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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18>아이톨리아의 투창

입력 2007. 05. 1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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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26년, 당시 그리스 전장을 지배했던 장갑보병 120명이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전멸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창과 방패·갑옷으로 중무장한 아테네 장갑보병을 전멸시킨 상대가 무장·훈련 정도가 빈약한 아이톨리아 농민들로 구성된 반란군이었다는 점이다.
    비정규군이 장갑보병과 일전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였지만 아이톨리아군은 아테네 장갑보병과의 직접 전투 대신 투창으로 승부를 걸어 아무도 예측 못했던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훗날 펠타스타이 또는 펠타스트로 불린 아이톨리아 투창병들은 아테네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정예 장갑보병을 격파하고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투창은 고대부터 사용돼 온 가장 기본적인 무기 중 하나이며 예리한 창날과 가벼운 무게로 50∼100m 목표를 타격하는 데 최적화한 투척 무기다. 당시 그리스에서 사용된 투창은 길이 1.1∼1.6m, 무게 1.2∼1.8㎏이었고 고대 유적의 벽화나 부조, 각종 유물을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최적의 투척 방법을 찾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창대를 잡는 방법에서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투척법을 연구했다. 더 멀리 던지기 위해 한쪽 끝에 손가락 크기에 맞는 고리가 달린 줄을 감거나 나무조각으로 된 전용 창 투척도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적절한 투척방법은 창을 던지는 병사가 더 큰 힘을 쓸 수 있게 해 줬고 날아가는 투창에 힘을 더해 관통력을 배가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투창·투창병이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 침공이 끝난 기원전 4세기께로 군사적 발전이 뒤처져있던 그리스에서 다양한 병과·전술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보통 척후병 또는 유격병으로 운용된 투창병들은 몇 개의 투창으로 무장하고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적 장갑보병의 대열을 교란하기 위해 창을 던졌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울 필요가 없었지만 칼·단검은 기본적으로 휴대하고 다녔다. 그리고 투창병을 포함한 경무장 보병의 활약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육중한 방패와 창, 각종 방호구로 중무장한 장갑보병이 더 이상 전쟁의 주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한편 투창을 의미하는 재블린(Javelin)은 16세기 초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자블린(javeline)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대에 관계없이 현재까지 사용된 모든 투창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계동혁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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