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대 배속 명령을 받고 서울 수색에 가 보니 70~80명의 장교와 민간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편제나 조직 체계가 아직 세워지지 않아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일주일 후 김포비행장 옆 퀀셋으로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그곳은 미 육군 공병대가 사용하다 철수하면서 남긴 20여 동의 퀀셋이었다. 이곳에서 조선경비대 항공기지사령부가 창설됐다. 수색에서 창설 요원들이 구성됐지만 김포비행장에서 비로소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김정렬·최용덕·박범집·이영무·장덕창·이근석·김영환이며 경비대사관학교(육사5기) 동기인 박원석과 나도 장교단에 합류했다. 창설 요원은 아홉 명의 장교단을 포함해 일본군·중국군 출신에 일부 민간 항공 출신 105명이었다. 이들을 흔히 ‘공군 창설 105인’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 항공대사령관 최용덕, 부사령관 이영무, 참모장 박범집, 비행대장 김정렬로 지휘부가 구성됐다. 나는 중위 진급과 함께 장덕창 기지사령부대장 부관 겸 인사행정처장 보직이 주어졌다.
1948년 8월15일을 기해 남한 단독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이 창설되고 이로써 경비대는 병력 2만54명을 육군·해군으로 분리 개편했다. 그러나 공군은 육군 수뇌부의 이해 부족으로 분리되지 못하고 육군항공대로 그대로 남아 있게 됐다.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8월 경비행기 L - 4 10대가 미국으로부터 군원으로 도입돼 8·15 경축 비행을 하면서 사기가 올랐다.
태극 마크를 부착한 항공기가 서울 하늘을 날자 수많은 군중이 환호했다.
9월에는 L - 5 10대가 또 도입됐다. 그러나 이 기종들은 흔히 말하는 잠자리 비행기로 가볍고 속도가 나지 않아 정찰과 연락, 포병 관측 임무를 수행하는 정도에 그쳤다.
정정(政情)은 혼미를 거듭해 9월7일 국회에서 반민특위법이 통과됐으나 오히려 저항을 불러왔고 북한은 9월9일을 기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38선에서는 연일 남북 간에 충돌이 빈발했고 10월20일 이윽고 여수·순천에서 제주4·3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 준비 중이던 국군 일부 병력이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졌다.
항공대는 L - 4·L - 5기를 현장에 투입했지만 별로 쓸모가 없었다. 동체 밑에 바주카포를 달고 출동했으나 한 번 써 보지도 못했다. 다만 남원·전주·광주에 삐라를 뿌리고 육군을 지원, 지휘관 수송이나 지리산 정찰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이때 김정렬 비행대장이 ‘항공의 경종’이라는 논문 형식의 제안서를 발표했다. 공군이 육군의 보조자로 전락해서는 안 되고 독자적 작전권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논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태평양 전쟁이나 독일군의 공중전을 예로 들어 공군의 중요성을 역설, 앞으로 항공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한 것은 항공력의 절대 열세였다는 점도 예로 들었다.
태평양의 모든 섬은 수천㎞씩 떨어져 있다. 이 섬을 공략하는 데는 항공기가 아니면 달성할 수 없다. 속도와 화력 면에서 효과적인 공략 수단이 항공인데 미국이 이 분야의 절대 우세로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선박에 많은 병력을 싣고 가거나 식량을 후송하더라도 항공기가 재빨리 폭격을 가하면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고, 후속 병력과 식량 보급이 차단되면 도서를 점령한 부대가 고립돼 고스란히 굶어 죽는 사례가 빈번했으며 이로 인해 자기네들끼리 잡아먹는 식인종 아닌 식인종이 돼 버린 사례도 적시했다.
한편 북한은 소련제 YAK - 9·IL - 10기를 비롯한 전투기 등 항공기 21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북한의 이건순 중위가 IL - 10기를 타고 귀순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산비행장에 내린다는 것이 지형을 잘 몰라 김해공항에 내린 것이지만 어쨌든 그의 첫 귀순으로 북한의 항공 실태를 파악하게 됐는데 그 내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항공기를 주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한국군 내부가 이념이 혼재돼 정체가 파악되지 않고 그래서 피아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 항공기가 북으로 넘어가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48년 12월 백중사 월북 사건이 그것이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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