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왕조시대에는 국왕이 곧 나라 그 자체였다. 국왕의 생사가 국가 존립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왕조시대에는 국왕의 안위에 따라 왕조 자체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당연히 당시 군대의 주역할도 국가적 차원의 국가방위 못지않게 국왕과 그 일족의 신변보호에도 상당한 초점이 맞춰졌다.
국왕의 경호나 궁궐 경비업무에 관한 내용을 다룬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책이 병정(兵政·사진)이다. 국왕 세조가 처음 쓰고 당대의 명신 신숙주가 정리해 1459년 간행된 ‘병정’에는 궁궐 내 경비책임을 규정한 입직과 숙위, 궁궐 내외부에 대한 순찰업무 지침을 담은 행순, 궁궐과 한양도성의 주요 출입문 경비업무 규정 등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궁궐 출입문의 개폐 절차와 규정, 비상신호 시 경비 군사들의 대응 방법과 집결 장소 등도 실려 있다. 이 밖에 국왕이 참석하는 열병식(대열) 때의 중앙군 5위 편성규정, 병력동원 시 확인용 규정 등 중요 국방사항도 요약 기재돼 있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에 출간된 책 중에서 궁궐 경비 문제를 다룬 서적은 희귀한 편이다. ‘병정’을 제외하고 조선 전기 궁궐 경비체계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서적으로는 조선 전기의 행정규정과 법률을 집대성한 경국대전 정도만 있을 뿐이다.
병정은 1459년에 간행된 책인데 비해 경국대전은 1466년 1차 편찬이 끝났으나 최종 완성판이 만들어진 것은 1481년 무렵이다. 두 책의 간행 시기가 다른 만큼 궁궐 경비에 관한 세부 규정에도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병정’에서는 5위에서 각 2부가 돌아가면서 경비업무에 투입된다고 규정돼 있으나, 경국대전에서는 5위에서 각 1부가 투입되도록 규정돼 있다. 의장병인 근장 10명이 광화문 경비를 선다는 규정도 ‘병정’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병정’은 경국대전으로는 온전하게 알 수 없는 조선 전기 궁궐 경비체계의 세부적 모습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간행 초기 ‘병정’은 매우 중요한 책으로 간주됐다. 1460년 5월부터는 무과시험 과목으로 사용되고 지방 근무 중인 장수들에게도 발송할 정도였다.
‘병정’은 궁궐 경비나 국왕 경호와 관련된 규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일종의 국가기밀에 속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비밀스러운 책이 우리나라에는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고 일본의 내각문고·존경각·도쿄대 도서관 등 세 곳에 전해져 오고 있다. 새삼 일본의 문화재 약탈이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게 진행됐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우리 학계에서 ‘병정’이 남아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한 시점은 1981년 무렵이다. 고 허선도 박사가 일본 반환 문화재 목록에서 ‘병정’의 존재를 확인, 우리나라에는 없는 ‘병정’이 일본에 전해 오고 있음을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했다. 이후 1986년 이우성 박사가 영인본을 국내에서 간행, 국내에서도 책 형태로 ‘병정’을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까지 번역본이 출간된 사례는 없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