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소총은 M16 소총·K2 소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육군 주력 소총 계보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총이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시절에는 주로 일제 99식 소총을 사용했으나 1947년 10월1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처음으로 M1 소총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일선 각 부대에 M1 소총이 지급된 것은 48년 4월부터다. 국군이 정식으로 창설된 48년 8월 이후 미군으로부터 M1 소총이 대량 인도돼 99식 소총을 본격적으로 대체했다.
M1 소총은 1936년 미국에서 개발됐다. 미국 스프링필드 병기창의 민간인 기술 책임자인 존 켄티우스 개런드는 1932년 구경 7mm의 신형 소총을 개발했다.
이 신형 소총은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았지만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반대로 제식 소총으로 정식 채용되지는 못했다. 맥아더 장군이 7.62mm 구경의 소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개런드는 1936년 결국 자신의 소총을 구경 7.62mm로 개조했으며, 미군은 M1 소총으로 명명했다.
M1 소총의 가장 큰 특징은 군에서 대량 사용된 제식 소총 중 최초의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99식 소총, 독일의 Kar98k 소총, 소련의 모신나강 소총 등은 모두 볼트 액션 방식. 이 방식의 소총은 탄환 1발을 사격한 후 노리쇠를 수동으로 후퇴시켜 탄피를 제거해야 한다. M1 같은 반자동식 소총은 사격 후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어 방아쇠만 계속 당기면 다음 탄환을 사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전에서 M1 소총의 사격 속도는 99식 소총 같은 볼트 액션식 소총의 2.4배에 달했다. 99식 소총으로 10발 사격할 때 M1 소총은 24발 정도 사격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작동 방식의 차이는 사격 속도뿐만 아니라 명중률에도 높은 영향을 끼쳤다.
99식 소총 같은 볼트 액션식은 조준 후 탄환 1발을 발사한 다음 손으로 노리쇠를 후퇴시킬 때 총이 흔들려 연속적인 조준이 불가능하다. M1 소총은 설사 초탄이 명중하지 않더라도 조준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두 번째 탄환을 발사할 때 명중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격 속도와 명중률 등을 고려할 때 M1 소총은 99식 같은 볼트 액션식 소총보다 종합적으로 세 배의 성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M1 소총은 1936년부터 45년까지 미국 스프링필드 병기창에서 무려 535만 정이 생산됐다. 일시 생산이 중지된 M1 소총은 6·25전쟁을 계기로 생산을 재개, 59년까지 약 70만 정이 추가로 제조돼 총생산량은 600만 정이 넘는다.
49년 7월 당시 우리 군이 보유한 M1 소총의 총량은 4만2636정이었고 M1 소총용 탄환은 총 190만 발이었다. 무게가 4.3kg이나 돼 체형이 작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무거운 것이 흠이었지만 우리 보병들과 애환을 함께 한 무기였다.
6·25전쟁 중 한국군의 병력 규모가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군이 47만1839정의 M1 소총을 추가로 제공, 국군은 안정적으로 M1 소총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주력 소총의 지위를 유지하던 M1 소총은 74년 국내에서 M16 소총이 생산되면서 점차 일선 부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의장대의 의식용 소총 등 특수 용도를 제외하고 육군 현역 부대에서 M1 소총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점은 78년이다. 31년에 걸친 M1 소총의 역사는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예비군 부대에서 상당량의 M1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병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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