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퇴역한 F- 5A/B 전투기는 한국 공군의 초음속 시대를 이끈 전투기로 1965년 4월30일 수원에서 열린 인수식을 통해 첫선을 보인 이후 장장 40년 동안 우리 하늘을 누비며 애칭인 ‘자유의 투사’답게 영공 방위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F- 5A/B는 55년 미국의 노스롭사가 개발하기 시작한 항공기. 최초 개발 당시 성격은 훈련기였으나 개발 후 우수한 성능과 미국 우방국의 고성능 전투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저가의 고성능 경량 전투기로 발전, 모습을 보였다. 63년 10월 단좌기인 F-5A 1호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F- 5A는 72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미국에서 총 636대가 생산, 우리나라 등 20여 개국에 공여됐으며 복좌형인 F-5B는 74년까지 총 200여 대가 생산돼 역시 미국의 동맹국에 제공됐다.
우리 공군은 65년 4월 F- 5A 16대, F- 5B 4대를 첫 도입하는 등 순차적으로 F- 5A 88대, F- 5B 30대를 도입했다.
최초 도입 당시 공군의 주력 기종은 아음속 전투기인 F-86 세이버(Saber)로 6·25전쟁 중 미 공군의 주력으로 쓰인 항공기였다.
이 항공기들은 이미 노후화 단계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초음속 전투기인 MiG -19기·MiG -21기보다 열세를 보여 F- 5A/B의 도입은 우리 공군의 전투력을 한 단계 격상하는 데 큰 힘이 됐다.
20mm 기관포 2문과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2기, 각종 무장 2455kg을 탑재할 수 있는 F-5A/B기는 최대 속도 마하 1.4이지만 고아음속에서 초음속에 이르는 우수한 조종 안정성을 발휘하고 정비와 취급이 간편해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주로 공중 요격과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67년 4월17일 서해 목덕도 해상에서 50톤급 간첩선 1척, 69년 10월13일 소흑산도 해상에서 75톤짜리 간첩선 1척, 70년 7월27일 영덕 인근에서 60톤급 간첩선 1척, 78년 4월2일 거문도 해상에서 1척 등을 격침하는 등 수 차례의 대간첩 작전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간첩 잡는 전투기’로 불리기도 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공군10전투비행단 소속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 기종으로도 활약한 바 있다.
F- 5A/B는 74년에 첫 국내 도입된 F- 5E/F 타이거 2와는 단순 ‘성능 개량’ 이상의 차이점을 보여 사실상 신기종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F- 5E/F는 높이 4.07m, 길이 14.45m, 폭 8.13m로 A/B형과는 크기부터 다르다.
또 최대 속도(마하 1.64) 등 기동력이 우수하고 항공 전자 분야에서 크게 발전해 있다. 70년 개발을 시작, 72년 처음 양산됐으며 82년부터 국산 조립형인 제공호가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성능이 보다 우수한 전투기인 F- 5E/F, 제공호, F- 4 팬텀 등이 속속 공군에 전력화되면서 F- 5A/B는 80년대 말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조종사 고등비행 훈련이나 작전 가능 훈련 기종으로 활용되거나 퇴역하기 시작했다.
특히 F- 5A/B 전투기는 그동안 성능 개량과 기체 구조 보강 작업, 부식 방지 작업 등을 통해 설계 수명인 30년을 10년이나 초과 운용,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이 전투기를 도입한 16개국에서는 대부분 퇴역한 상태. 지난해 8월에는 102대대의 15년 무사고 비행이라는 대기록을 수립,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또 노후 기종에 대한 우리 공군의 뛰어난 정비 역량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40년 동안 우리 공군과 호흡하며 영공을 지켜 온 ‘자유의 투사’ F- 5A/B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우리 공군의 영광과 애환을 말해 줄 것이다.
김병륜·홍은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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