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말산책

우리말 지킴이<10>‘와꾸’ ‘개조식’이 도대체 뭘까?

입력 2004. 09. 1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0:45
0 댓글
  •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행정병이 일반 보병이나 포병보다 좀 더 편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모두 제 나름의 큰 걱정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군대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받게 되는 보직도 각각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하루 세 끼 먹는 게 그리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취사병이 최고의 보직이라 생각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평일이든 휴일이든 충분한 휴식 시간 없이 하루 진종일 음식 냄새에 절어 지내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행정병도 그렇다. 육체적 고통이 많은 일반 보병이나 포병이 하루 일과 후 마음껏 자유 시간을 누리는 데 반해 행정병은 이런저런 일들로 자주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보충대·신병 훈련소에 갓 들어온 신병이나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은 어떻게 하면 행정병 주특기나 보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내가 군에 입대했던 1990년대 중반에도 간혹 누군가 워드(워드 프로세서:word processor의 준말) 잘하는 사람, 컴퓨터 잘하는 사람을 찾으면 너도나도 손을 들어 그 일을 자청했다. 그런데 실제 그 사람들을 불러 워드 프로세서나 컴퓨터를 다루게 해 보면 그중에는 독수리 타법의 소유자가 적지 않았다.
    하긴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군대의 행정 업무에서 워드 몇백 타를 치느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능숙한 ‘와꾸’ 작성 능력, ‘개조식’ 문장 작성 능력이 더 중요했다. 수많은 문장으로 표현돼야 할 내용을 한두 개의 표·그림, 몇몇 단어의 나열로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그럴싸하고 경제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표나 그림은 시각적으로도 눈에 잘 띄어서 전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와꾸’가 도대체 뭘까? 군대 시절 필자는 발음으로 보건대 표를 뜻하는 일본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말은 일본어다. 그러나 ‘표’가 아닌 ‘틀’이나 ‘테’를 뜻하는 일본어 ‘와쿠’[わく]다. 글을 쓰거나 문서를 작성할 때 박스 형태의 틀로 된 표를 자주 쓰다 보니 필자가 ‘와쿠’를 ‘표’를 뜻하는 말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와꾸’는 ‘와쿠’를 잘못 소리 낸 것이다. 따라서 ‘와꾸/와쿠’는 우리말 ‘틀’이나 ‘테’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와쿠’는 건설 분야에서도 자주 쓰인다. 이때에도 ‘틀’이나 ‘울거미’(문틀과 같이 뼈대를 짜서 맞춘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를 뜻한다. 최근 들어서는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와쿠가 제대로 나온다” “와쿠가 좀 된다” 따위에서처럼 ‘와쿠’를 쓰곤 하는데 이때에는 ‘틀’이라는 의미가 좀 더 확대돼 몸의 모양이나 생긴 용모를 뜻한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나 ‘와쿠’는 ‘틀’로 바꿔 쓸 수 있다.
    한편 ‘개조식’은 그 의미를 알아내기 쉽지 않은 말이다. 이 말은 ‘개조’(個條)라는 한자어에 ‘방식’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식(式)’을 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에서 한자어 ‘개조’(個條)는 ‘12개조로 이루어진 회칙’처럼 낱낱의 조목이나 조항을 세는 단위로 쓰이는 의존 명사다. 즉, 주로 수 관형사 뒤에서 쓰이고 ‘개조’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반면 일본어에서는 ‘問題(もんだい)の個條(かじょう)お してきする[문제 조항을 지적하다]’처럼 ‘개조’(個條·かじょう)가 ‘조항’의 뜻으로 단독으로 쓰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일본어에서 ‘개조서’(個條書き)라 하면 ‘조목조목 쓴 글’ 또는 ‘조목이나 조항으로 나누어 쓴 글’을 가리킨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개조식’(個條式)은 ‘조목조목 쓰는 방식’ 또는 ‘조목이나 조항을 나누어 쓰는 방식’을 뜻하는 말로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식 구성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그런데 군대에서도 그렇고 일반 공무원 사회에서도 ‘개조식’(個條式) 글이나 문서를 선호한다. 실제적으로는 지나치게 조목이나 조항을 나누어서 몇몇 단어의 나열로 글이나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우선 ‘개조식’이라는 말부터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꿔 써 보는 건 어떨까? ‘개조식’은 ‘조목 벌임’ ‘조목 나열’ 정도로 바꿔 쓸 수 있을 듯하다.

    〈박용찬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