문과정을 수료해 임관 후 실질적인 임무 연계가 가능해지고, 공사의 공군 특성화 교육체계를 정립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공군사관학교는
정예 공군장교를 배출하는 ‘보라매’의 산실, 공군사관학교(교장 중장 성일환)가 10일 개교 60주년을 맞았다.1949년, ‘조국의 하늘은 우리의 손으로 지키자’는 신념으로 창설된 공사는 개교 이래 57개 기수의 정예 공군장교 8700여 명을 배출한 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같은 해 10월 1일 공군 창군과 함께 지금의 학교 이름으로 개칭됐으며, 김포의 육군 항공사관학교가 전신이다.
공사는 6·25전쟁 중 대구·진해를 거쳐 제주 모슬포로 기지를 옮겼다. 공사 1기생을 배출한 곳은, 51년 진해기지에서였다.58년 서울 대방동 캠퍼스로 이전, 창설 10년 만에 비로소 현대적인 교육환경을 구비했다. 66년 박정희 대통령은 공사를 ‘성무대(星武臺)’로 명명했다. 이곳에서 27년간 2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지금의 청원군으로 캠퍼스를 옮긴 것은 85년 겨울, 정부의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이다.
97년 3군 사관학교 중 최초로 여성(49기)에게 문호를 개방했으며, 2002년 박지연 대위가 ‘공군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첫 여성 편대장’ 등 5개의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며 우리 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1988년, 초등비행훈련을 담당하는 212비행교육대대가 공사로 편입됐고, 1972년 도입해 실습과정 훈련기로 사용한 T-41B 항공기는 2006년 11월 퇴역했다.
현재는 2004년부터 도입한 T-103 단일기종으로 비행실습과정을 운영하고 있다.21세기를 맞아 공사는 항공우주시대를 선도하며 국가발전에 헌신하는 정예 공군장교 양성에 목표를 두고, 전문적이고 창의적이며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 명예로운 사관생도 육성을 위해 훈육요원의 전문성과 교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이와 함께 세계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사관생도 해외 견학 기회를 확대하고, 대외 교류를 활성화해 학교의 위상과 생도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우수 인재 선발과 전문홍보활동을 강화함은 물론, 비행교육체계를 개선하고 현대식 교육시설과 환경을 구비해 최첨단 항공무기체계로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젊은 보라매의 산실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한편 공사는 10일 개교기념일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사관생도 퍼레이드, 축하비행, 60주년 특별사진전과 동문화합행사, 복지시설 아동·청소년을 위한 제1회 나라사랑 아동청소년 희망대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한다.
■ 위국헌신의 보라매는
1949년 입교한 공군사관학교 제1기생은 1951년 7월 83명이 졸업한 후, 6·25전쟁에 투입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공사1기생인 고(故) 임택순 대위는 6·25전쟁 중이었던 1953년 3월 6일 고성 남방 상공에서 우리 지상군 작전엄호 중, 적 지상 포화에 피탄되어 귀환이 불가능해지자 적진에 자폭, 장렬히 산화했다.
고 김현일 대위와 고 고광수 대위는 최고의 기량을 지닌 F-51 전폭기 조종사로서 공지합동작전과 적보급로 차단 작전에 참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휴전 직전까지 중동부전선 일대에서 유엔공군과 함께 적을 분쇄하며 악전고투하던 지상군 작전을 아군에 유리하게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김 대위는 1953년 6월, 강원 고성지역 351고지 탈환 작전에서 적의 대공포 공격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했고, 고 대위는 같은 해 7월 강원도 고성 시변리지구 작전 수행 중 적의 대공포화의 공격을 받았으나 조종간을 놓지 않고 귀환하려다 끝내 전사했다.1949년 10월 1일부터 공사교장을 역임했던 고 이근석 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 2일 일본에서 F-51 전폭기를 인수해 왔다.
이틀 뒤 7월 4일에 출격을 감행, 안양상공에서 남진하는 적 전차 20여 대를 발견하고 공격하던 중 적 대공포에 피격되자 적 전차로 기수를 틀어 장렬히 전사했다. 지휘관이 몸소 보여준 살신성인의 리더십은 지금까지도 공사생도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박명렬·박인철 부자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정신을 대를 이어 실천한 참군인의 표상이다.
F-4 전투기 조종사였던 박명렬(공사26기) 소령은 1984년 3월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 사격훈련을 하던 중 순직했다. 당시 네 살이었던 아들 박인철(공사 52기) 대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하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사를 선택했으나, 2007년 서해안 상공에서 KF-16 전투기를 몰고 요격훈련에 참가했다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공사는 부자 조종사의 숭고한 위국헌신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오는 7월 20일, 이들의 흉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송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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