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문제는 ROTC 제도 도입(1961년)과 함께 장기 근속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것이 180도 빗나갔다는 점이다. 매년 3000명의 초급 장교가 임관돼 나오는데 이 중 약 30%인 900명의 장기 복무 지원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 초급 간부 자질 향상책으로 종래의 간부후보생(OCS) 획득을 격감했으나 ROTC 장기 복무 지원자가 소수에 그치는 등 900명 확보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것이 누적되자 초급 간부(소·중대장) 부족 현상이 대량 발생하고 말았다. 이 결과 기성 장교 전역을 유보함으로써 8년 중위, 14년 대위가 속출해 연소화는커녕 오히려 초급 간부의 노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군의 계급 순환도 뒤틀리게 됐다. 이처럼 하나가 틀리면 전체가 엉망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군 편제나 조직이 큰 혼란에 봉착하게 됐다. 위관급을 장기간 동일 보직에 묶다 보니 소령급 이하 간부 인력 관리나 순환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긴급 처방으로 나온 것이 하사관(현 부사관)을 소대장 직무대리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이는 6·25전쟁 중 소대장의 손실이 막대하자 하사관을 현지 임관해 전투에 투입한 제도를 원용한 것이고, 바로 나도 그런 현지 임관 출신 중의 한 사람이다.
하사관을 현지 임관 소대장 대리로 임명하다 보니 1개 중대당 2명이나 소대장 대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묵인될 수 있었지만 늙은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고문관처럼 통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소령·중령급 소대장이라며 눈만 굴릴 뿐 도무지 뛰지 않고 있었다. 인사 관리 실무진의 단견이 이처럼 군 조직을 형해화·파편화해 버리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55년부터 정규 육사 출신 장교들이 매년 150명씩 배출됐는데 육군의 내부 인사 방침에 따라 계급별 최저 복무 기간만 지나면 거의 100% 특별 진급토록 했다.
예를 들어 소위에서 중위 진급 3개월, 중위에서 대위 1년, 대위에서 소령 2∼3년, 소령에서 중령, 중령에서 대령, 대령에서 장군 각 3∼4년의 기간이 주어졌다. 나는 소위 계급장을 단 지 17년 만에 대령이 됐는데 육사 출신은 11년만 지나면 대령 진급이 된다는 계산이다.
내가 대대장(소령) 시절 정규 육사(11기) 출신이 소위로 임관해 왔는데 고참 중령일 때 그들은 벌써 별을 달고 나를 추월해 버렸다. 나는 당연히 체념했지만 그렇다고 쓸쓸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은 인사 적체 현상이 일어나는데 다른 한쪽은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계속 진급 퍼레이드를 펼친다. 자연히 육군 장교단의 질서가 허물어질 우려가 있었으며 기술 장교들은 육사 정규 출신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됐다. 알게 모르게 위화감이 조성되면서 이런 것들이 쌓여 보이지 않은 갈등이 내연하고 있었다.
나는 인사 정책의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지 임관 출신으로서 진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육본 복무를 자원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들어왔는데 막상 부딪쳐 보니 고칠 수 있는 제도를 그저 선임자가 해 온 그대로 기계적으로, 관성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먼저 나는 ROTC 출신 장기 복무자를 많이 모집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키로 했다. 당사자들보다 그들의 부모를 공영 매체를 통해 설득하고 군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ROTC 1기생 중 육본에 근무하고 있던 박세환(대장 예편·전 국회의원) 대위를 차출했다. 남산 밑에 있는 KBS TV에 함께 출연, 장기 복무의 장점을 홍보했다. 그러나 반응은 영 딴판이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